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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Jun 22. 2024

01.3.2.3.8. 율법의 종- 모세의 연대기 12

01.3.2.3.8.10.2.1.4. 넷째 아론의 지팡이와 이(Pediculus humanus capitis) 심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에게 말하여 그의 지팡이를 들어 땅의 먼지를 치라고 하여라. 그것이 이집트의 온 땅에서 이가 될 것이다."

모세와 아론이 그대로 하여 아론이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땅의 먼지를 쳤다. 사람과 짐승에게 이가 생기고, 그 땅의 모든 먼지가 이집트 온 땅에서 이가 되었다.

마술사들도 자신들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하여 이가 나오게 하려 하였으나 할 수 없었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계속 생겼다.

그때 마술사들이 바로(파라오)에게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그러나 바로(파라오)의 마음이 완고하여,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Exodus 8:16-19 바른)


01.3.2.3.8.10.2.1.4.1. 우리


우리(하나님)라는 용어를 계속 쓰게 되는 것은 구약에 기록된 여호와가 지칭하는 단어가 대부분 성부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부가 구약에서 역사할 때 성자인 나와 성령도 함께 했다. 무소부재한 삼위일체로서 우리가 함께 한 것이다. 구약에는 나도 아직 성육신 전이라 영의 형태로 존재했다. 성부가 역사할 때 성자인 나와 성령이 함께 있었다. 이는 인격체로서의 구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무소부재한 우리의 특성상 그리고 무소부지한 우리의 특성상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양태론도 삼신론도 아님을 밝혀둔다. 또한 그 자리에서 역사한 주체가 성부 외에 성령과 성자라는 것을 의미함도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성부와 성령과 나 성자가 함께 함을 표현한 것이 우리라는 표현이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이미 사용한 표현이므로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우리라는 표현은 삼위일체인 우리(하나님)를 표현한 것으로 너희 인간들은 이 개념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너희 육신을 가진 존재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냥 창세기 1장에 나온 표현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이에 대한 더 넘어서는 이해를 구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로 이는 나중에 나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부활의 날에 새하늘과 새땅에서 이해해야 할 사항이다. 그때에는 너희도 인자로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은 나와 같을 것이므로 이해의 깊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하나님)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 이집트의 티끌에서 이(기생충)가 생기게 했다. 앞의 세 기적, 뱀과 물과 개구리에 대한 심판에도 파라오가 내 백성을 노예와 유아살해의 늪에서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샤먼들도 이가 생기게 하려 시도했지만 할 수 없었다. 이는 생겨나서 사람과 짐승을 괴롭게 했다.


01.3.2.3.8.10.2.1.4.2. 단계적 훈계와 심판


우리가 이런 기적들을 일으키는 이유는 내 백성 이스라엘이 우리(하나님)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백성을 대적하는 이집트인들에게도 교훈을 주어 그들도 회개하기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회개하지 못하더라도 내 백성 이스라엘을 잡아먹는 죄악에서 돌이켜 내 백성을 풀어주게 하기 위함이었다. 말로 타일렀을 때 들었더라면 기적은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이 이집트인 자신들에게 심판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은 완고함으로 귀를 닫고 내 백성을 풀어주기를 거절했다. 계속 내 백성을 착취하며 노예로 부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하나님)는 매를 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심리적 고통을 주었고 다음에는 육체적 고통들이 점점 가중되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어서 가축의 목숨을 취했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축산물과 농수산물을 모두 없애버렸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니 흑암 속에 두어 모든 것을 거두어버렸다. 3일 동안은 더듬고 기어 다녀야 했으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니 결국에는 이집트인들의 모든 장자를 죽였다. 그제서야 내 백성을 놓아주었지만 또 군대를 끌고 달려와 내 백성을 다시 사로잡으려 하니 결국 홍해에 모두 수장시켜 목숨을 취해버렸다.

그러나 그 문명을 완전히 멸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심판이기는 해도 이것은 사실 이집트 문명의 완전한 공멸을 막는 정화의 길이기도 했다. 노아시대와 바벨 시대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의 집합체(사회)는 전멸의 공멸로 나아가는 괴이한 악습을 가지고 있다. 공멸의 DNA는 여전히 작동하며 언제나 모든 문명들을 완전한 공멸로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것이 역사의 도전과 응전이며 나라들의 흥망성쇠다. 부분적으로 곪은 악을 도려내어 나머지는 살리는 일들을 지속하며 완전한 공멸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처음 아론의 뱀이 이집트 샤먼들의 뱀을 삼켰을 때는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에게 심리적인 충격은 있었지만 신체적인 괴로움은 없었다.

