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먼저예요?

by 윤성진

EP. 1 천둥소리


가끔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있다.
어릴 때부터 명절이 오면 대구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갔었다. 우리 집이 큰집이라 엄청나게 많은 제사음식들과 기름냄새, 시끄럽게 수다 떠는 어른들 목소리가 집안 곳곳에 가득 찼었다.

그리고 여기서의 내 역할은 '부모님 돕기'였다.

어릴 때야 제사음식 나르고 상 차리고, 치우고가 다였지만 고등학생 때부턴 옆에서 전도 부치고 칼로 과일 깎는 일도 추가됐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일이 일어다. 때는 결혼하기 전 마지막 명절을 보내려고 대구에 내려갔을 무렵이었다. 원래 하던 대로 한다면 제사 지낼 동안 밖에 있다가 끝나면 제사상을 치우고 친척분들 식사하실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날은 이상하게 처음으로 사촌동생하고 둘이서 얘길 하고 싶어졌다.
아마도 결혼하고 나면 이렇게 대구에 오는 것도, 명절 때마다 사촌동생 보는 것도 마지막이 될 테니 아쉬운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정확히 30분이 지났을까.(오래는 있지 않으려고 시간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집에서 한.. 200미터쯤 떨어진 바깥에서 사촌동생과 기분 좋게 근황얘기를 하고 는데, 갑자기 천둥이 쳤다.


"윤성진!!!!"


내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잘못 들었나 싶어서 소리 난 곳을 바라봤는데 곧바로 천둥이 또 내리쳤다.


"윤성진!!!!!!!!!! 빨리 와!!!!!!!!!!"


뒷목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주 잘 안다. 이 목소리의 기분을.
평생 들어왔는데 이걸 모른다고 하면 분명 정신병이 있는 게 틀림없다.

이 목소리의 의미는,
가만 안 둬.

너 일로 오기만 해 봐.
다리몽둥이를 뿌라뿔라.

아니나 다를까 내가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건 엄청나게 뿔이 나 있는 아빠의 표정과 "빨리 안 오고 뭐하노. 이거 해야지!!"라는 잡아먹을듯한 매운 말이었다.



EP. 2 꼭 그렇게 소리를 질렀어야 했나요?


이 대목에서 '도대체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길래 아빠를 이리도 화나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지 원래하던 상 치우기와 상 차리기를 안 하고 노닥거리고 있서다.


옆에 있던 엄마가 아빠를 흘겨보며 핀잔을 줬다.
"우리가 하면 되지.. 왜 자꾸 애를 시키노."

그러자 나를 향한 아빠의 불화살이 엄마에게로 가며,
"야도 해야지!! 어디 있다 이제 오노!!! 어?!"

순간 내 목구멍까지 이 말이 차올랐다.
'사촌이랑 얘기 좀 하다 왔지. 결혼하면 이제 못 보는데..'

하지만 30년간 늘 그랬듯이 내 말은 삼켜둔 채 흐르려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삼키며 앞에 있는 밥상을 치웠다.

그 상황 자체가 서럽고 억울해서 한동안 우울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도 틈만 나면 생각나서 울컥했다. 혜진이(여동생)도 있는데 왜 나한테만 늘 일을 시키는, 너무 억울했다. 심지어 내가 혼나고 울면서 밥상 치울 때도 혜진이는 옆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놀고만 있었는데 왜 항상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아빠를 한참 원망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혜진이는 잘못이 없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맏이라는 이유로 일을 시킨 아빠의 잘못이다.

그리고 지금의 난 '시간은 약이다'라는 또 하나의 세상의 진리를 몸소 겪고 있다. 그 원망이 시간이 지나 옅어져 아쉬움만 남았으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난 해야 할 일 내팽개치고 도망갈 사람이 아닌데..
내가 돌아왔을 때 화는 났더라도 친인척들 다 있는데서 모두가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세워두고 혼내지는 말지.. 그때 되게 민망했었는데..



상황이 먼저가 아니고,
당신 기분이 먼저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쓰이는 게 먼저가 아니고,
만약 딸 입장이 먼저였더라면 나도 아빠에 대한 원망 하나가 줄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는 늘 그랬듯 난 맨 마지막이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