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겔 May 18. 2024

3.2.2.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들의 발자취-2

후스, 재세례파, 웨슬리, 조지 폭스, 조셉 얼라인, 대동강의 토마스



3.2.2.1.3. 로마시대 이후의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 종교개혁 부흥


역사를 보면 항상 복음은 순교의 피를 먹고 열방으로 전파되었다.


3.2.2.1.3.1. 종교개혁 부흥


로마시대에 변절한 메트로폴리탄[1] 목사들과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순교당한 이름 없는 수많은 참 믿는 자들의 피를 통해 복음은 루터의 시대에 다시 기치를 들고 살아 부활했다. 국제적인 정세를 보면 루터의 복음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와 그를 통해 전해진 복음을 살리셨다. Revival 바로 부흥이었다. 그 부흥이 열방을 휩쓸고 다시 하나님의 교회는 살아있는 복음을 가지게 되었다. 


3.2.2.1.3.2. 존 후스의 체코 부흥


그러나 그가 나타날 것을 100년 전에 예언한 존 후스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루터가 “Here am I God”(여기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이라고 말했던 종교재판과 동일한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했다. 후스는 동일한 하나님의 진리를 전했고 종교개혁 다시 말해 성경적 복음으로의 회복을 주장하다 순교의 길을 갔다. 후스의 예언대로 후스(기러기)[2]가 화형 당한 재에서 다시 부활한 백조가 루터였다. 후스와 같은 수많은 순교의 피를 뿌린 참 신앙을 가진 자들이 중세에 있었다. 중세의 암흑기 1200~1300년 동안 최소한 500~600만 정도의 순교자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의 인구가 600만 명 정도 된다. 한 초 거대도시의 인구가 모두 학살을 당한 것이다. 우리들에게 이러한 숫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숫자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당했는데도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그들의 순교에 대해 구체적 언급도 읽지를 못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름도 없이 스러진 사람들이다. 이 숫자에도 포함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또는 악마를 숭배한 마법사로 누명을 쓰고 정죄되어 화형 당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 마녀나 악마 숭배자로 몰린 사람들은 실제로 그들이 마녀였는지 아니면 누명을 썼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이러한 불분명한 자들을 제외하고도 500~600만 명이 순교를 당했다. 이들의 피를 통해 복음은 열방에 전파되게 된다.


후스는 체코 사람이었다. 그 체코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100년 전에 종교개혁이 있었다. 후스는 화형을 당했지만 후스의 신앙을 따르던 체코 개혁교회는 전쟁도 불사했고 그 전쟁이 결국 패배로 끝났지만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모라비아 지역에 있던 참 믿는 자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가 독일의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가서 모라비아 교회를 세웠다. 그 작은 모라비아 교회가 모라비아 선교회의 사람들인 것이다. 

복음은 피를 먹고 꽃피고 전파된다. 후스와 그와 함께 믿음을 지켰던 자들의 피는 종교개혁의 꽃을 피웠고 또 모라비아 선교회를 통해 열방에 복음의 씨앗을 퍼트렸다. 모라비아 교회에서 단 몇 년간 파송한 선교사가 신약 이후의 교회사의 모든 선교사의 숫자보다 많았다. 그들은 북극의 그린란드로부터 아프리카, 신대륙까지 우리가 알던 모든 땅끝을 향해 갔다. 복음이 유럽에서 종교개혁으로 꽃을 피우고 열방으로 나아간 것은 바로 후스와 그의 형제단들과 중세 암흑기의 이름 없는 수많은 순교의 피로 말미암아 가능했다. 



3.2.2.1.4. 재세례파(침례교)의 순교의 피


종교개혁 이전과 이후에 믿는 자들 중 재세례파(침례교)나 여타 분파들은 개신교회와 카톨릭 모두의 공적이 되었다. 그들은 수많은 순교의 피를 뿌렸다. 사실 종교 개혁 100여 년 후대에 나타난 영국의 청교도는 개신교보다 이들을 더 닮아있다. 특히 회중교회는 그 뿌리가 조지 폭스에게 있지만 이들은 재세례파나 모라비안인 체코의 존 후스를 너무나도 닮아있다. 이 이름 없는 유럽의 수많은 순교의 피는 영국과 유럽에서 그리고 열방에서 다시 부흥의 불길을 올렸다.


