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13
가오슝에서의 아침,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오늘 점심은 또 뭐 먹지?’
똑같은 고민을 한 지도 벌써 11개월째였다. 한때는 대만 친구를 사귈 방법보다 싸고 맛있는 점심 메뉴를 더 치열하게 탐구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대만 음식 먹을 날도 이제 한 달뿐, 하나라도 더 먹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이곳은 가오슝이었다. 타이베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맛의 도시.
가오슝 한달살이를 하며 가장 많이 먹은 점심 메뉴는 대만식 샌드위치, 샤오삥(燒餅)이었다. 자오찬(早餐, 아침 식사) 가게에서 파는, 타이베이에서도 주구장창 사 먹은 ‘그’ 샤오삥. 질릴 만도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오슝의 샤오삥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에선 고소한 계란 부침개와 함께 양상추나 새싹 같은 생채소가 든 셩차이(生菜) 샤오삥을 즐겨 먹었다. 모든 채소를 기름에 볶거나 삶는 대만에서 만년 다이어터가 찾아낸, 몇 안 되는 신선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가오슝의 샤오삥에는 생채소 대신 낯선 재료들이 들어갔다. 삭힌 배추절임인 쑤안차이(酸菜)나 건두부인 또우깐(豆乾), 향신료에 절인 무생채 등 상당히 대만스러운 재료들이었다. 남쪽 지방의 음식이 북쪽보다 더 향토스럽다던 말이 사실이었다.
솔직히 내 입맛엔 영 아니었다. 그 쿰쿰하고 시큼한 향을 맡으면 속이 메슥거릴 정도였다. 그래도 남길 순 없어 한쪽 코를 막고 먹으면서 생각했다. 대만 사람들 입맛엔 정말 이 샤오삥이 아침부터 줄 서서 먹을 만큼 맛있는 걸까? 대만 온 지 거의 일 년이 되어가는 데도 이곳의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사실 그럴 줄 알면서도 먹었다. 사진만 봐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게 자명했지만, 이 알 수 없는 샤오삥 먹으러 굳이 한 시간 거리를 달려왔다. 가오슝 사람들은 이런 샤오삥을 좋아한다니까 한 번은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저 시큼한 녀석들이 의외로 샤오삥과 잘 어울릴지도.
그렇게 몇 번의 도전 후, 결국 타이베이식 샤오삥으로 돌아왔다. 입에 안 맞는 현지 음식을 좋아해 보려고 애쓰기엔 나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가오슝 샤오삥의 특별한 맛에 적응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시도해 본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내 취향이든 아니든 샤오삥 애호가에겐 새로운 샤오삥을 맛보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오후 간식도 가능하면 가오슝 현지식으로 먹었다. 하얀 설탕 도너츠(원조는 타이난이다)나 타로 튀김처럼 타이베이에서 보기 힘든 간식을 먹으며 남부 지방에 사는 재미를 만끽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사 먹은 디저트는 삥(冰)이었다. 3월이지만 벌써 낮 기온이 30도로 무더운 가오슝 거리를 걷다 보면 시원한 빙수 생각이 간절했다. 타이베이에서 이미 수십 그릇 해치우고 와서 이제는 지겹다고 생각한 삥. 그러나 가오슝에 오니 새로운 삥이 기다리고 있었다.
‘뻔위엔삥(粉圓冰)’. 가오슝을 비롯해 남부 지역에서 즐겨 먹는다는 빙수의 이름이었다. 뻔위엔(粉圓)은 버블 밀크티에 들어가는 작은 버블(펄)로, 타이베이에선 보통 쩐쭈(珍珠)라고 하지만 남쪽에선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즉, 뻔위엔삥은 작은 뻔위엔(버블)을 올린 빙수였다.
사진으로 봤을 땐 타이베이에서 먹었던 빙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똑같이 흑설탕물을 끼얹어 주고 팥이나 녹두 등 다양한 재료를 추가할 수 있다고 하니, 양이 좀 적다는 것 말고는 비슷한 맛일 거라고 예상했다.
오랜 검색 끝에 가오슝에서 가장 맛있다는 뻔위엔삥 가게를 찾아갔다. 전통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더니 식탁과 의자에서부터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드디어 만난 대만 남부식 빙수, 뻔위엔삥. 실망스러웠다. 맛이 없었다. 흑설탕물을 한 국자나 붓는 걸 두 눈으로 봤는데도 밍밍하고 싱거웠다. 뻔위엔 말고도 팥, 녹두, 작은 떡 등 좋아하는 빙수 재료들이 들어갔는데도 별로였다. 얼음은 또 어찌나 빨리 녹는지, 그렇게 시원하지도 않았다. 말만 ‘삥’이었다.
이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른 뻔위엔삥 가게들도 찾아가 봤지만 모두 똑같았다. 밍숭맹숭하고 흐리멍텅하고. 타이베이에서 먹었던 달콤하고 시원한, 토핑 가득한 빙수가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뻔위엔삥을 먹으면 먹을수록 궁금해졌다. 가오슝 사람들은 이 빙수가 정말 맛있어서 먹는 건지, 아니면 적당히 시원한 맛으로 먹는 건지.
그러던 어느 날, 건너편 테이블에서 한 남자아이가 엄마랑 웃으며 빙수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문득 생각했다. '난 영원히 이 가오슝의 맛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어찌 보면 당연했다. 대만에서 산 지 일 년도 안 된, 이제 막 가오슝에 온 한국인이 어떻게 모든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홍어나 선지국 같은 건 안 먹던 편식쟁이였다. 그런 내가 아무런 추억도 없는 타국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게 전혀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가오슝을 비롯한 대만 사람들의 입맛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처음 먹어본 음식이 별로여도 내가 뭘 몰라서 이런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국인이 대만 음식 잘 못 먹을 수도 있는 거고, 대만에서 일 년 살았다고 해서 모든 대만 음식을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은 덕분이었다. 대신 샤오롱빠오(小籠包)처럼 내 입맛에 딱 맞는 대만 음식들을 한 번이라도 더 먹기 위해 열심히 돌아 다녔다. 편식이라 할지라도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었다. 얼마 후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