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12
대만 워홀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내게 된 가오슝. 많고 많은 도시 중 하필 이곳을 선택한 건, 오래된 꿈 때문이었다.
한창 졸업 논문 쓰느라 고통받던 대학원생 시절.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지난 겨울 가오슝에서 보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다. ‘얼른 졸업하고 가오슝 가자! 매일 바다 보면서 살아보는 거야!’
그로부터 7년 후, 나는 정말 그 바다를 보고 있었다. 대학원 졸업도,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은, 서른한 살의 대만 워홀러가 되어서.
내 처지가 어떻든, 가오슝의 바다는 나를 따뜻하게 반겨줬다. 특히 7년 만에 다시 찾은 치진(旗津) 섬은 오랜 한을 제대로 풀어주었다. 아직 무릎 상처가 낫지 않아 그때처럼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대신 두 다리로 천천히 바닷길을 걸으며 그리웠던 가오슝 바다를 온몸으로 느꼈다. 드넓은 수평선, 바람에 흩날리는 파도 거품, 야자수 너머로 펼쳐진 오렌지빛 노을. 바로 이거였다. 내가 원했던 가오슝 생활.
항구를 낀 보얼 예술특구에서도 실컷 바다를 보고 싶다는 나의 로망은 실현됐다. 하루는 시내 산책하다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보얼로 달려가 해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거실에서 중국어 공부하다가 ‘이왕이면 바다 보면서 하고 싶은데?’ 하며 노트북 들고 버스 타러 가기도 했다. 보얼까진 한 시간 넘게 걸리고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했지만 전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이러려고 가오슝에 온 거였으니까.
그럼에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치진 섬 모래사장에 몇 번이나 찾아가면서도 입꼬리는 늘 축 처져 있었다. 보얼 항구에 앉아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봐도 답답한 속은 그대로였다. 바다의 도시 가오슝에서 살며 원할 때마다 실컷 바다를 보는 이 생활, 7년 동안 간직해 온 소망을 이루는 이 순간. 분명히 좋지만, 확실히 슬펐다.
처음엔 그냥 외로워서 그런 줄 알았다. 치진 섬이든 보얼이든 가오슝의 바닷가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보다 누군가와 함께 온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니 시원한 파도와 물드는 노을 앞에서 같이 웃고 떠드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혼자 모래사장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오슝 바다에 갈 때마다 울고 싶었던 건 단지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치진 섬과 보얼에 갈 때마다 이곳을 여행했던 7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땐 당연히 대학원 졸업하고 다시 가오슝에 올 줄 알았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 많고 밝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답 없고 우울한 인간이 됐을까. 난 도대체 7년 동안 뭘 한 걸까.’
거기다 벌써 대만 워홀 11개월째였다. 이젠 정말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대만에서 딱히 이룬 것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막막하고 암울한 시기. 이런 상황이니 종종 꿈에도 나왔던 가오슝 바다를 보면서도 한숨만 나오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곳은 가오슝의 바다였다. 눈앞에서 하얀 윤슬이 반짝거리고 귓가에선 파도가 철썩거리는, 멈춘 듯하지만 쉴 새 없이 요동치는 바다. 울고 싶다가도 왼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오른손으로는 바닷바람이 헝클어놓은 머리카락을 정돈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을 짓누르던 돌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아까보다 시원하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었다.
‘그때 대학원 졸업했어도 막상 박사니 취업이니 준비하느라 가오슝에서 살아볼 엄두는 못 냈을지도 몰라. 재작년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지 않았다면 과연 모든 걸 포기하고 대만에 올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잊힐 뻔했던 꿈을 이루게 해 준 지난 7년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짭짤한 바다 내음을 들이마시며 조금 더 앉아 있다 보면 이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바다에 와서 좋았다고, 역시 가오슝에 오길 잘했다며 버스를 타러 갔다. 내일이면 이런저런 생각에 또 울적해질 거라는 걸 알았지만 괜찮았다. 그럼 또 바다 보러 오면 되니까, 그러려고 가오슝에 온 거니까.
7년 만에 다시 만난 가오슝의 바다. 그곳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으려는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