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05
가오슝 쉐어하우스에서의 셋째날이었다. 한창 대만 기차 무제한 탑승권인 TR PASS 들고 여행 다니던 시기로, 이날 아침도 방 안에서 조용히 외출 준비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조금 전 주방에서 “자오안(早安, 좋은 아침)” 하고 인사했던 집주인이었다. 자기를 ‘쑤(Sue)’라고 부르라던 집주인은 한달살이 손님인 내게 수줍게 웃으며 뭔가를 건넸다.
“롱롱, 아직 아침 안 먹었지? 이거 너 줄게.”
대만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 만터우(饅頭, 앙금 없는 찐빵)였다.
‘아까 마주쳐서 준 건가? 혼자 먹기 좀 그래서?’
쑤가 주고 간 갈색 만터우를 먹으며 생각했다. 흑설탕 특유의 은은한 단내가 나는 찐빵은 폭신하고 쫀득했다. 함께 건네받은 따뜻한 커피도 한 모금 마셨다. 달지 않고 부드러웠다.
‘다른 에어비앤비도 집주인이 아침 주나?’
이 집에 온 지 3일째이지만 쑤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매일 여행 다니느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니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후기 잘 써달라는 건가?’
첫날부터 과자 주더니 이제는 손님에게 아침밥까지 챙겨주는 쑤. 수상할 정도로 친절한 집주인의 마음이 알고 싶어졌다.
궁금증은 생각보다 빨리 해소됐다. 며칠 뒤 저녁, 가오슝 시내 구경을 마치고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와 방에서 쉬고 있었다. 쑤는 외출한 듯했고 옆방도 조용했다. 살짝 잠들려고 하는 순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마, ~@#%@^&!$”
왼쪽 어깨에 남색 책가방을 걸친 쑤 옆에 웬 남자아이가 신발을 벗으며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실내화로 갈아 신은 그 아이는 거실에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거두고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을 나에게 쑤가 언제나처럼 웃으며 말했다.
“일찍 왔네? 얘는 아카(Aka)야.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아카.”
쑤에게 아들이 있었다.
꽤 놀라운 소식이었다. 쑤가 엄마였다니. 그것도 무려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더 충격적인 건, 쑤의 아들도 이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거였다. 쑤의 부모님 댁에 가는 주말을 제외하고. 이곳에 짐 푼 지 일주일이 넘었는 데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하긴 했다. 그동안 여행 다니느라 온종일 밖에 있었으니까. 밤늦게 집에 돌아와 어김없이 닫혀있는 쑤의 방문을 보면서 쑤는 나와 달리 바른생활하는 어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방문 너머에 또 다른 하우스 메이트가 자고 있었다는 얘기는 내 옆방에 한국인이 산다는 말보다 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아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는 쑤는 영락없는 마마(媽媽, 엄마)였다.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 그 모습을 보니 며칠 전 아침에 쑤가 줬던 만터우와 커피가 떠올랐다.
쑤가 엄마라서 그렇구나. 진짜 식구도 아니고 단지 에어비앤비 손님인 나에게 마주칠 때마다 거실에 있는 과자 먹으라고 권하는 것도 그래서구나. 자식에게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구나.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집주인 쑤가 수상하리만큼 친절한 이유가.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숙박 후기 잘 써달라는 건가 하고 의심했었다니. 아카 데리고 방에 자러 들어가는 쑤를 보며 속으로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 그 단어에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랐다. '장엄마'라고 불리던, 대학생 시절의 나. 틈만 나면 원룸 자취방에 친구들 불러서 밥 해 먹여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런데 임용고시 준비와 알바를 병행했던,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그 몇 년이 통장도, 마음도 닫아버린 짠순이로 바꿔버렸다. 이것도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함께 나누며 행복했던 장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나누긴커녕 타인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서글펐다.
며칠 뒤, 쑤가 다시 내 방문에 노크했다. 내가 좋아하는 딴삥(蛋餅, 계란 넣어 부친 밀가루 전)을 들고서. 이번엔 의심하지 않고 접시를 받으며 생각했다. 나도 맛있는 거 사 와야겠다고. 수상한 집주인이 짠순이 손님에게 부린, 작은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 쉐어하우스에는 한 명의 마법사가 더 살고 있었다. 나처럼 한국인이라는, 옆방 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