두 번째 물이 피로 변했을 때는 심리적인 충격과 신체적인 고통이 함께 했다. 물이 피로 변해서 목이 말랐다. 그래도 나일강 주변의 땅들을 파면 나일강의 모래가 필터 역할을 해서 먹을 수 있는 물이 솟았다. 조금 수고스러워도 목마름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자원 중 하나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물이 피로 변함으로 이집트인들이 즐기는 식품은 아니었지만 나일강과 연못과 작은 하천들의 생선과 해산물들이 모두 폐사했다.

세 번째 개구리들이 땅에 가득하고 기어올라 밤낮없이 몸과 얼굴에 달라붙어서 동물과 사람 모두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더운 기후의 이집트의 가옥들이 밀폐가 되지 않는 개방식 구조라 이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괴롭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몸이 다치거나 병들거나 죽지는 않았다.

네 번째 이 재앙은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괴로움을 주었다. 이에 한번 감염되어 본 사람이라면 그 고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머리카락이나 체모에 숨어버리며 옷의 바느질 틈 사이에 숨어 있다. 피를 빤 후 생기는 상처에 의해 가려움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는 전염병을 전파하고 피를 빨아먹어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그러나 당장 죽거나 병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섯 번째 파리 재앙은 개구리와 마찬가지지만 파리들 중에는 체체파리와 같이 사람이나 짐승의 피를 빠는 것들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파리도 전염병을 옮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가셔서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과 가려움을 준다. 온몸에 파리가 덮인다고 생각하여 보라. 과연 그 가려움과 비위생적 상태를 참고 잠들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재앙의 중간중간에도 계속해서 말로 설득하는 일들이 반복되었으나 파라오는 내 백성을 고통과 착취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한번 획득한 자신의 노예들을 결코 면천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들이 도망이라도 가면 추노꾼을 풀어서라도 잡아왔고 도망갔던 자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형벌을 가했다. 노비의 상태인 내 백성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이집트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일들이 빈번했으나 이를 처벌하는 이집트의 법은 억울한 여자들의 눈물을 모래에 파묻어 감추기에 급급했다. 남자들도 자신을 부리는 자들의 아내들에 의해 성적 착취를 당했다. 마님들이 부르면 거절할 수도 없이 방으로 불려 들어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강제적 성행위의 봉사를 해야 했다. 여자만 강간에 의해 모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남성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행위(강간)를 해야 하면 자신의 모든 자존감이 무너져 내린다. 내 백성들은 강제 노력에 동원되었다. 이뿐 아니라 이집트인들은 자신들보다 건장하고 지혜로우며 수도 많은 내 백성들을 멸절하기 위해 갓난아기를 남자라 하여 강물에 빠트려 익사시켰다. 짐승에게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나는 이를 참을 수 없었다. 내 백성의 울부짖는 소리를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형을 집행함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했다. 먼저 짐승을 죽였고 사람의 몸을 병들게 하고 결국 사람도 죽였다. 그 단계 단계에 계속 회개는 하지 않더라도 내 백성만이라도 놓아주기를 간곡히 설득했는데 파라오는 간악한 고집을 꺽지 않았다.

그래서 여섯 번째 악질 재앙에서는 악독한 질병으로 가축들을 죽였다. 식량 자원이면서도 동시에 신들의 아바타였던 짐승들을 죽였다. 그래도 파라오는 회개하지 않았으며 회개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내 백성을 놓아주지도 않았다.

일곱 번째 독종 재앙에서는 이제 악성 종기가 짐승에게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퍼지게 하여 괴로움을 주었다. 이전까지는 사람의 몸이 병들게 하지는 않았다. 파라오의 신하들조차 그 고통으로 인해 등청하지 못했고 결국 이집트의 행정은 마비가 되었다. 그 괴로움 속에서도 파라오는 내 백성을 놓아주지 않았다.

여덟 번째 우박과 천둥, 번개 재앙에서는 들에 있는 가축이 모두 죽었다. 또 농작물도 피해가 막심했다. 또한 미리 피할 기회를 주었지만 피하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그래도 파라오는 내 백성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홉 번째 메뚜기 재앙에서는 이집트에 있는 모든 식물들을 없애버렸다. 이는 식물성 식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저장된 얼마 안 남은 곡물들이 없어지면 이집트의 모든 백성들은 아사할 것이다. 그래도 파라오는 내 백성을 놓아주지 않았다.

