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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Mar 18. 2024

한지성 비운의 독립운동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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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이야기



2020년은 인면전구공작대와 관련해 아주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우리 정부는 광복 75주년을 맞아 영국군과 공작대 사이를 오가던 캐나다 출신 연락장교 (대위) 롤런드 베이컨 Roland Bacon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베이컨 대위는 1931년 캐나다 선교사의 딸 펄 맥래 Pearl MacRae와 결혼 후, 10 년간 우리 땅에서 감리교회 선교사로 활동한다. 그러다 1941년 추방돼 가족과 함께 인도로 이주한다. 베이컨 대위는 1943년 10월 인도 주재 영국군 장교로 SOE(Special Operation Executive, 윈스턴 처칠의 기밀 조직이라 불린 특수부대이자 첩보조직)에 소속돼 인면전구공작대 연락업무를 담당하며 대적 선무 공작과 문서 번역 등을 지원한다. 베이컨 대위는 선교 활동 덕분에 우리말이 유창했다. 인면전구공작대에게 이보다 좋은 파트너는 없었다. 가슴 아프게도 그는 1945년 3월 13일 버마에서 전사한다.


영국군과 6명의 한국광복군 그리고 베이컨 대위(오른쪽 동그라미)가 인도 Fagu에서 1944년 12월에 찍은 사진. 뒷줄 오른쪽 세번째 한지성 대장. 사진 국가보훈부.


그럼 우리 정부는 인면전구공작대 대원들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부는 아니다. 공작대 대장 한지성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대표 사례다. 영국군 연락장교까지 우리나라 독립운동 유공자가 되는 마당에 뭔가 앞뒤가 잘 안 맞는 느낌이지 않나.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경북 성주 출신 한지성은 광주학생항일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간다. 그러던 중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에 들어가게 되고 1939년 말 선전주임 등을 맡는다. 1941년 5월에는 외교주임이 된다. 조선의용대는 창립 초부터 주변 세력과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1939년 이후 일제가 동남아로 세력 확장을 서두르자 약소민족과 연대해 항일투쟁을 추진해가는데, 이 과정에서 한지성이 동남아에 파견되기도 한다.


인면전구공작대 훈련지 레드포트, © Kim Dong Woo


1942년 10월, 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 활동에 본격 참여하게 되고, 이때 한지성은 김원봉, 김상덕, 이정호 등과 함께 경상도 지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된다. 1943년 4월에는 임시정부 선전부 총무과 과장, 선전부 편집과 과원, 선전부 선전위원 등을 겸임한다. 또 조선의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성되자 정훈 政訓 조로도 활동한다. 그러다 1943년 8월 인면전구공작대 대장으로 인도 땅을 밟게 된다.


한지성은 영국군이 아홉 명의 대원 이외에 추가 인원을 요청하자 1944년 12월 인도에서 중경으로 날아가 임시정부와 이 문제를 논의한다. 이때 안중근의 둘째 동생 안공근의 차녀 안금생과 결혼한다. 그렇게 한지성은 안중근의 조카사위가 된다. 안중근의 첫째 동생 안정근의 장녀 안미생이 김구의 장남 김인과 혼인했기 때문에 한지성은 김구와도 혼맥으로 연결된다. 그는 달콤했을 신혼을 뒤로 하고 1945년 3월 충칭에서 다시 인도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인면전구공작대 훈련지 레드포트, © Kim Dong Woo


해방 이후 한지성은 1946년 민주주의 민족전선 상임위원,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한다. 1947년에는 인민공화당 서울시 지부장 등을 지낸다. 인민공화당은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이끌던 김원봉의 조직이다. 이때쯤 한지성은 월북을 선택한다. 그는 1948년 황해도 해주에서 개최된 제1기 최고인민회에서 대의원으로 선출 된다. 6・25가 터지고 북한군이 남하하자 서울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된다. 전쟁 이후엔 조소 朝蘇 친선협회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다 1958년 말 공직에서 쫓겨난다.


조선의용대로 중국 땅을 누비다 광복군 대장으로 멀리 인도까지 날아간 사람 그리고 북한에서 숙청당한 비운의 독립운동가, 분단이 낳은 비극의 주인공 한지성. 이 이야기를 좇아가다 보니 마치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또 한 명의 김원봉을 보는 것만 같다. 이젠 만성이 돼버려 잘 느껴지지도 않는 침잠한 슬픔들….


인면전구공작대 훈련지 레드포트, © Kim Dong Woo


인도에서 우연찮게 인면전구공작대 이야기를 찾아보고 머리털이 쭈뼛 섰다. 인도라니, 그것도 우리 독립운동사라니, 처음엔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지를 책망했고 동시에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자긍심이 솟았다. 보통 여행에선 전혀 느껴 보지 못한 감정들이었다. 레드 포트의 고목 하나, 허물어져 가는 건물 하나, 현지인들의 표정 하나까지 모든 게 다르게 다가왔다.


대원들은 이 빈 성터 어디쯤에 머물렀던 걸까. 거기서 그들은 매일 밤 어떤 별을 보며 고향을 그려보았을까. 지식이 더해지고 관점이 바뀌자 델리의 유명 관광지는 이렇듯 전혀 다른 이야길 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영국의 식민지를 겪은 인도인과 영국군 그리고 자신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레드 포트는 역사의 모순이자 내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인도여행 중 우연히 델리 레드 포트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10개국에서 작업을 이어 왔다.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작업이 전시 출판 등으로 조금씩 알려지자, 유퀴즈온더블럭 광복절 특집편 출연 등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전국 각지에서〈뭉우리돌을 찾아서〉전시를 열어왔으며 지은 책으로는《뭉우리돌의 바다》,《뭉우리돌의 들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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