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혼자 뚜벅뚜벅#04 서울 한강
한강. 한강으로 가야 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언제 또 사라질지 모르니까.
요 며칠 잠을 설쳐 몽롱한 정신머리,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호르몬 현상으로 무거운 몸,
노트와 책과 커피와 과자로 든든한 백팩을 잘 챙겨
서울의 동쪽으로 향했다.
지난 겨울에 한 번 왔었던 이곳.
오늘따라 많아보이는 중년 어른들 사이에서
혼자 온 30대 여자는 강 바로 옆에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내 인생 어떻게 될까,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이 노란 꽃들 참 우아한데 이름이 뭘까,
무겁고 가벼운 질문들을 품고 제법 오래 걸었다.
생각보다 더운 날씨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하는 배.
두 시간 걸었으니 이제 집 가도 되겠다 싶을 때쯤, 저 멀리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지? 새인가? 저러고 자고 있는 건가?
시력이 나쁘지만 안경도 렌즈도 안 낀, 그야말로 뵈는 거 없는 내 눈에는
저 오카리나 같이 생긴 게 새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찍어보자 하고 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앞쪽에 있던 할아버지께서 성큼성큼 다가오셨다.
"일로 와, 일로 와. 여기가 더 잘 나와!"
방금까지 본인이 서 있던 자리로 나를 데려간 할아버지께서는 폰을 꺼내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올림픽 대교와 한강, 그리고 한 다리로 서 있는 새 한 마리.
척 봐도 엄청 잘 찍으셨다. 감탄이 나왔다.
나의 칭찬에 할아버지께서는 활짝 웃으시면서 자기처럼 이렇게 저렇게 찍어보라고 알려주셨다.
신나서 얘기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게임 속 NPC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말 걸면 준비해둔 말을 재잘재잘 늘어놓는 NPC.
참 신기하다.
한강에서든 공원에서든 혼자 걷다 보면 종종 어르신들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시는 걸 보면.
나도 그런 용기 있는, 정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귀여우신 NPC 할아버지 덕분에 알았다.
저 새는 왜가리이고, 물고기 잡아먹으려고 몇 시간째 저러고 서 있다는 사실을.
"쟤가 왜 한 발로 서 있는지 알아?"
갑자기 시작된 유퀴즈 타임. 잠깐 씽크빅 공장을 돌려본 뒤 대답했다.
"빨리 도망 가야 되니까요..?"
나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시고는 정답을 알려주셨다.
"두 발 다 떼면 넘어지잖아, 하하하!"
새와 식물을 좋아한다며 아까 본 노란 꽃이 창포꽃이라는 것도 알려주신,
수다와 유우머가 넘치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오늘 처음으로 깔깔 웃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오늘의 뚜벅뚜벅 산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