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10
“대만 날씨 어때? 우리 지금 한강이야~”
”좋겠다, 나도 한강 가고 싶어... 뿌엥...“
”헐, 우는 거야? 울.지.마! 울.지.마!“
휴대폰 화면 속으로 보이는 여의도 한강 공원의 야경, 돗자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친구들.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순간, 고독한 대만 워홀러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하루 종일 TV 틀어놓는 옆방 할머니 때문에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여가던 겨울. 한국 친구들과의 온라인 모임, 이른바 랜선 모임은 거의 유일한 해방 창구였다. 이 모임은 대만 입국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열 번 중에 열 번은 나의 요청으로 개최되었다. 만 서른 살, 한창 현생을 사느라 바쁜 친구들이었지만 타지에서 외로워하는 나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대학교 동기들인 우리는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 랜선 모임을 가졌다(카카오톡과 구글 미트에 무한한 감사를). 한 번 시작된 수다는 3시간씩 이어졌다. 대만 맥주 한 캔 또는 대만 과자 한 봉지와 함께 한 랜선 모임, 이 수다의 밤은 그리운 친구들을 보는 자리이자 타지 살이의 한을 푸는 자리였다.
즐거운 자리이기에 웬만하면 좋은 얘기만 하고 싶었다. 대만에서 허광한 만난 얘기, 시장에서 공짜로 당근 받은 얘기 같은 것들. 하지만 내 뜻대로 안 풀리는 대만 생활에 많이 징징대기도 했다. 대만 진짜 너무 덥다, 옆방 TV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고 저쩌고... 팔자 좋은 백수의 한탄이었다. 그러나 랜선 모임 멤버들은 나의 징징거림을 성심성의껏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다. 역시 대만 잘 다녀오라고 갖가지 선물까지 해줬던, 다정한 친구들이었다.
랜선 모임을 할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동안 왜 몰랐을까?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대만.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외로워서였다. 그 누구도 임용고시에서 세 번 떨어지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나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친구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도 있었다. 나만, 오로지 나 혼자만 이 모양이었다. 그러니 나와 달리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속내를 진솔하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징징대는 친구가 되기 싫었고, 한심한 친구로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대만에 왔다. 우울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만나느니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건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죽을 만큼 외로웠던 이유는 친구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내 마음을 꺼내놓지 않아서였다. 친구들은 내가 랜선 모임에서 힘들다는 얘기를 몇 번씩이나 해도 들어주었다. 대만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에게 대단하다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언제든 내 얘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는 것마다 족족 실패한 나를 한심하게 보지도 않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랜선 모임이 더 큰 외로움을 가져다줄 때도 있었다. ‘친구들은 한국에서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데, 나는 혼자 대만에서 왜 이러고 있나.’ 하고 현타가 세게 오기도 했다. 비교라는 행위는 물리적 거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때도 나를 달래준 건 역시나 친구들이었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랜선 모임 글을 읽은 친구들이 응원 댓글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친구들은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만에서 혼자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내 외로움은 내가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려움도 함께 나누는 사이가 친구라는 사실을.
내 블로그를 보며 ‘얘 어쩌냐...’ 하고 진심으로 걱정했다던 나의 친구들.
그들이 있어 고독한 워홀러는 대만에서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버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