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뚝섬 한강공원에서 노을을 보다가 눈물이 났다.
외로웠다. 온몸의 뼈가 아팠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일요일 저녁,
낭만 가득한 물가에는 끝나가는 여름과 주말을 아쉬워하는 연인들로 넘쳐났다.
대교 아래로 저물어가는 해를 배경 삼아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두 사람,
잔디밭 위 돗자리에 앉아 사이 좋게 한강 라면을 나눠 먹는 한 쌍,
계단 위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연인.
나에게도 누군가와 애정을 나눴던 순간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하고도 4달 전, 동갑내기였던 마지막 연인.
3년 반을 만나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카톡으로 이별 통보를 했던 전 남자친구.
황망했지만 나의 애정을 모두 쏟았기에 헤어진 이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오랜 시험 준비와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나날이 깊어가던 나의 우울증이
취준생에서 직장인이 된 그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알았다.
갑작스럽지만 뜬금 없진 않은 이별이었기에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었으니까.
그처럼 취직을 하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지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던 나의 철없는 도전이,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든 일에서 받은 상처가 내 마음의 문을 잠궈버렸다.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나를 누가 만나줄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로 이름 모를 그 누군가에게 미안했다.
주제도 모르고 바란다는 걸 아니까.
어릴 때부터 소망해 왔던 현모양처라는 꿈은
맞벌이로도 살아남기 힘든 이 시대에서는 더 이상 이뤄질 수 없는 꿈이 되었다.
결혼을 하려면, 자녀를 양육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내 꿈으로는 벌기 힘든 많은 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꿈,
현명한 아내와 다정한 엄마로 살고 싶다는 꿈,
양립은 커녕 어느 하나도 실현하기 어려운 현실이 서글프다.
뜨거운 사랑과 강인한 생활력만으로는 가정을 이룰 수는 없을까.
선선한 공기에서 가을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무더위가 갈라놓았던 두 사람의 틈도 다시 가까워진다.
나도 다정한 이의 손을 잡고 단풍 놀이를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