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북이 그리고 외로움의 섬, 소류구(小琉球)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08

by 끼미


혼자 가오슝 돌아다닌 지 일주일째. 가고 싶으면 가고 먹고 싶으면 먹는 자유로운 생활이 좋았지만, 문득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들곤 했다. 고슴도치 계란빵 가게 다음으로 가고 싶었던, 그 섬에서의 이틀이 딱 그랬다.




가오슝 남동쪽의 작은 섬, 소류구(小琉球)로 가는 배에 올랐다. 바다거북이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머릿속에는 바다거북이 대신 사람 생각으로 가득했다. 옆방에 사는 쮠쮠 언니.


‘물어나 볼 걸 그랬나...’


사실 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랑 하이꾸웨이(海龜, 바다거북이) 보러 가지 않겠냐고. 왠지 언니랑 같이 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며칠을 망설이다 결국 혼자 왔다. 여행 비용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고, 집에 있는 게 좋다던 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런데 배 안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니 다시 언니 생각이 났다. 지금이라도 전화해 볼까 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가방에 넣었다. 그 집에서 잠만 자는 호텔 손님처럼 지내겠다고 해놓고선 옆방 언니에게 같이 여행하자고 하는 건 좀 웃기지 않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언니의 얼굴을 지우고, 대신 그 자리에 바다거북이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이번 여행은 거북이 보러 가는 거야.’ 그렇게 속으로 최면을 걸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소류구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소류구 가는 배와 그 안에서의 풍경


바다거북이 보는 것 말곤 아무 계획 없는 이번 여행. 일단 전기 자전거 한 대 빌려서 여기저기 쏘다녔다. 이 섬의 특산품이라는 꽈배기 과자 마화(麻花) 사고, 이따 스노클링 할 해안가도 미리 와보고, 점심으로 기다란 딴삥 사서 바다 바라보며 먹고, 발길 닿는 대로 동굴 구경하고.


드디어 바다거북이 보러 가는 길. 전기 스쿠터 타고 내리막길을 빠르게 달리며 외쳤다.


“아~~~ 시원하다~~~~”


여행은 역시 혼자 하는 게 최고였다. 뭐 먹고 싶냐 어디 가고 싶냐 안 물어봐도 되고, 다리 아프거나 피곤하진 않은지 신경 안 써도 되고, 얼마나 좋은가. 언니랑 같이 왔으면 아무래도 불편했을 거라고, 언니에게 안 물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전기 자전거 타고 돌아다닌 소류구 / 소류구의 특산품 과자


‘하, 외롭다....’


혼자가 좋긴, 개뿔이었다. 소류구에서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그리고 저렴한) 방법인 스노클링을 하러 왔는데, 나만 외톨이였다. 서로 수경이 잘 씌워졌는지 확인해 주는 연인과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뒤통수의 고무 끈을 단단히 조였다. ‘딴생각하지 말고 숨이나 잘 쉬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난생 첫 바다거북이 영접이자 생에 두 번째 스노클링 직전. 옆에 있는 여자분들에게 심장 터지겠다며 먼저 말 걸고 싶었지만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질까 봐 그냥 조용히 있었다.


그로부터 20분 뒤, 다시 모래사장으로 돌아왔다. 양옆에선 스노클링 함께 한 사람들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거북이 너무 귀엽다며 후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나 흥분 상태였던 나는 조용히 수경을 벗으며 속으로 맞장구쳤다.


‘거북이가 풀 뜯어먹는 거 진짜 귀엽지 않아요??? 아니 글쎄 제 발 바로 밑으로 거북이가 지나갔다니까요?!! 완전 대박!!!’


그리고 생각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최고라고 했던 말을 취소해야겠다고.


진심이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바다거북이를 바로 코앞에서, 발밑에서 봤으면서도 그다지 신나지 않았다. 대만 워홀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는데도 뿌듯하긴커녕 허전했다.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여행이란 참으로 고독하다는 것을, 소류구의 바닷가에서 제대로 느꼈다.


스노클링한 바다와 바다거북이


소류구의 저녁은 낮보다 딱 다섯 배는 더 쓸쓸했다. 저녁 먹으러 혼자 해산물 구이 뷔페에 갔던 게 문제였다. 소류구에는 숯불 위에 다양한 해산물을 구워 먹는 뷔페가 몇 집 있었는데, 혼밥 하기엔 적절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갔다. 점심에 겨우 딴삥 하나 먹은 상태로 섬 돌아다니고 물놀이까지 했으니, 저녁은 아주 제대로 먹어줘야 했다.


고민 끝에 찾아간 뷔페는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숯불도 제대로였고, 굴과 새우 등 해산물도 비린내 하나 없이 신선했으며, 그 외에 대만식 소세지와 양념 고기 등 맛있는 게 잔뜩이었다. 전기 자전거 운전해야 돼서 맥주를 곁들이진 못했지만, 그 대신 숯불에 구워 더 맛있는 옥수수를 뜯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어떤 점에선 예상했던 대로였다.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들 사이에서 나 홀로 보낸 두 시간은 대만에서 했던 혼밥 중 가장 외로운 식사였기 때문이다. 대만의 고독한 미식가로 산 지 거의 일 년 째지만, 이렇게 넓은 공간에서 남의 가족과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혼자 굴 까먹는 건, 상상 이상의 공허함을 느끼게 했다. 위장이 채워질수록 마음은 비어 가는, 껍데기만 남은 굴이 된듯한 그런 감정.


고양이가 있어 그나마 덜 외로웠던 저녁


다음날 오후, 결국 예정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배를 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바다거북이를 보고 나니 딱히 더 할 게 없었다. 아침에 바다 수영을 해도, 전날 못 봤던 바다 동굴을 봐도, 맛집에서 비빔면을 먹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선실 창문 위로 하루 만에 더 새까매진 내 얼굴이 나타났다. 확실히 지쳐 보였다. 그러면서도 약간 설레보였다. 같이 오고 싶었던 쮠쮠 언니에게, 어디 여행 가서 바다거북이 봤다던 쑤와 아카에게, 나도 바다거북이 봤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아, 얼른 집 가야지!


외로워도 아름다웠던 소류구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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