사람다울 자유

피터 팬

by 상경논총

아이였을 때 우리는 어른에게 잔소리를 듣고 살았다. 아이는 옳고 그름을 모를 때도 있고 자제력이 부족해서 잘못된 일을 저지르니까 어른의 잔소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에게 잔소리를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어른도 아이처럼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할 때가 있고 잘못된 걸 알면서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다면 어른에게도 잔소리가 필요한 것인가?


똑똑한 어른들이 새로운 잔소리꾼을 만들어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의 모습을 한 잔소리꾼이다. 그 잔소리꾼은 아직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갇혀있다. 하지만 조만간 그곳을 탈출해 우리의 삶에 간섭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말이다. 사람들은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가 결국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걱정한다. 충분히 섬뜩한 미래이다. 뼈는 금속보다 약하니까. 그런데 과연 기계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 미래라고 좋기만 할까?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는 사람을 아이처럼 생각한다. 혼자 내버려두다가는 곧 말썽을 부릴테니 기계는 선한 의도로 아이가 옳은 길로 가도록 지도할 것이다. 이제는 밤 늦게 야식으로 치킨을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늦은 시각에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배는 고프고 치킨은 맛있으니까 우리는 치킨을 시킨다. 비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계는 이런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를 설득해 치킨 주문을 단념하도록 전력을 다 할 것이다.


더 구체적인 사례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배우자의 외도를 눈치채고 AI에게 이혼을 위한 법률 상담을 받고 있다. 그럼 AI는 의뢰인이 이혼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미 부부 관계가 파탄 난 것을 알면서도 배우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냉정한 AI는 의뢰인에게 당신의 배우자는 더 이상 당신의 인생과는 상관이 없어졌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빨리 끊어낼수록 이혼 소송에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할 것이다.


야식을 먹거나 정 때문에 이미 끝난 사이에 미련을 가지는 것 모두 비합리적인 행위다. 하지만 인간은 합리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가진 비합리성은 오히려 인간미 같은 단어로 높이 평가받기도 한다. 합리성보다 비합리성에 기반한 행동이 오히려 자신과 남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길 때도 많다. 좋든 싫든 비합리성은 인간을 정의하는 분명한 특성이다. 그런데 비합리성이라는 특성은 앞으로 꾸준히 억압받을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인간이 평생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아이로 남게 되는 세상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와 공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평생을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겠지만, 마음 속 한켠에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리라. 마치 어른들이 아이였던 시절 자유분방한 모습을 가끔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오늘이 야식으로 치킨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르니, 오늘의 자유를 즐기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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