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에서 남과 함께 산다는 것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09

by 끼미


대만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된 두 번째 쉐어하우스(이하 '쉐하').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다. 매일 하메들과 중국어로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밥도 같이 먹고, 시장이나 마트도 같이 가는,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봤던 쉐하 생활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타국에서의 공동 생활은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세 번의 룸투어 끝에 구한 쉐어하우스. 대만 드라마에서 봤던 대만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두 명의 하메들과 함께 생활했다. 내 방과 바로 붙어 있는 작은 방에는 여든이 넘으셨다는 할머니가, 맞은편의 가장 큰 방에는 30대 여자 직장인이 살았다.


직장인 하우스 메이트(이하 ‘하메’)는 쉐하에서 지낸 네 달 동안 얼굴을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분이 퇴근하고 오면 나는 식당에서 돌솥비빔밥을 나르고 있었고, 한국인 워홀러는 주말마다 대만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바빴다. 겨우 인사만 나눈 정도였지만 그 하메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사한 다음날, 나에게 타로 무스가 든 빵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 옆방에 사셨던 할머니도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온 새로운 하메에게 냉장고에 있는 김치를 보여주며 친근하게 대해주셨고,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본인이 안 입는 자켓도 선뜻 선물해 주셨다. 세탁기와 건조기, 주방 가전 등의 사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중국어로 '좋은 아침'이라는 뜻의 "자오안(早安, 편안한 아침)"이라는 인사를. 이전 쉐하에서 몇 달 동안 혼자 지내며 외로웠던 한국인이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인사였다.




그러나 두 번째 쉐하에서의 '좋은 아침'은 예상보다 일찍 막을 내렸다. 매일 아침 옆방에서 들리는 TV 소리에 강제 기상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아침 7시부터 거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옆방 할머니는 흥이 많은 분이셨다. 덕분에 깨달았다. 나는 잠귀가 밝다는 사실을. 4년간 야행성인 고슴도치를 키우며 밤마다 쳇바퀴 타는 소리에 단련된 줄 알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소음은 견딜 만했다. 어찌 보면 누군가와 같이 사는 이상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다만, 그 쉐하를 떠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있었다.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다거나, 샤워하고 있는데 들어오셔서 볼일을 보신다거나, 화장실 변기와 건조기가 고장 난 걸 내 탓으로 돌리신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속옷도 안 입고 있던, 나체로 씻고 있던, 밤에 화장실에 가지도 않았던 나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건들이었다. 짧은 중국어로 노크해 달라고,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을 해도 되풀이되는 상황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물론 나도 100% 피해자는 아니었다. 샤워 후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제거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었고, 브리타 정수기에 물을 채워놓는 걸 깜빡해서 한소리 듣기도 했었다. 아마 그 외에도 내 잘못들이 여러 있었을 것이다. 나도 할머니에게 모든 걸 이야기하지 않았듯 할머니 역시 그러하셨을 테니까. 경험 많은 쉐하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결국 나는 다시 고독한 생활을 선택했다.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대만 구경을 더 열심히 다녔다. 나갈 일이 없어도, 침대에 누워 쉬고 싶어도 일단 쉐하에서 빠져나왔다. 매일 도망 다니는 건 피곤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병원 갈 때 말곤 집에만 계시는 할머니에게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싶었는데, 말동무는커녕 말 섞는 걸 피하게 됐다니. 분명 처음에는 좋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시 회복할 수는 없을까? 고민했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네 달 뒤 쉐하에서 방을 뺄 때까지도.



삼십 년 인생을 살면서 만난 가장 어려운 미션이었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혼자 산 한국인이, 남의 나라에서 남과 함께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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