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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Mar 23. 2024

2.4.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회복하신 권세

위의 2.3.에서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신 증거들을 4가지 측면에서 설명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사신 삶이 우리의 모본이 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모본이라는 것은 모범이 되는 표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에 대해 복음서 마지막 부분들에 집중적으로 말씀하셨다. 또한 사도행전의 초입에 승천하시기 직전에 성령님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요 5:19~20, 바른

19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하기 때문이다. 

20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시고, 또 이보다 더 큰 일들을 보여주셔서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요 5:19-20, 개정

19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 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요 5:19-20, YLT

19Jesus therefore responded and said to them, 'Verily, verily, I say to you, The Son is not able to do anything of himself, if he may not see the Father doing anything; for whatever things He may do, these also the Son in like manner doth;

20for the Father doth love the Son, and doth shew to him all things that He himself doth; and greater works than these He will shew him, that ye may wonder. 


 5:19-20, TR

19Ἀπεκρίνατο οὖν ὁ Ἰησοῦς καὶ εἶπεν αὐτοῖς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οὐ δύναται ὁ υἱὸς ποιεῖν ἀφ' ἑαυτοῦ οὐδὲν ἐὰν μή τι βλέπῃ τὸν πατέρα ποιοῦντα· ἃ γὰρ ἂν ἐκεῖνος ποιῇ ταῦτα καὶ ὁ υἱὸς ὁμοίως ποιεῖ

20ὁ γὰρ πατὴρ φιλεῖ τὸν υἱὸν καὶ πάντα δείκνυσιν αὐτῷ ἃ αὐτὸς ποιεῖ καὶ μείζονα τούτων δείξει αὐτῷ ἔργα ἵνα ὑμεῖς θαυμάζητε 

 

이렇게 예수님의 사역은 자신의 뜻대로 하신 것이 아니셨고 또한 자신의 능력으로 하신 것도 아니셨다. 인간으로서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 복종하셨다. 또한 자신의 신성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삶은 온전히 인간을 위한 대속의 삶이셨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모본의 삶이셨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삶으로서 이루신 그 능력을 자신의 가지인 인간들에게 흘려보내시기 위한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우리 인간들을 위한 대속의 삶을 사셨다. 또한 그러한 삶이 셨기에 복종도 인간으로서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이적도 인간으로서 하신 것이다. 오직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아버지께서 보이시는 대로 하신 것이다. 2위 하나님으로서의 자신의 신성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다.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두 번째 아담으로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상속자인 아들로서, 인간으로서 하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회복시키시어 자신과 같은 아담으로 아담의 후손, 인자로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 회복되어진 아담의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전인 복음서에 이어 기록되어진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삶 속에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행하신 일들이 그들의 삶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사셨을 때 보다 더 넒은 지역에서 더 큰 사역들을 하기도 한다.[1]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 14:12, 개정_strong)

 

12'Verily, verily, I say to you, he who is believing in me, the works that I do--that one also shall do, and greater than these he shall do, because I go on to my Father; (요 14:12, YLT)

 

12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ἐμὲ τὰ ἔργα ἃ ἐγὼ ποιῶ κἀκεῖνος ποιήσει καὶ μείζονα τούτων ποιήσει ὅτι ἐγὼ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μου πορεύομαι· ( 14:12, TRa+)


사도들이나 사도행전 이후에 나오는 성도들은 예수님과 같은 성품으로 살고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행하며 산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자로서 인자들에게 보이신 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 인자(아담의 후손, 하나님의 아들)가 된 자들이 인자로 사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우리는 헬라니즘화 된 기독교 전통을 이어받음으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중요한 인자(아담의 후손, 하나님의 아들)의 뜻을 상실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예수님께서 태풍을 잠잠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신 능력은 인간으로서의 능력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인가? 아마 답하기 망설여질 것이다. 분명히 여기서 밝힌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하신 것이다. 인간인 만유의 통치자의 자격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행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베드로도 한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처럼 베드로도 물 위를 걷는다.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처럼 앉은뱅이를 일으킨다. 눈먼 자를 보게 하며 문둥병을 고친다. 지금 21세기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행한다. 


스데반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거의 흡사했다. 또 수많은 증인들이 성경의 기록과 역사의 기록에서 예수님과 흡사한 삶을 보인다. 또 예수님보다 더 큰 사역을 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3장에서 설명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기까지 아직 성령님을 통해 거듭나지 못했다. 의식인 물세례는 요한에게 받았지만 물세례의 의식이 나타내는 참 세례인 마음의 할례 즉 심령에서 옛사람(겉 사람)은 죽고 새사람(속 사람)은 살아나는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 거듭남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 이는 구속의 사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예수님과 비교될 수도 없고 예수님의 완전한 구속을 흉내 낼 수조차 없다. 단지 예수님께서 회복하신 아들의 명분을 우리도 받아 예수님의 능력과 예수님의 권세를 이 땅에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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