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을 긋고 필기를 할 수 있는 건 문제집이나 교과서가 아니고는 내게 평생토록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만큼 책에 구김이 가거나 이물질이 묻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에 남에게 내 책을 빌려준다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어린 내 성향이 B급 취향 운영에 가장 큰 난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애정하고 독서를 즐기는 마음, 그러니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책을 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순전히 나의 소망이었다.
꽤 많은 손님이 진열된 책을 아무렇게나 뒤적였고, 그로 인해 책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는가 하면 독립출판물 샘플 표지는 구겨져 U자 형태를 유지하게 됐다.
서점과 카페를 겸하는 공간이라 명칭을 북카페로 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모든 책장에 ‘판매용 도서’라는 문구를 써두었지만, 판매용이라는 것을 모르고 책을 꺼내 자리에 앉아 꾹꾹 눌러가며 읽는 손님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판매용이라고 말하면 화들짝 놀라며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손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접혀 자국이 남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었다.
서가를 정리할 때면 이따금 찢어진 책을 발견했고, 손님이 떨어트려 판매하지 못하게 되는 책이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님들이 책 가까이 가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다.
손님들이 책을 집어 볼 때나 책을 다시 꽂을 때 책이 구겨지지 않을지 늘 노심초사했고, 오랜 시간 곳곳의 책을 꺼내어 보던 손님이 나가면 서가 쪽으로 후다닥 달려가 손길이 닿았던 책마다 살피며 손상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심지어는 아무도 책에 손대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들어오면서 내게 먼저 인사를 하거나 아주 천천히 서가를 둘러보는 손님은 꼭 책을 구매했다. 대개 행동양식이 약간의 차이만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책을 살 손님을 예측할 수 있었다. 예상 적중률은 100%였다. 나름대로 책방 손님과 카페 손님을 구별하게 되자, 책이 손상될까 염려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한편 책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거나 책을 구입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자꾸 책을 만지며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계속 내 신경을 긁었다.
모임과 행사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던 어느 날 오후, 소리도 없이 들어온 한 손님이 책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책에 손만 대봐.’하는 마음으로 눈치를 살폈다. 한참 책 목록을 살피던 손님은 책 한 권을 꺼내 펼쳤고, 나는 약간 새침한 목소리로 “손님, 손 소독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손님은 손을 소독한 뒤 다시 책을 살폈고 그 뒤로도 한참을 서가 사이를 오갔다.
내심 책을 사 가길 바라면서도 지나치게 오랜 시간 책을 둘러보는 손님이 얄궂게 느껴졌다. 책만 뒤적거리다 그냥 나가는 손님이 부지기수였고, 그만큼 장시간 책만 살피던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과연 저 손님이 책을 살 사람인지 아닌지 속으로 토론을 벌였다.
반쯤 포기한 상태로 그냥 들른 손님이겠거니 생각한 찰나, 손님은 책 한 권을 가져와 계산대 앞에 올려두었다. 그 순간 언제까지고 견고할 것만 같던 100%의 예상 적중률이 깨진 것은 물론, 손님을 가르는 기준이 나의 편협함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손님은 무해한 얼굴로 웃으면서 디저트 고르는 것을 깜박했다며 디저트를 골라 담아와서는 함께 계산해달라고 말했다. 포항에 이런 책방이 있는 줄 몰랐다며 반가워하는 손님은 줄곧 웃음을 보였다. 자주 오겠다는 말과 함께 손님은 밖으로 나갔고,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남아 있었다.
부끄러움은 수치감을 불러왔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B급 취향의 목표이자 사람과 책을 잇는다는 다짐이 조금씩 흐려지는 사이, 나는 경계선을 그어놓고 사람을 구분하는 일종의 혐오를 하고 있었다. 그건 경멸해마지않았던 사회적 혐오와 닿아있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수치감을 느끼는 건 솜방망이 형벌에 불과했다. 존재를 지우는 사람이 돼가는 내 모습을 일찍 알아차린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생계가 달린 일이기에 어쩌면 은근슬쩍 스스로를 합리화했을지 모른다. 책을 구입하지 않으면서 도서 목록을 살핀 뒤 휴대폰 메모장에 쓰거나 책 표지를 촬영하는 일부 손님들과 책만 뒤적이다 그냥 나가버리는 손님들을 미워해도 된다고 여겼다. 그렇게 내 안의 혐오는 소리도 없이 찾아와 무럭무럭 성장했고, 책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까지 의심의 눈으로 살피게 된 지경에 이르게 됐다.
손상돼 팔지 못하게 된 책을 보며 책을 애정하고 아끼는 마음 그대로를 사람에게 적용할 순 없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서가를 배회하는 손님을 경계하지 않는다.
“책방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곳이다.”라는 지금 책방 대표님의 말을 격언 삼아 지내는 요즘, 금세 사라질 감정 앞에 나는 어찌 그리도 번잡스레 굴었나 후회가 일 때도 있다. 행여나 책이 손상되더라도 그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손님을 의심하며 품었던 감정 또한 손님이 문을 나서는 순간 무용해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궁핍한 책방 살림에 지치다 보면, 책을 사지 않고 나가는 손님이 미워질 때가 많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손님을 돈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책방 문을 닫을 것이다. 자본주의 섭리에 길든 사람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동네 책방을 운영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 책을 향해 손을 뻗는 손님에게서 애써 눈길을 거두고 내 일을 마저 끝내려 한다. 하루라도 더 B급 취향을 운영하기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