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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Aug 19. 2024

대만의 이상한 아침 시장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08

대만 아침 시장에서 보고 경험한, 이상하고 신기한 세 가지





정말 가지가지하네

대만의 타로와 가지

대만의 아침 시장에는 우리네 전통 시장처럼 야채와 채소를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양배추나 파프리카 등 내 눈에 익숙한 것들도 많았지만, 타로(芋頭)나 죽순처럼 우리나라 시장에선 보기 힘든 작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신기했던 야채는 가지(茄子)였다. 대만 가지를 처음 봤을 때는 이게 진짜 가지가 맞나 의심스러웠다. 보라색이고 길쭉하게 생긴 것이 가지인 것 같긴 한데 우리나라 가지보다 적어도 2배 이상은 길었기 때문이다. '가지'가 아니라 '가지가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생김새였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가지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침 시장에서 이 요상한 가지가지를 볼 때면 엄마 생각이 났다. 가지 나물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 이 가지가지 갖다 주면 가지 나물도 두 배로 먹을 수 있으니 엄마가 좋아할 텐데. 어떤 날은 가지 가게 앞에서 엄마 생각에 찔끔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정말이다). 가지 보고 울다니, 나도 참 가지가지한다 정말.


내가 본 가지가지는 '떡가지(麻薯茄)'라는 가지의 한 품종으로, 쫄깃한 식감이 마치 떡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대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지이며 중국에서 건너온 품종이다. 짙은 보라색 껍질과 휘어진 끝부분이 특징이며, 주요 생산지는 대만 장화(彰化)시의 얼수이(二水)라는 지역이다.




가판대 위 돼지고기가 내게 가르쳐 준 것


하지만 아침 시장에서 본 가장 충격적인 모습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고기를 파는 가판대였다. 징메이를 비롯한 대만의 아침 시장에서는 고기를 가판대 위에 그냥 주우욱 늘어놓고 팔았다. 우리나라의 정육점에서 보던 유리 쇼케이스나 냉장고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평소 비위가 약한 나는 가판대 위 고기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시뻘건 생고기 덩어리들이 왠지 징그러웠기 때문이다(물론 그래놓고 집 가면 삼겹살 맛있게 구워 먹었다). 생고기를 실온에 두고 판다는 것도 상당히 께름찍했다. 냉장 보관해도 상할 것 같은 이 무더운 더위에 얼음팩 하나 없이 저렇게 늘어놓다니, 보기만 해도 왠지 배가 슬슬 아팠다.

타이중 어느 아침 시장의 고기 가판대

그 후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 깨달았다. 저 고기는 결코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아침 시장의 다른 가게들이 그렇듯 고기 가판대도 아침 일찍 문 열고 정오가 되기 전에 철수한다. 그렇기에 고기를 상온에 두는 시간은 길어봤자 5시간 정도였다.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고기가 정말 신선했다는 점이다. 언젠가 용기 내서 쳐다본 고기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다시 살아나 움직일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당일 새벽에 도축한 고기였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아무리 더워도 이 고기들은 상할래야 상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기후도 문화도 다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대만을 바라보고 '여기 좀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고기가 얼마나 신선한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이상한 건 고기 가판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내 기준만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말자'. 가판대 위 돼지고기가 나에게 가르쳐준 교훈이었다.




피쉬볼 가격이 이상하'근'

무게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아침 시장

대만의 아침 시장은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도 우리나라와 달랐다. 우리나라처럼 '한 개당 얼마' 또는 '얼마에 몇 개' 이렇게 파는 곳도 있었지만, 가격표에 '한 근(一斤, 600g)에 얼마'로 표기해 둔 가게들도 많았다. 즉 무게에 따라 가격을 받는 것이다. 관찰해본 바로는 보통 저렴한 가격의 가판대에서는 개당 가격으로, 조금 비싸게 파는 가게는 무게에 따른 가격으로 팔았다. 

'근'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나에게 아침 시장의 이 가격 책정 방식은 공포였다. 생선 한 마리를 사고 싶어도, 특이한 두부를 사볼까 싶어도 얼만큼이 한 근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더위와 싸우며 시장까지 걸어왔는데 비싸게 사면 억울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무게까지 다 쟀는데 안 산다고 하는 건 또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 시장에 가면 주로 개당 가격을 적어둔 가게에서 구입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무게당 계산 방식을 처음 시도해본 피쉬볼(鱼丸) 가게

그런데 참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훠궈를 먹으러 가면 너는 이거 먹으러 왔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내가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피쉬볼(鱼丸)이었다. 어느 날 아침 시장에 갔다가 딱 봐도 맛있어 보이는 피쉬볼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시장의 즉석 어묵 가게처럼 피쉬볼을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문제는 그 어디에도 가격을 적어놓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뒤쪽에 있는 저울로 봐선 무게당 가격을 받는 게 분명했다. 한 근에 가격이 얼마일지, 몇 알이 한 근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피쉬볼의 퀄리티를 보아 가격이 저렴하지 않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소심한 짠순이인 나는 시장을 바퀴 돌면서 계속 고민했다. 


'완전 맛있어 보이는데 사볼까? 담았는데 겁나 비싸면 어떡하지? 근데 냄새부터 이미 맛있던데!'


결국 피쉬볼 가게 앞을 세 번째로 지나가던 길에 드디어 멈춰섰다. 떨리는 마음으로 얼마냐고 물어보니 종류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다고 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마인지 친절하게 알려주셨지만 가격을 예상할 수 없는 건 똑같았다. 아주 쪼끔 더 고민한 끝에 기다란 집게와 비닐봉지를 집어들고 종류별로 몇 개씩 담았다. 옥수수, 버섯, 부추 등 골고루 담긴 내 피쉬볼들은 주인 아주머니의 손을 거쳐 저울 위에 올라갔다. 긴장됐다. 과연 얼마나 나올까?


긴 고민 끝에 사 먹은 피쉬볼

내 피쉬볼은 49위안(元), 우리나라 돈으로 약 2천 원이었다. 생각보다 비싼가 싶었지만 맛을 보니 '이 퀄리티에 이렇게 싸다니 이상한데?'싶었다. 지금껏 내 입 속을 거쳐갔던 피쉬볼 중에서 이 피쉬볼이 가히 최고였다. 하이*라오에서 몇 배로 비싸게 주고 먹는 피쉬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녹진하고 달짝지근하면서 감칠맛이 가득한, 입에 쫙쫙 달라붙는 피쉬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비싸도 더 많이 사 먹었어야 했는데 싶어 후회된다. 오직 징메이 아침 시장에만 있었던, 한국에서는 먹을 수 없는 피쉬볼이었으니. 그 순간, 그 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참고자료

https://www.newsmarket.com.tw/blog/19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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