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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하면서 먹는 생각하면 뭐 어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by 끼미


아침에 요가를 했다. 매일 하는 루틴이지만 오늘따라 요가하는 내내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이따 점심에 햄이랑 치즈 넣은 샌드위치 만들어 먹어야지. 그런데 바질 버섯 치즈 토스트도 먹고 싶은 데 어쩌지. 에이, 나 다이어트하기로 했는데. 둘 다 먹고 싶어도 내일을 위해서 하나만 먹는 게 어른 아닐까? 근데 너무 먹고 싶은데 어쩌지. 아, 또 집중 못하고 먹는 생각만 하고 있네. 그만하자, 제발'


당연히 그만할 리가 없었다. 햄치즈 샌드위치만 먹자고 결정해 놓고도 눈앞에 계속 녹진하게 녹은 모짜렐라 치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아니 도대체 밥 한 끼 먹는 데 무슨 이리 생각이 많나. 이러니까 몸무게가 40kg대로 못 내려가지.'


그때 어디선가 반항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문제 있어?'


그러게. 요가하면서 점심 메뉴 생각하면 안 되나? 뭐, 수련의 측면에선 요가하는 동안에는 고요하게 머무르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리고 요가할 때마다 늘 이러는 것도 아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게 고통스럽지도 않다. 그 반대다. 머릿속으로 샌드위치를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일종의 놀이다.


그런데 왜 난 매트 위에서의 내 행동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을까?


'요가할 때는 머리를 비워야 한다',

'내가 돼지도 아니고 먹는 생각만 하면 안 된다'


바로 이 두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당연히 모두 진실이 아니다. 요가하다가 딴생각할 수도 있고, 사람이 식탐 많고 먹는 생각만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다. 내가 그걸 잘못된 것, 고쳐야 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않는다면. 내게도, 세상에도, 전혀 해롭지 않다. 그 행동을 못하도록 막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내 본성을 억누르는 일이니까.


그러니, 있는 그대로 두면 된다. 바꿀 필요가 없다. 식욕 없어서 굶는 것보다는 뭐 먹을지 고민하며 즐거워하는 게 정신적으로도 좋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폭식하면서 나를 아프게 하는 게 아닌 이상 먹을 거 좋아하는 나 자신을 그냥 인정하면 된다. 아침에 빵 먹을 생각으로 일어나는 사람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이러니 살을 못 빼지, 정말 의지박약이구나, 머릿속에 먹는 생각 밖에 없는 할 일 없는 인간이구나', 이 같은 코멘트는 필요 없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유일한 진실은 '난 요가하면서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이것뿐이다. 거기엔 아무 문제가 없다.




요가 매트 위에 엎드려 글을 다 쓰고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말 그대로 ‘달려’갔다. 미리 해동해 둔 사워도우 위에 카이피라를 올려봤는데, 빵 조각이 워낙 커서 그 큰 잎을 올려도 3분의 1 정도가 남았다. 황급히 느타리버섯을 볶아 바질 페스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넣어 버무려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치즈가 녹는 동안 사워도우 빵을 카이피라 사이즈로 자른 뒤 큰 조각 위에는 햄과 하바티 치즈, 토마토 등을 층층이 쌓고, 작은 조각 위에는 전자레인지에서 꺼내온 바질 버섯 치즈를 올린 뒤 꿀을 살짝 뿌렸다.


잠시 후, 커다란 원형 접시 위에 빵 한 조각으로 만든 두 가지 요리가 올려져 있었다. 햄치즈 오픈 샌드위치 그리고 바질 버섯 치즈 토스트. 요가 매트 위에서 했던 즐거운 상상이 현실이 된 이 순간, 마음속에서 한껏 고양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 봐, 고민하길 잘했지?'


내가 나여서 행복한 점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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