3.2.2.1.5. 청교도 부흥


복음은 영국에서 꽃을 피웠다. 사실 영국의 청교도 중에는 루터나 칼빈보다 모라비안이나 재세례파(침례교)들을 더 닮아있는 부류들도 있었다. 특히 회중교회는 그 뿌리가 조지 폭스에게 있지만 이들은 재세례파나 체코의 존 후스의 후예들인 모라비안을 닮아있다. 회중교회는 주류 교단들의 교회사에서 저평가되었다. 그러나 실상 퀘이커(회중교회)들을 통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가장 규모 있는 부흥이 나타났다. 조지 폭스가 살았을 당대에 그들은 이미 땅 끝에 가있었고 그들의 부흥은 열방을 뒤흔들었다. 그들의 부흥은 존 웨슬리의 부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강력했다. 그들은 종교개혁 후 100년이 지나 화석화되어진 장로교와 성공회 같은 개신교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들 청교도 중에는 조셉 얼라인도 있었다. 그는 평생을 회개(구원 얻는 회심)에 대해 설교했다. 그의 책 『Call to the unconverted』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이 발행된 베스트셀러라고 알려져 있다. 그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했다. 존 웨슬리는 그 책을 읽고 자랐다. 스펄전도 그러했다. 그 책을 스코틀랜드인들이 쓰는 갈릭어로 번역했을 때 그 책을 읽은 지역들에 부흥이 왔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회심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죽었다. 그는 병사했으나 그 죽음은 병사가 아닌 순교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르고 불태워 더 이상 기력이 남지 않아 스러졌다. 그는 교회 안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화석화된 신앙 즉 죽은 정통주의는 이단보다 무섭다는 마틴 로이드존즈의 말은 단지 그 스스로 만들어낸 말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회사의 고찰을 통해 성경의 연구를 통해 얻어낸 결론인 것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순교의 피를 통해 그리고 순교자적인 삶들을 통해 그 땅에 부흥을 부으신다. 복음은 영국에서 수많은 청교도들의 피를 먹고 다시 신대륙으로 전해졌다. 이 청교도들의 피를 먹고 복음은 열방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100년 후 18세기 존 웨슬리 부흥으로 다시 불타 오른다.


3.2.2.1.5. 존 웨슬리 시대의 부흥


알려진 대로 존 웨슬리는 모라비안들을 통해 거듭났다. 또한 웨슬리안 즉 감리교도는 초창기에 예배를 드릴 때 몸이 진동하여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인해 이단시비에 시달렸다. 이 행위자체로 보면 그들은 퀘이커였다. 그 이전 세대의 피와 순교적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복음의 온전한 전파 즉 부흥은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이 시대에는 웨슬리뿐 아니라 수많은 이름 있는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을 통해 부흥이 왔다. 그리고 또다시 복음은 열방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 시대의 부흥들은 그 시대의 순교와 순교자적 삶을 낳았다. 항상 부흥은 순교로 이어지고 순교는 다시 부흥으로 이어진다. 복음은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다.


3.2.2.1.6. 미국의 부흥


존 웨슬리의 시대에 미국에서는 프렐링휴이젠의 부흥운동과 뉴저지의 부흥 뉴브룬스윅(New Brunswick)의 테넌트일가(Tennents)와 통나무대학 출신들의 부흥운동과, 코네티컷 지역(Connecticuts)에서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부흥운동과 영국의 순회설교자 휫필드(George Whitefield)에 의한 부흥운동이 있었다. 이들은 그 신앙의 선조들의 순교의 피 위에 피어난 꽃이었다. 또한 이들은 모두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다. 웨슬리는 수많은 곳에서 박해를 받았다. 휫필드도 다르지 않았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심지어 자신이 부흥의 도구로 쓰였던 교회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순교자적 삶을 살았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극찬한 그의 사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도 그 삶을 보면 순교자의 삶을 살았다. 금과 돈에 눈이 멀어 인디언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박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던 그 당시의 풍조를 거스르고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백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인디언들에게도 박해를 받았다. 인디언들은 악랄한 백인들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브레이너드와 그를 통해 전해진 복음을 거부하고 박해했다. 브레이너드는 그 삶의 무게와 고된 사역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재만 남은 그의 육신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일기가 남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생명의 위로를 안겨준다. 이처럼 순교자의 삶은 죽음에 이르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그 피의 호소로 영혼들을 깨운다. 순교의 피는 영원히 살아서 쉬지 않고 우리의 영혼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마침내 부흥으로 불타올라 수많은 영혼들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왕 예수님의 복음이다. 버림받았으나 왕이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인자의 복음이다. 수많은 십자가는 수많은 부흥을 낳는다. 사망의 골짜기에 수많은 생명의 샘을 만든다. 그들의 피는 찰스 피니 시대의 부흥과 그리고 무디 시대 부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웨일즈 부흥과 미국의 아주사 거리 부흥으로 이어진다. 아마 아주사 거리의 부흥은 들어본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아주사 거리의 부흥은 부흥의 역사상 가장 저평가받은 부흥들 중 하나다. 그 이유가 그 부흥을 주도한 사무엘 목사가 애꾸눈의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깔 병신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들이 드리는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당연히 백인들의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을 들어 사용하시는 분이다. 그는 예배드릴 곳을 얻지 못했고 결국 마구간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아주사 대부흥은 시작되었다. 그 부흥은 강력했으며 백인들도 그 부흥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3.2.2.1.7. 조선 부흥


