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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Aug 19. 2024

대만에 대한 미련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자유 글쓰기#66)

2024.08.19 (월) 오후 10시 21분


내 마음은 왜 머리카락이 아닐까? 그럼 대만에 대한 이 지긋지긋한 집착도 싹둑 잘라버릴 수 있을 텐데. 


오늘 상담받으러 가서 내가 대만 워홀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유가 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는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상담을 마치고 나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짜 대답은 그게 아니다. 그냥 "대만 이야기를 실컷 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은 거다. 


"대만에서 외로웠지만 대만이 좋아서 일 년을 버틸 수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이야기를 글로 씀으로써 '나랑 비슷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건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갖다 붙인 핑계에 불과하다. 그냥 '대만이 좋아서' 쓰고 싶다. 그래서 현실에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대만 이야기를 글로나마 원 없이 떠들고 싶은 것이고, 그동안 틈만 나면 대만 생각이 났던 것이고, 2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대만 대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좋다는 이유에 미련이라는 감정까지 더해져서 더 심하다. 분명 그때의 나도 최선을 다해 매 순간을 살았지만, 돌이켜 보니 왜 그렇게 살았을까, 왜 저걸 안 했을까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거다. 돈 걱정 없이 맛있는 대만 음식 더 많이 사 먹을 걸, 중국어 못 해도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말할 걸, 적극적으로 대만 친구 좀 만들 걸, 아침 식사 가게에서 일일 알바라도 해볼 걸, 또우화 집에서 알바해볼 걸, 단골 빵집에서 대만 빵 만드는 거 배워볼걸... 여행은 그래도 여기저기 다녀서 미련이 크게 남지 않는데, 대만에서 좋아했던 것들을 좀 더 배워보고 시도해 보고 왔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단순히 소비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참여해 볼 걸 하는 미련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지금 내가 자리도 못 잡은 상태에서 글 쓰느라 과거 생각만 해서 그런 걸까?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 못하고 대만에서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대만 워홀도 결국 '미완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그러고 보면 대만에서 떠나던 날 공항철도 안에서 펑펑 울었던 건 단지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대만을 떠나기 싫어서 심장이 아플 정도로 슬펐다. 그래서 나에게 허락된 360일을 거의 꽉 채울 때까지 대만에서 버텼던 거다. 그걸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과거를 돌아보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미 너무 늦었겠지만. 


이젠 대만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무비자 입국 90일을 반복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사업을 하는 것이다. 아니면 대만 남자와 결혼하거나. 돈도 남자도 없으니 당장 가능한 방법은 90일마다 대만을 들락날락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면 무비자로는 알바도 할 수 없으니 아침 시장이나 야시장, 그것도 아니면 길거리에서 뭔가 팔아서 돈을 벌어야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가고 싶다면 미친 생각일까?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다면서도 한국에 돌아와선 안 하게 되는 것도 대만에 대한 집착 때문인가 싶다. 한국에서는 대만 중국어를 공부할 방법이 없다. 서점에 파는 교재도, 인강도 죄다 본토 중국어다. 그래서 HSK 책을 사놓고도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거다. 내가 쓸 줄 아는 번체가 아니라서, 내가 배우고 싶은 대만식 발음이 아니라서. 말도 안 되는 핑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시간만 나면 이미 수백 번은 더 본 '상견니'를 보고 또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가? 내가 아는, 익숙한 중국어가 듣고 싶어서, 대만 사람들이 말하는 중국어가 듣고 싶어서? 그래서 상견니 틀어놓고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까? 대만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요즘 대만 글을 쓰면서 굳이 없어도 되는 자료를 알아서 찾아보는 것도 이렇게라도 대만을 더 알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막상 대만에서 살 때는 가지 이름이 왜 '떡가지'인지, 샤오삥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어도 소심해서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했으니까. 빈칸으로 남아있던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시간 여유가 있는 지금에서야 뒤늦게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3년 전 삶의 끝을 생각했던 순간 대만이 생각났던 건 당시에 빠져 있었던 '상견니'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다시금 떠올려본다. 중국어 하나도 못 하던 내가 3번이나, 것도 혼자 대만 여행을 갔었던 건 단지 대만 가는 비행기가 싸서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다시는 대만 갈 일 없을 거라고, 이젠 다른 나라들 갈 거라고 말하면서도 자꾸 대만 가는 비행기 표를 찾아보는 걸 보면 난 그냥 대만이 좋은 게 맞다. 대만 글 쓴다는 핑계로 대만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는 나는 대만에 미친 사람인 걸까? 이미 5월에 일주일이나 다녀왔는데? 대만 가면 도움이 될까 해서 한국어교원자격증 과정을 자꾸 찾아보는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돈도 없으면서 대만 글 써야 한다고 기간제 교사도 안 하려는 나는 왜 이렇게 철이 없을까?


대만에 가서 살고 싶다.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 한국에서 도망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만이 좋아서 그러고 싶다.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게 아니라 그냥 대만의 모든 게 그립다. 돈 많은 부자라면 대만에 가서 대만 생활기 쓰면서 그러고 살고 싶다.


대만에 대한 스스로도 질리는 미련을 잘라버리고 싶다. 오늘 미용실에서 망설임 없이 단발로 잘라버린 내 머리카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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