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07
세 번째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따뜻한 집주인과 옆방 언니. 하지만 그들과 곧장 친해진 건 아니었다. 초반에는 혼자 여행 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일주일간의 기차 여행이 끝나고 본격적인 가오슝 생활이 시작된 날, 가오슝 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으로 향했다. 대만 오기 전부터 찜해뒀던, 대만식 계란빵인 지딴까오(鷄蛋糕)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인스타그램에 나와 있는 주소로 찾아가니 횡단보도 건너편에 ‘鷄蛋糕’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를 이 구석진 동네까지 찾아오게 한 장본인이 그려져 있었다. 중국어로 츠웨이(刺蝟), 한국어로는 고슴도치였다.
전(前) 고슴도치 두 마리의 집사로서 이 고슴도치 계란빵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오죽하면 대만 입국 후 가오슝에서 자가격리 중일 때, 인스타그램으로 가게 주인에게 난 한국에서 온 고슴도치 덕후이고 지금 어느 호텔에서 격리 중인데 여기까지 배달되는지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이 소심한 내가! 반갑지만 너무 멀어서 안 된다는 답장을 받고 어찌나 슬펐던지, 가오슝 가면 바로 여기부터 가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일 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만난 고슴이 계란빵. 사진보다 실물이 훠얼씬 귀여웠다. 먹기 아깝다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됐다. 손바닥 위에 계란빵을 얹고 손가락을 오므려 봤다. 많이 작긴 하지만 두 앞발만 보이게 몸을 돌돌 만 고슴도치 계란빵은 진짜 고슴도치 같았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고슴이.
근처 공원에 앉아 구수한 타로 앙금이 든 계란빵을 먹었다. 고슴이에겐 좀 미안하지만 맛있었다. 아직 따뜻한 계란빵을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너무나 푸르렀고 너무나 따뜻했던, 우리 고슴도치들과의 추억이 밀려들었다.
꾸꾸와 까까. 대만 워홀 내내 하루도 잊은 적 없는 우리 고슴이들은 대만과도 인연이 깊었다. 7년 전 가오슝 여행 왔을 때 꾸꾸를 기르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데려오진 못했지만 꾸꾸의 사진을 뽑아와서 같이 가오슝을 돌아다녔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동네 수족관에서 데려온 까까는 지금 내가 대만에 있는 이유 그 자체였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닥쳤던 까까와의 이별이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게 했었다.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어 도망쳐 온 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곳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고슴도치를 찾아다녔다. 타이베이역 앞 문구점에서 고슴도치가 그려진 엽서를 발견하고선 왕창 샀고, 베이터우의 플리마켓에서는 진짜 같은 고슴도치 인형을 무려 3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들여 데려왔고, 한 달 전부턴 타이동에서 산 고슴도치 모양의 아크릴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니는 중이었다. 대만 와서 늘은 거라곤 중국어도 대만 친구도 아닌, 고슴 아이템이었다.
가끔은 나 자신에게 묻기도 했다. 여태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대만에서도 이러는 건 좀 과하지 않냐고. 새로운 쉐어하우스로 이사 갈 때마다 방 한켠에 우리 고슴이들 사진을 꺼내두고, 고슴 아이템을 보는 족족 사들이는 내 모습이 비정상으로 보이긴 했으니까.
오랜 고민 끝에 떠올린 대답은 “덕분에 덜 외로웠는 걸“이었다. 종종 혼술 했던 대만에서의 밤들, 맥주 사러 간 마트에 서 고슴도치 그려진 맥주를 보며 늘 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음을 떠올렸다. 사람이 고팠던 어느 날엔 한국에서도 안 가본 반려동물 박람회를 찾아가 대만 고슴도치과 그 집사들을 만나기도 했었다. 비록 오늘 계란빵 가게 주인과 그랬던 것처럼 짧은 대화만 나눴지만, 그 덕에 조금은 덜 고독한 하루를 보냈다. 한국 가고 싶다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대만 곳곳에서 마주첬던 고슴도치들 덕분이었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마지막 고슴도치 계란빵을 먹으며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아마도 아닐 거다. 하지만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앞으로는 고슴도치를 보면 이 크어아이(可愛, ‘귀여운)’한 고슴도치 계란빵을 비롯해 대만에서 만났던 모든 고슴도치들이 떠오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