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춥다. 따뜻한 차를 마시자. 텀블러에 온수를 담고 티백 하나를 넣었다. 청년센터에 비치된 둥굴레차 티백이다. 귀여운 이름에서 누룽지 같은 구수한 향을 풍기는 둥굴레차. 하얀 김이 주유소 앞 풍선 인형처럼 흐물흐물 춤추는 모습을 감상하다 한 입 마셨다. 입천장이 까질 것 같이 뜨겁다. 아, 이거지.
올겨울, 나는 얼죽아 협회에서 남몰래 탈퇴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내 입은 이번 겨울이 너무 안 추워서 지구가 걱정된다고 말하면서 내 위장은 아아를 거부한다. 대신 머리에 빨간 끈 두르고 이렇게 외쳐댄다. “차! 뜨신 거!!! 빨랑!!!” 그 와중에 왠지 느끼한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싫다는 걸 보면 사람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알 수 없는 존재다.
아아 대신 뜨차(뜨거운 차)를 마시는 것만큼 달라진 게 또 있다. 전기장판의 온도다. 너무 뜨시면 답답해서 ‘취침’으로 해두고 자던 내가 이제는 ‘3’으로 올려두고 잔다. 서늘해서 깨는 것보다 차라리 이불을 걷어차더라도 따뜻하게 자야 한다. ‘1’로 하고 자도 안 춥냐고 뭐라고 하던 엄마의 잔소리에 뒤늦게나마 고개를 끄덕여본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맨투맨 티에 잠바 하나로 거뜬했던 내 몸은 이제는 그 안에 두툼한 니트와 플리스 집업까지 껴입어야 비로소 따뜻하다고 느낀다. 폭설이 와도 얇은 발목 양말만 신고 다니던 20대는 기모 양말을 신어도 발이 시린 30대가 됐다. 사계절 내내 입던 청바지 대신 기모에 융털까지 든 바지를 입고 다닌 지 오래다. 어떤 날은 그래도 추울까 봐 기모 레깅스까지 입어야 좀 든든하다.
늙어가고 있다. 앞자리가 3이 되면 한 해 한 해 다르다던 말이 거짓부렁이 아니었음을 체감하는 중이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던데. 그들보다 몇 달치의 밥을 더 먹은 빠른 2월생이라는 게 이제 티가 나는 걸까. 부모님은 왜 나를 일 년 늦게 학교를 보냈을까. 다음에 집 가면 따져야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면역력이 떨어져도 추위를 탄다고 하던데, 마침 며칠 전에는 입가에 왕따시만 한 솔(헤르페스)도 났다. 작년 5월에 받았던 면역력 검사 결과가 떠오른다. 심각하게 낮은 수준으로 나왔던 내 면역력이 아직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걸까. 퇴사한 지도 벌써 3분기가 지났는데. 내 몸은 생각보다 더 심한 어리광쟁이인가 보다.
슬퍼지기 전에 생각을 돌려본다. 아아 대신 뜨차를 마셔서 좋은 점도 있다. 얼어 있던 몸이 따뜻한 차 한 잔에 녹아내리는 기분,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한 노곤노곤함. 얼죽아 회원으로 살 때는 전혀 몰랐던 행복이다. 대만에서 살 때도 무조건 아이스 차를 마셨지 따뜻한 차는 뭔 맛으로 마시나 했었다. 덕분에 밀크티 해 먹으려고 사 왔다가 방치해 뒀던 대만 차들을 요즘 조금씩 즐기고 있다. 안 버리길 잘했다.
그리고 어디서 봤는데, 몸이 따뜻해야 피가 잘 돌고 건강에 좋다고 한다. 어쩌면 내 몸은 나를 지키기 위해 뇌에게 소리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렇게 죽는 게 무서우면 아아를 포기해!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 빵 만드는 할머니 되려면 저속 노화해야지! 내 머리는 ‘살고 싶지 않다’를 외치면서도 내 몸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 변한다는 것,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