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에 느낄 수 있던 엄마의 사랑
요즘 부쩍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추석 때까지 이어지던 무더위는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지고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 4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입니다.
가장 추운 날이고, 예쁜 눈이 내리는 유일한 계절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날씨는 춥지만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연말에만 느낄 수 있는 훈훈하고 따뜻한 감성... 벌써부터 설렙니다.
지금은 연말이라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날씨는 완전한 겨울입니다.
입동이 지난 지도 10일이 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요.
저는 이렇게 추울 때만 되면 전복죽이 생각납니다.
오늘도 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글을 써봅니다.
때는 2000년대 중반,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했을 나이.
유독 추운 겨울이 찾아왔었습니다.
사람이 올라가도 될 정도로 강가를 꽁꽁 얼리던 추위도 그 시절 어린이들의 에너지는 얼리지 못했었죠.
스마트폰이 있기를 했는가, 컴퓨터가 많이 보급됐기를 했는가, 그렇다고 아이들이 어른들이 보던 뉴스 채널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를 했는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갖고 놀 수 있는 게 그 시절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눈사람을 만들 수 있고, 눈싸움을 할 수 있고, 바깥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해 줬던 함박눈을 선물해 주는 겨울은 싫은 계절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정도가 지나치면 역효과가 나는 법, 신나게 논 다음날은 몸살과 감기로 몸져눕게 됩니다.
저 또한 해마다 보일러를 틀어놓은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둘러싸 몸져누워서 앓았던 적이 있죠.
그때마다 또 시작이라는 듯 적잖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엄마가 노란 뚜껑의 전복죽을 건네줬었습니다.
한 숟갈 들자마자 결정 됐습니다. 난 이게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참기름 덕에 고소하면서도 전복 특유의 향이 묻어 나오는 전복죽은 제 취향에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게다가 죽이니까 아픈 사람도 곧잘 먹을 만큼 부드럽게 넘어가기에 환자의 식사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죽그릇을 비웠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죽을 먹으면 빨리 몸살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이 따뜻하고 배부른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일까요?
그런 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무리하게 놀다가, 몸살 나고, 전복죽 먹고, 낫고...
매주마다, 매달마다, 매년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떤 날은 아프지도 않았는데, 전복죽을 먹고 싶어서 일부러 반바지를 입고 눈밭을 뒹군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전복죽 먹고 싶다 하면 내주셨을 텐데... 몸이 아파야 전복죽을 먹을 수 있다고 착각했었나 봅니다.
그렇게까지 해놓고는 전혀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서 실망했던 작은 추억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복죽이 좋아졌죠. 죽 중에서는 전복죽을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사진에도 나와있는 노란 뚜껑 전복죽... 하도 많이 먹다 보니 입맛의 표준이 저기에 맞춰져 있어서
다른 회사 제품을 먹어도 그 느낌이 안 났습니다...
그렇다고 저걸 그냥 사서 먹어도 그 맛이 안 납니다. 꼭 몸이 아플 때 먹어야 효과가 나더군요.
한 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무대로 날뛰고 있을 때, 저도 그 마수를 피해가진 못했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방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제게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봤었습니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전복죽을 달라고 말했었죠. 20대가 되어도, 그 추억은 여전했습니다.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완치되기를 기다리는 그 슬픈 시간 동안, 전복죽이 잠시 짐을 덜어줬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계속 전복죽만 찾으니까 어머니가 웃으면서 "넌 항상 아플 때마다 전복죽 달라고 하더라."라고 하셨었죠. 본인이 저를 전복죽에 꽂히게 하셨으면서...
오늘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전복죽을 사 텅 빈 자취방에서 돌려먹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허전한 느낌... 무엇이 부족했을까? 혹시 제조사에서 레시피를 바꿨나?
이미 커피와 빵으로 허기를 어느 정도 채운 상태였고, 아프지도 않았으니 맛있다고 느끼기엔 무리가 있었겠죠.
그렇게 생각하다 가장 중요한 게 빠졌던걸 깨달았습니다.
항상 전복죽을 먹을 땐 어머니가 곁에 있었습니다.
제가 잘 먹는지, 맛있어하는지를 계속 지켜봐 주시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릴 땐 그저 전복죽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누가 건네준 전복죽인지도 잊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맛있었던 건 전복죽이 아니라 엄마의 걱정과 사랑이었을까... 회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