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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In Sep 24. 2024

하루 교향곡

난 어떤 소리로 하루를 채웠을까?

1.

하나의 약속된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는 음계의 발걸음은 아름답다.


매일 아침 출근길 무거운 발걸음은 어떨까. 그것은 지친 마음의 무게와 같아 낮은 음으로 묵직하게 움직이곤 한다. 그러나 그 발걸음 역시 아름답긴 마찬가지다. 모든 걸음이 서로 다른 소릴 냄으로써 삶에 대한 의지를 연주한다.


2.

노랑잎 가득한 은행나무 줄지어 서있는 오래된 거리에 카페의 셔터를 올리는 한 여성이 보인다. 하루 사이 차가워져 버린 바람이 짧은 머리칼 흔들고 여성은 촤르륵 소릴 내며 셔터를 끝까지 올린다. 한적한 동네 낮은 주택들 사이에 위치한 카페인데 출근길 손님들이 꽤 많아 아침 일과는 촘촘하게 채워진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울리는 카페 문에 달린 종소리.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녀는 낡은 건물 빛바랜 벽을 지나 카페에 다다르고 촤르륵 셔터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다른 햇살을 맞이하지만 늘 같은 소리로 시작되는 그녀의 하루.


3.

피아니스트의 손 끝이 건반을 스치고 찰나의 순간 동안 허공에 떠 있다. 방금 전까지 머물던 건반을 발판 삼아 떠오른 손가락은 이제 다음 건반으로 우아한 착지를 준비 중이다. 아직 이전 건반의 잔향이 손끝을 감싸고 있다. 건반마다 다른 향이 묻어나 연주자의 손은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숲이 되어간다.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어딜 향해 가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두 손은 자유롭지만 피아노 건반의 끝과 끝 사이만을 오간다. 마지막 음 위로 착지 후 피아니스트는 모든 움직임을 멈춘다. 연주의 잔향이 숲 속으로 몸을 감춘다.


4.

아침이 두려울 때. 막연한 두려움 너머로 한 걸음 겨우 내디뎠는데 어느새 그 첫걸음이 나의 손을 잡아 이끈다. 부드럽게 잡고는 있지만 쉽게 손을 빼지 못할 딱 그만큼의 힘으로 첫걸음은 내 손을 움켜쥔 채 나보다 조금 앞서간다. 길을 비추고 있는 햇살만큼 그 손도 따뜻하다. 나에게 용기를 내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걷다 보니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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