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11
세 번째 쉐어하우스 집주인의 아들 아카에게서 ‘한국 이모 3호’로 인정받은 후, 나에게 미세하지만 큰 변화가 나타났다. '세상은 혼자 사는 거야'라던 오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카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두 번의 결정적 사건을 거치며 나를 바꿔놓았다.
첫 번째 사건, 아니 사고는 쉐하 식구들과의 첫 식사 며칠 후에 발생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외출했던 평소와 달리 집에서 여유로운 오전을 보내고 점심도 근처 자오찬(早餐, 아침 식사) 가게에서 포장해 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전까진 대만 분위기 느끼려고 주로 식당이나 공원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쉐하 식구들 그리고 이 집이 편해지고 나니 이제는 거실에서 쑤나 옆방 언니와 얘기하면서 먹는 게 더 좋았다. 설령 식사 타이밍이 안 맞아서 혼자 먹더라도.
그날따라 저녁도 집에서 먹고 싶어 자전거 타고 삐엔땅(便當, 도시락)을 사러 갔다. “오늘따라 날씨도 좋네”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살짝 낮은 턱을 오르려던 순간,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눈 뜨니 바로 앞에 시멘트 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왼쪽 무릎에서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시뻘건 피가 나고 있었다. 반바지 아래 드러난 맨 무릎 그대로 바닥에 갈아버린 거다. 30년 인생에 이런 사고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삐엔땅을 사러 갔다. 무릎에서 피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반찬을 골라 담았다. 다쳐도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여긴 저녁 챙겨줄 엄마가 없으니까.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삐엔땅 가게에서 가져온 휴지로 무릎의 피를 닦으며 생각했다. 대만에서 자전거를 몇 번이나 탔어도 괜찮다가 왜 막판에 사고를 치나, 다쳤으면 택시 타고 집이나 가지 왜 돈 아낀다고 이럴까, 한숨이 나왔다.
현관문을 여니 거실에서 대화 중인 쑤와 쮠쮠 언니가 보였다. 잘 다녀왔냐고 묻는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뿌앵 하고 눈물이 터졌다.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어요. 헌 통(很痛, 아파요)!”
다행히 두 사람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집주인 쑤는 서랍에서 식염수와 소독약을 꺼내오더니 곧장 응급처치를 해줬다.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둔 엄마에겐 이런 일은 일상이라는 듯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쮠쮠 언니 역시 차분하게 나를 달래줬다. 무릎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소리 지르는 나에게 다 했다고, 조금만 참으라며 내 손을 잡아줬다.
그런데 좀 희한했다. 눈물 나게 아파죽겠는데, 입꼬리는 위로 올라갔다. 아직 피 나는 내 무릎에 거즈를 붙여주는 쑤, 도대체 어떻게 집까지 왔냐며 걱정해 주는 쮠쮠 언니. 이 고통스러운 순간, 내 곁에서 엄마처럼 다정하게 챙겨주는 이들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웃긴 말이지만 다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덕분에 두 사람을 이렇게 부를 수 있게 됐으니까.
“씨에씨에(謝謝, 고마워요), 쑤 마마~ 쮠쮠 마마~”
쉐하 식구들의 존재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무릎 잃고 사랑 얻은, 자전거 사고 다음 날이었다. 아픈 무릎으로 가오슝 나들이를 다녀온 나는 쉐하 식구들과 잠깐 수다 떨고 일찍 잠들었다. 기절 상태로 자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침대가 흔들린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역시 지진이었다. 조금 놀랐지만 다시 잠을 청했다. 대만 생활 11개월 차, 이 정도는 익숙했다. 30분 뒤, 아까보다 더 강한 진동과 함께 재난 문자가 왔다. 좀 무서웠다. 거실에 나가볼까 했지만 다들 조용하길래 다시 눈을 감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 시간 후, 더 센 놈이 왔다. 창문이 삐걱거리며 세차게 흔들렸다. 두 눈을 꼭 감고 온몸으로 느껴지는 공포를 가만히 견뎌냈다. 한 차례 소란이 지나가고, 곧바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어디로 대피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맞은편 문이 열리고 쑤가 나왔다. 곧이어 나온 옆방 언니도 다들 괜찮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더니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조금 진정됐다.
방문을 열어둔 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권 꺼내놔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쑤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롱롱, 걱정하지 말고 자. 완안(晚安, 잘 자)!>
평생 지진과 함께 살아온 대만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설령 더 큰 지진이 오더라도 쑤와 쮠쮠 언니, 두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무서운 지진이 급습한 이 밤, 혼자가 아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거실에 나가니 평소처럼 쑤와 옆방 언니가 대화 중이었다. 두 사람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안도와 기쁨의 한숨이 나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잘 잤냐고 묻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둘 아니었으면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라고, 이렇게 다시 만나서 감사하다고.
5년이 지난 요즘도 자전거를 타거나 대만 지진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상상해 본다. 만약 그날 집에 쑤와 쮠쮠 언니가 없었다면, 나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열 배는 더 아프고, 백 배는 더 무서웠을 것 같다. 언제 다치고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가오슝 생활, 엄마 같은 쉐하 식구들과 함께여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