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06
조금 신기했다. 옆방 사는 한국인 언니의 중국어 이름 말이다. ‘쮠쮠(君君)’, 그 귀여운 이름은 언니의 한국 이름 끝 글자 ‘군(君)’을 두 번 반복한 거라고 했다. 참 희한한 우연이었다. 한국어 이름이 ‘ㅇㅇ영(榮)’인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롱롱(榮榮)’이라는 중국어 이름을 지었으니까.
확실히 평범하진 않았다. 5박 6일 여행객이었던 언니가 가오슝의 이 집에서 1년 넘게 지내고 있는 사연은.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여행 중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원래 90일인 대만의 무비자 체류 기간이 계속 연장됐는데, 어차피 퇴사 기념으로 온 여행이었기에 귀국 대신 잔류를 선택했단다. 언니는 대만이 쫓아내기 전까진 계속 있을 거라고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 보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대만이 좋다고.
옅게 웃으며 말하는 언니의 마음이 이해됐다. 세상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아서 좋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이 낯선 나라를 선택한 데에는 간절함이 있었을 거다. 모든 걸 지우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
중국어도 잘 못 하면서 무작정 대만에 온 서른한 살 워홀러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사연을 들은 언니는 딱 한 마디만 할 뿐이었다.
“롱롱도 고생 많았네요.”
그 이상 캐묻지 않는 동지가 고마웠다.
쮠쮠 언니는 정말 재밌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나한테 이렇게 물었다.
“롱롱, 바나나 갈아서 김치에 넣으면 어떨까요? 달고 맛있을 것 같은데.”
김치에 바나나를? 배도 아니고? 토종 한국인으로서 황당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더 재밌는 건, 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여러분, 제 친구는 이상할 것 같대요. 그래도 만들어 볼게요, 바나나 김치!”
언니는 부엌에서 혼자 말하고 있었다. 도마 앞에 놓인 휴대폰 화면을 보며.
어쩌다 보니 대만에서 살게 된 옆방 언니는 역시나 어쩌다 보니 대만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걸 ‘주보(主播)’라고 한다던데, 언니는 주로 한국 음식 만들어 먹고 중국어로 수다 떠는 방송을 진행했다. 매일 실시간 방송에 참여하고 종종 선물도 보내주는 애청자들이 있을 정도로 방송한 지 꽤 오래됐다고 했다.
결국 믹서기로 바나나를 갈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웃겼다. 바나나 김치 담그는 모습을 생중계하고 있는 언니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나.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이건 분명 꿈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콧속으로 칼칼한 고춧가루와 달큰한 바나나 냄새가 동시에 훅 들어왔다. 헛기침이 났다.
언니는 거의 매일 밤마다 라이브 방송을 했다. 하루는 짜장 떡볶이를 만들면서, 어떤 날은 돼지불고기를 볶으면서 혼자 중국어로 뭐라 뭐라 말을 했다. 봐도 봐도 놀라웠다. 한 번도 중국어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는 언니가 대만 사람들 앞에서 저렇게 실시간으로 말을 한다는 게.
언니의 중국어 실력이 엄청 유창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신기하고 부러웠다. 어떻게 언니는 저리 자신 있게 중국어를 할까? 난 돈 내고 어학당을 3개월이나 다녔는데도 대만 사람 앞에만 서면 입을 닫게 되는데. 가끔 옆에서 중국어로 한 마디 내뱉는 것도 떨리는 이 방송을 언니는 어떻게 매일 할까. 아무리 얼굴 없이 목소리만 나오는 방송이라지만 대단해 보였다.
매일 밤 중국어로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즐거워하던 언니. 그 현실 같지 않은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나도 언니처럼 자신 있게 중국어로 말해야겠다고, 틀리면 틀리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일단 내뱉어야 한다고. 쮠쮠 언니의 웃음 덕분에 옆방에 사는 중국어 쭈구리의 어깨가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