그 부흥의 불길은 조선으로 전해졌다. 조선은 웨일즈 광부의 부흥의 불 그리고 미국 애꾸눈 흑인의 부흥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 불을 받았다. 가난한 동방의 무지랭이들에게 전해지기에 가장 적합한 복음을 받았다. 그때까지 조선은 전염병이 돌면 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군대가 한양 성을 포위하고 나오는 자들이 있으면 창으로 찔러 죽이는 나라였다. 물론 왕과 대신들은 남한 산성으로 피신을 갔다. 자신들은 도망가고 남은 백성들은 병에 다 죽어질 때까지 그리고 스스로 면역력이 생겨 살아남은 자들만 남을 때까지 방치한 것이다. 그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보리 고개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고개를 넘지 못하고 봄날 끝에 이 세상을 등졌다. 세도정치 하에 백성들을 향한 수탈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학혁명도 그때 일어난 것이다. 녹두 꽃이 떨어진 그 시대에 가난한 자들의 복음은 조선으로 향했다. 모두가 버린 어두운 땅에 그 복음이 순교의 피를 머금고 피어났다.

그 조선의 백성을 위해 젊음과 미래를 버리고 온 많은 의료 선교사들도 이 땅에서 전염병을 치료하다. 그 전염병과 풍토병의 역습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또 루비 캔드릭, 존 헤론, 오웬(오기원), 서서평(쉐핑) 등 말로 할 수 없는 선교사들의 죽음이 있다. 그들은 일찍 순교의 길을 갔거나 아니면 순교적 삶을 살아갔다. 그들 중 도착해 5년이 안되어 죽은 사람이 많다. 그들은 헛되이 너무 일찍 죽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이 땅에 심어졌고 그 씨앗이 썩어져 100배, 30배의 결실을 맺었다.

토마스

 이 책은 앞에도 언급했던 영국 웨일즈의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는 그 가난한 나라 어둠의 나라 조선을 사랑했다. 1866년 9월 2일 그의 순교의 피는 대동강에 헛되이 뿌려지는 듯했으나 그 피는 살아서 조선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호소했다. 그의 피는 장대현 교회의 전신인 널 다리 교회를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 세우시게 했다. 그의 피는 장대현 교회를 시작으로 조선을 부흥의 불길로 몰아넣었던 평양 대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조선 그 먼 미지의 선교지에 흘려진 선교사들의 피를 통해 우리에게 부흥이 전해졌다.


우리에게 인자(아담의 후손)의 권세를 주신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권세를 이 땅의 자기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십자가의 왕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분은 왕이 되셨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인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바로 아담의 후손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 사도의 글과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도님을 따라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그곳에서 불사름을 당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길을 예비하자.




         


[1] 콘스탄틴 황제시절 대형교회 목사들을 이렇게 불렀다.


[2] 후스는 영어의 구스(기러기)와 동일한 뜻을 지닌 체코어다. 유럽 여러 나라의 언어는 발음의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단어들이 많이 있다. 이 단어 후스와 구스도 그러한 경우다.



이전 17화 3.2.2.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들의 발자취-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