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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의 결혼반지

형님은 이제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by 들풀

사랑하는 딸아!

요즘 동생과 가끔 다투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는 마음이 아프구나. 형제간의 도타운 정을 ‘우애’라고 한단다. 너희는 두 남매 뿐이어서 그런지, 요즈음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고 자신 만을 앞세우는 일들이 가끔 있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구나.

아버지는 8남매 중 막내였단다. 그 시절은 참으로 가난했지. 도시락은 꿈도 못 꾸고, 하루에 두 끼를 겨우 먹었어.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학교를 다녀오면 배가 너무 고파, 아버지는 물 한 사발로 허기를 달래곤 했지. 그때 할머니가 시렁 위에 올려둔 설익은 보리쌀을 손으로 쥐어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나는 배바 부르다, 니가 묵어라

빛나는 아들아!

아버지가 지금 네 나이 즈음인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막내 큰아버지는 중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농사 일을 하고 계셨지. 아버지는 큰아버지를 따라 겨울 땔감으로 사용할 ‘푸초(생풀을 베어서는 그 자리에서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를 하러 산으로 갔단다. 우리는 소나무 가지로 얼기 설기 움막을 짓고, 낮에는 열심히 풀을 베었지.

엉가는 괜찮다, 니가 묵어라!

그때 도시락 밥 한 숟가락을 두고 큰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던 기억이 나네. “엉가(형의 방언)가 묵어라, 일하느라 배가 더 고플낀데…”

“아니다. 나는 깨묵(개암)을 따묵어서 괜찮다. 니가 묵어라.”

그 끝에는 늘 내가 먹고 말았지. 우리는 밤에 움막에서 산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는데, 큰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서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아버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장학생 선발고사에 떨어졌을 때는 정말 절망했단다. 그런데 그때, 군 복무 중이던 큰아버지가 휴가를 나와서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어.

“형님과 누나들은 모두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도시에 돈벌러 가고, 저는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막내마저 고등학교를 못 보내면, 동생 앞날이 어찌 되겠습니까? 제가 제대하면 동생의 공납금은 어떻게든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아버지는 창원의 고등학교(후기)에 진학할 수 있었단다.

대학에 들어가서 1학기 학비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겨우 낼수 있었지만, 2학기 등록금은 막막했어. 그때, 막내 큰어머니가 돈을 건네셨지.

“이걸로 도련님 학비를 내주세요.”

그 돈이 어디서 났을까…

아버지는 오래 지나서 알게 되었단다. 형수님의 결혼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큰아버지의 반지가 보이지 않았어. 자식도 아닌 시동생의 학비를 위해 그 소중한 것을 내놓은 그 마음을, 아버지는 결코 잊을 수가 없구나!

소중한 아들과 딸아!

지금은 너희가 말다툼도 하고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실랑이도 하지만..

아버지는 믿고 있단다. 결국 너희도 아버지와 큰아버지처럼 '서로를 위하고 도타운 정을 나누는 남매가 될 것이라고.'

읽어 주어서 참으로 고맙구나.

너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 2004. 12. 19.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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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 이 글은 21년 전에 오마이뉴스에 적었던 글인데, 조금 수정하고 덧붙였습니다. 형님은 올해 10월 7일, 병마와 싸우다가 하느님 곁을 갔습니다. 이 편지의 영향인지 두아이의 엄마가 된 딸과 아들은 무척 우애가 깊은 것 같습니다.

#들풀의세상사는이야기 #형수님의결혼반지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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