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09
소류구에 다녀온 다음 날, 옆방 언니가 말했다.
“나랑 같이 트램 타러 갈래요?”
믿기지 않았다. 낮에는 블로그 관련 일하랴 저녁엔 라이브 방송하랴 바쁜 옆방 언니가, 멀리 놀러 가는 거 안 좋아한다고 말했던 그 쮠쮠 언니가, 아직 가오슝의 유일한 지상철을 안 타봤다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먼저 제안하다니.
“얼른 옷만 갈아입고 나올게요!”
서둘러 방으로 뛰어갔다. 언니 마음 바뀌기 전에.
솔직히 좀 시시했다. ‘트램’이라길래 뭐 특별한 건 줄 알았는데, 단수이에서 이미 타본 적 있는 그 경전철이었다.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다니는 미니 기차. 대만의 기존 지에윈(捷運, 지하철)과 다른 점이라면 길 한복판에 뜬금없이 야외 승강장이 있고, 어떤 구간은 차도 한가운데를 달린다는 거였다. 햇볕이 잘 든다는 것 말곤 내부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트램보다 더 흥미로운 건, 옆자리에 언니가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니의 제안을 덥석 물긴 했지만, 솔직히 엄청 긴장됐다. 누군가와 함께 길을 나서는 게 수개월만인 데다 아직 언니랑 친해진 것까진 아니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생각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선지 트램 타고 가면서 언니랑 나눈 대화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다, 방금 지나간 85 따로우(大樓,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본 적 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다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느린 듯 빠르게 변하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언니와 재잘댔던 그 한 시간이 무척 따뜻하고 포근했다는 거다. 그날 트램 안을 환하게 밝히던,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처럼.
“언니랑 같이 와서 너무 좋아요.”
옛 창고를 개조한 건물의 창가에 앉아 항구를 바라보며 언니에게 고백했다. 순도 100%의 진심이었다. 며칠 전 같은 장소에 혼자 있었을 땐 마음에 들면서도 어딘지 허전했었지만, 언니와 나란히 앉아 조용히 바다를 감상하는 지금은 이 말만 계속 나왔다. ‘아, 좋다!’
트램 안에 있을 때까지도 두근거렸던 심장은 어느새 창밖의 저 해수면처럼 고요해졌다. 언니랑 같이 보얼 거리를 걷고 구경하며 계속 떠들다 보니 금방 언니가 편해졌다. 대뜸 저런 고백까지 할 정도로.
“나도요. 롱롱 덕분에 이런 데도 와보고. 나 혼자서는 절대 안 올 텐데.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요.”
“저야말로 씨에씨에(謝謝, 감사합니다)합니다. 맨날 혼자 다녀서 외로웠어요.”
이 급진적인 전개에는 조금 전에 먹은 디저트의 힘도 컸다. 보얼 예술 지구에 오기 전 ‘써니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언니와 마주 앉아 달콤한 펑리수와 따뜻한 우롱차를 먹으며 대화하면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역시 친해지는 데는 먹는 게 최고였다. 게다가 공짜라서 효과가 더 좋았던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언니와 바다 멍 때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오늘 아침에도 집주인 쑤가 딴삥을 줬는데 원래 이렇게 잘 챙겨주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쑤 아들인 아카는 발랄하지만 어른스러운 것 같다는 말도 하고, 전날 밤 언니가 만든 바나나 김치는 어떤 맛일지 추측하기도 하고.
지극히 평범한 대화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혼자 돌아다닐 때마다 일행과 같이 온 사람들 보며 부러워했던, 그 대화를 내가 하고 있다는 게 행복했다. 그것도 에어비앤비에서 우연히 만난 옆방 언니와,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생각할수록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모름지기 보얼에 왔으면, 특히 첫 데이트라면 아름다운 노을까지 봐야 했지만, 이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주인 쑤의 제안으로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언니, 근데 쑤랑 아카는 뭐 좋아해요? 뭐 사가면 다들 좋아할까요?”
세 번째 쉐어하우스 식구들과의 첫 식사 자리.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우리의 또 다른 처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