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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Apr 05. 2024

태평양 건너 이주의 시작

멕시코

과달라하라를 다녀왔지만 대사관은 함흥차사였다. 김익주의 후손을 만나볼 수 있냐는 문의를 한지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정된 시간과 비용으로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나 후손 촬영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될 거야, 란 섣부른 예단이 이번엔 맞는 모양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로 12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살리나크루스 행 버스에 올랐다. 덜컹이는 버스에서 단잠을 자고 일어나 게슴츠레 눈을 뜨고 메일함을 확인했다. 대사관에서 보낸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걸 보니 긍정적 답변은 아닌 것 같았다. 별 기대 없이 메일을 확인했다. 근데 웬걸 다빗 킴이 만나자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일정이 제대로 꼬여버렸다. 버스 좌석에서 몸이 배배 꼬였다. 멕시코시티로 돌아가면, 왔다갔다 24시간 넘게 꼬박 버스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촬영을 포기하면 살리나크루스에서 곧 장 한인 디아스포라와 독립운동사의 핵심 지역 유카탄 주 메리다로 갈 수 있었다. 고민에 빠졌다.


1905년 5월 1,000여 명의 한인들이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 장소 살리나크루스. 태평양과 면하고 있는 이 해변 도시는 크게 볼거리가 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더러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이 찾을 뿐이다. 버스터미널은 작고 삭막했다. 힐끔힐끔 여행자를 훔쳐보는 은밀한 눈길을 뒤로하고 숙소를 잡고 여장을 풀었다. 곧장 카메라를 챙겨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는 Salina Cruz라고 적혀 있는 알록달록 한 조형물 앞에 멈춰 섰다. 엽렵한 바람이 부드럽게 이마를 쓸어가며 짭조름한 바다 내음을 실어 왔다. 한눈에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멀리 황금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넓은 해변이 시야를 틔웠다. 해변은 생각보다 큰 규모였다. 먼발치 반려견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살리나크루스 해변 © Kim Dong Woo


해변에 바투 서 멍하니 수평선을 응시했다. 철썩이는 파도는 이 해변에서도 어김없이 하얀 포말을 쉼 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너머에 대한민국이 있었다. 고국의 바다도 분명 이 순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고향과 멕시코의 바다는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살리나크루스 해변은 멕시코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자 돌아갈 수 없던 사람들의 비통한 삶의 첫 마디이지 않나.


파라다이스를 찾아왔던 몽매한 한인들은 이 해변에서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을까. 걱정, 불안, 초조, 후회, 불신 등이 한데 섞인 회한이 그들의 마음을 휘감지 않았을까. 이 바다를 보며 너무 멀리 와버려 이젠 돌아갈 수 없다는 당혹과 공포에 휩싸이진 않았을까.

체념과 복종으로 멕시코에서 스러져간 사람들. 바다는 이 일을 정녕 모르는 걸까. 타인의 고난과 역경은 내일이 아니란 듯 애써 외면하는 듯한 풍경, 아니면 단지 침묵할 뿐인가. 무엇이 됐든 바다는 말이 없었다. 바다를 탓해본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어디다 하소연이라도 해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았다.

멕시코에 가면 금덩어리가 굴러다닌다는 얘기를 믿고 배에 오른 장삼이사, 거짓과 기만에 속아 아무것도 모른 채 목숨을 걸고 태평양을 건넌 미욱했던 조상들. 이 해변에서 셔터를 누르는 일은 이렇듯 목이 메는 일이었고, 치미는 화를 애써 꾹 참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해변 어디쯤에 한인 멕시코 이민 기념비라도 하나 있으면 그나마 위안이 좀 될 텐데, 그럼 이 애통하고 들끓는 기분이 조금은 차분해질 것만 같은데….’


해질녘까지 해변을 촬영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주 익숙한 태극 무늬가 보였다. 태권도 도장 광고였다. 흠칫 동공이 커졌다. 이 동네에 태권도 도장이라니 생각지 못한 발견이었다. 주소를 검색해 무작정 태권도 도장을 찾아 나섰다. 혹시 한국인 사범이 있으면 살리나크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조심스레 도장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꼬레아노의 방문에 도장 안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웅성대는 소리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 태권도 수업이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범은 멕시코 사람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그간 훈련한 성과를 하나씩 보여주었다. 이런 특별대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졸지에 한국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참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나이대가 높아질수록 발차기며 품세며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사범은 한국 국기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태권도인이란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계속 이들의 훈련을 방해할 순 없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학생들은 잠시 기다려달라고 손짓 했다. 하나둘 휴대폰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태평양 건너 태권도 종주국에서 온 방문자와 줄을 서 기념사진을 찍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잠시 아이돌이 된 것 같은 이상한 체험을 하고 도장을 빠져 나왔다.


시장기가 몰려왔다. 살리나크루스에 있는 중국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주인은 동양계였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단박에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가 중국어를 쏟아냈다. 중국인이냐고 묻는 것 같아, 꼬레아노라고 답했다. 꾸덕하게 굳었던 표정이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풀어졌다. 그는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 혹시 그의 조상도 그 옛날 이민 배에 오른 건 아닐까. 중국식 볶음밥으로 배를 채우고 발걸음을 숙소로 돌렸다.

“헤이! 아미고!”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서더니 한 꼬마 아이가 소리쳤다. 가만 보니 태권도 도장에서 만난 친구였다.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내보이며 아이와 사진을 찍어달라 고 했다. 도장에서 사진을 찍지 못한 모양이었다.

조상들이 스쳐간 살리나크루스 해변, 이곳에 있는 태권도 도장과 수련생들, 디아스포라의 시작에서 발견한 가장 또렷한 우리의 흔적이자 위안이었다.

“그라시아스, 아미고!”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인도여행 중 우연히 델리 레드 포트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10개국에서 작업을 이어 왔다.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작업이 전시 출판 등으로 조금씩 알려지자, 유퀴즈온더블럭 광복절 특집편 출연 등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전국 각지에서〈뭉우리돌을 찾아서〉전시를 열어왔으며 지은 책으로는《뭉우리돌의 바다》,《뭉우리돌의 들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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