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수상한, 첫 이란(宜蘭) 여행의 시작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19

by 끼미


타이베이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면 가는, 동쪽의 작은 도시 ‘이란(宜蘭)’.

그중에서도 ‘뤄동(羅東)’, 현지 발음으로는 ‘루어똥’이라는 지역은 나에게 꼭 가야 할 곳이었는데,

<상견니>의 핵심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내 앞에 허광한씨가 나타나기 전,

그의 흔적이라도 느끼고 싶어 이란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어떤 도시인지도 잘 모른 채 무작정 찾아간 이란은 이상하고 수상한 곳이었다.




이 만두, 좀 이상한데?


'금강산도 식후경'.

먹순이의 교리를 실천하기 위해 뤄동에 도착하자마자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만두 가게로 향했다.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엉켜 있지만 질서 있는 아침 시장을 지나 걷다 보니 저 멀리 '小湯包'(샤오롱빠오, 만두의 한 종류)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도.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여기가 한 시 반까지만 장사한다지만 이 아침에 줄을 선다고...? 만두 먹으려고...? 이때는 몰랐다. 대만 사람들은 맛집에 줄 서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아침부터 만두 먹는 게 일상이라는 걸.



30분이라는 기나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입장했다. 자리에 앉아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만두, 샤탕빠오(小湯包)가 나왔다. 만두를 사면 단무지를 필수로 주는 우리나라의 만두집과 달리 달랑 만두 한 접시만 내어줬다. 밑반찬을 돈 주고 사 먹는 대만다웠다.


젓가락으로 만두 한 알을 집어 숟가락 위에 올렸다. 자, 얼마나 맛있나 먹어볼까? 뜨거운 육즙에 입천장 데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물었다.


음? 내가 생각한 그 만두가 아니었다. 딘타이펑에서, 어학당 근처 만두집에서 먹어본, 샤오롱빠오(小籠包)랑 달랐다. 피가 더 두껍고 육즙은 더 적었다. 샤‘탕’빠오랑 샤오롱빠오랑 다른 건가? 모르겠지만 일단 천천히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비비고 교자보다 1.5배 정도 두꺼운 피는 쫀득하면서 씹을 수록 밀가루의 고소한 맛이 났으며, 적당히 들어 있는 육즙은 기분 좋은 기름기와 촉촉함을 머금고 있었다.


맛있었다. 기다린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역시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 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인정!


맛있긴 했지만 먹다 보니 역시 단무지가 생각났다. 원래 칼칼한 김치만두를 좋아하는 나에겐 빈속에 고기 만두만 먹기엔 살짝 느끼했다.


사장님, 단무지.. 아니 생강채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수상한 공짜 버스


만두로 에너지 보충을 하고 오늘의 진짜 목적지로 가는 시내 버스를 타러 갔다. 시장 안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조그만 봉고차 한 대가 왔다. 어렸을 때 많이 탔던 피아노 학원차 같은 봉고차였다.


겉에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단색으로 칠해진 버스만 봐온 내 눈에는 전혀 시내 버스로 안 보였다. 혼자였다면 이게 시내 버스 맞나 아리까리했겠지만 어르신들이 타시는 걸 보니 학원 차는 아닌 게 확실했다.


어르신들과 이미 타고 있는 손님들을 믿고 봉고차에 탔다. 그런데 또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반적인 시내 버스라면 있어야 할, 교통카드 찍는 기계가 안 보였다. 현금 넣는 통 같은 것도 없었다. 어리둥절하지만 일단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곧 버스 문이 닫히고 기사님께서 손님들을 쓱 둘러 보더니 장부에 뭔가를 적으셨다. 아마 탑승객 수 같았다. 그러고는 바로 출발했다. 카드를 찍으라거나 현금을 내놓으라는, 그 어떤 말도 없이.


손님 중 그 누구도 돈을 내거나 교통카드를 찍지 않았다. 다들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가만히 있었다. 속으로 '이란시에서 운영하는 공짜 버스인가? 공짜면 나야 땡큐지.'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래도 진짜 공짜인가 싶어서 구글에서 검색해 봤지만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구글이 아니라 기사님이나 손님한테 물어보면 될 일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용기가 없었다. 질문은 할 수 있지만 대답을 못 알아듣고 어버버 하는 나를 비웃을까봐 두려워 했었다. 중국어 잘하고 싶어서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밤낮으로 공부하고 있었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건데.



타이베이에서 온 손님도 공짜로 태워주는 이란의 인심 후한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했다. 낯선 동네를 20분쯤 달려 버스에서 내리니 논과 단독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시골이었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늘어선 반대편으로 건너와 뤄동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다음 버스 올 때까지 남은 시간은 단 40분.


시작됐다.

금방이라도 타죽을 것 같은 땡볕 아래, 애간장도 같이 타는 성지(聖地) 순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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