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나를 기억하는 법
별거 아니지만 별거인,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동들에 관한 이야기
요즘 매일 셀카를 찍는다. 예쁜 얼굴도 아니고 나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찍는다. 예전에는 화장하는 날이나 어디 놀러가는 날 가끔 찍었지만, 요즘은 쌩얼이어도, 동네 도서관에 가서도 찍는다. 어차피 누구 보여줄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나에게 셀카는 순전히 '나'를 위해서 찍는 거다. 아무리 기분이 저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날이어도 셀카를 찍을 때는 예의상의 미소라도 짓게 되니까. 셀카 찍기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웃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원래는 사진 찍는 걸 정말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사진을 찍는 게 싫었는데, 사진을 찍으면 내 얼굴의 비대칭이 더 심해보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웃고 있지만 반쪽만 올라간 내 짝짝이 입꼬리를 보고 있으면 '내 얼굴은 왜 이럴까, 이렇게 못생긴 나를 누가 이뻐해줄까' 싶어 속상하고 슬펐다. 여행을 가거나 분위기 좋은 곳에 갔을 때 누가 사진 찍어주겠다고 해도 괜찮다며 극구 사양했다. 사실은 엄청 찍고 싶었지만 삐뚤삐뚤한 내 모습을 보고 우울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사진 속 내 모습을 싫어하진 않는다. 여전히 내 얼굴은 삐뚤고 기미만 더 늘었지만 그런 내 모습도 받아들이게 됐다. 변화의 계기는 대만 워킹 홀리데이였다. 대만에서 살았던 1년 동안 해가 쨍쨍하건 비가 내리건, 바다에 가건 산에 가건 '지금 이 순간' '대만'에 존재하는 나를 사진으로 남겼는데, 내가 아니면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찍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어두웠고 까매진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그리워질 이 순간의 나를 찍다 보니 셀카 찍는 게 일상이 됐다. 일 년 내내 끼고 다닌 마스크 덕분이기도 했다.
예상했던 대로 대만에서 왕창 찍었던 셀카는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어두운 터널 속을 혼자 걷고 있는 것 같을 때, 더 이상 이 생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갔다. 분명 그때도 매일 밤마다 한국 가고 싶다고 울었던 것 같은데 사진 속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우울해도 기억력 나쁜 나는 다 까먹는구나, 그러니 사진 찍을 때만이라도 웃으면 그 어떤 날도 행복했던 시절로 남을 수 있겠구나.
5달 전 퇴사 후 다시 짙은 우울이 찾아왔음을 느끼고부터는 더 부지런히 셀카를 찍고 있다. 오늘도 한 거 없이 시간만 보냈네, 하며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그날 찍은 셀카를 다시 보면 진짜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가 된다. 셀카는 내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퇴사 직전의 시들어 있던 모습과 요즘의 셀카를 비교하면 훨씬 평온하고 건강해 보인다. 무의미한 줄 알았던 지난 시간들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회복의 시간이었다는 걸 셀카 속 내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셀카는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위한 수행이자 내일의 나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