열 번째 흑암 재앙에서는 모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양식을 빼앗은 후 살 수 있는 빛조차도 빼앗아버렸다. 새로운 식물들은 자랄 수도 없고 모든 지구의 활동들은 얼어붙어버릴 것이었다. 그 흑암이 계속된다는 이집트는 빙하기에 접어들 것이고 이집트 문명은 얼음 속에 보존된 매머드와 같이 될 것이다. 사막 기후인 이집트는 낮이 아무리 뜨거워도 밤에는 사람을 얼어 죽일만한 추위가 엄습하는 곳이다. 그런데 밤만이 계속된다면 그 추위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며 나일강의 물과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공포가 이집트를 냉동시킬 것이다. 완전한 흑암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완전한 시각장애인과 같이 빛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일어서지도 못했고 더듬어서 기는 것이 전부였으니 3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태가 유지된다면 이집트인들은 전멸할 것이다. 그래도 파라오는 내 백성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열한 번째에는 이집트의 장자를 모두 죽였다. 짐승이나 사람의 모든 장자를 죽였다. 드디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놓아준다고 파라오가 말했다. 그러나 내 백성들을 놓아준 후 파라오는 군대를 이끌고 내 백성을 추격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열두 번째 재앙을 이집트에 행했다. 그것은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를 홍해바다에 수장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심판을 원하지 않는다. 또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이집트 문명의 멸절을 원하는 하나님(엘로힘)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도 구원하기를 원하다. 그래서 이집트를 자정 시키고 내 백성을 구원할 최소한의 희생을 치르고 이 심판을 마무리 지었다. 이집트인들이 회개하고 아니 회개는 않더라도 내 백성을 강간하고 살육하고 노예로 삼는 일만 멈추었어도 우리는 이 심판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심판의 과정 중에 이제 네 번째 심판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를 짐승과 사람에게 달라붙게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 형상을 하고 있는 신들의 아바타가 바로 짐승들과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보냄으로 이집트의 신들의 아바타들을 괴롭혔고 그 신들을 모독했다. 그들의 권세가 거짓임을 드러내고 그들이 사기꾼 신들임을 명백히 했다.

이집트의 신들이 동물과 사람의 하이브리드(잡종) 형태인 이유가 있다.


01.3.2.3.8.10.2.1.4.2. 짐승형 신들에 대한 심판


01.3.2.3.8.10.2.1.4.2.1. 짐승과 사람의 잡종 신


이집트의 신들은 거의 모두 동물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하고 있다. 아니면 동물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하고 있는 경우들도 간혹 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신의 형태를 이와 같은 형태로 정형화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문명과는 좀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명에서 신들은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집트 문명은 인간보다는 동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문명에서는 동물의 머리나 몸을 가지고 신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면 괴물로 취급을 한다. 물론 인간형 신들은 후대에 나타난 신들의 형태들이기는 하다. 대부분 고대의 신들은 인간 자신보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지닌 동물들의 강함을 숭상하여 그것을 토템으로 삼은 경우들이 많다. 이집트의 신들도 대부분 그런 토템에 기반하여 발전한 신들이다. 그들의 문명의 풍요와 그로 인한 기술과 과학의 발달은 이런 그들의 토템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거대한 피라미드와 건축물들을 남겼다. 나일 하구 삼각주의 풍요는 언제나 계속되었기에 이집트 문명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졌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이들의 문명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많은 신화들이 존재한다. 또 그 세월 동안 숭배되었던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집트 지역에 풍성했던 농경문화와는 다른 야생의 동물들이나 가축을 주요 신의 형상으로 삼았다. 그 이유는 이들의 거주 형태와 관련이 있다. 이집트는 대부분이 사막이다. 사람이나 동물이 살 수 있는 곳은 거의 대부분 나일강 주변이나 가끔씩 나타나는 사막의 오아시스뿐이다. 이런 지역에서는 사람들이나 동물들의 거주가 밀집형태일 수밖에 없다.

나일강의 주변에는 비옥한 퇴적물들로 인해 농경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다른 지역과는 차원이 다른 풍성함이 언제나 있었다. 인간문명에 의한 관개수로의 발달 이전에는 자연적인 수로가 발달되고  비옥한 퇴적물이 쌓이는 강의 하류의 삼각주가 주요한 농업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일강은 이런 조건에서 최상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하구의 삼각주를 발달시켰다. 삼각주는 퇴적층이 쌓여 바다로까지 뻗어나갔고 그 넓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크기다. 삼각주가 바다로 뻗어나가 원의 형태를 이루고 원의 일부를 잘라낸 모양이 되었다. 그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확장 된 것이다. 이런 삼각주를 원호상 삼각주라 부른다. 그 크기도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들 중 하나다. 사실 너무 큰 삼각주들은 그 크기를 명확하게 구분 지어 그 넓이는 구하는 것도 힘들다. 그 지역이 너무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그 범위를 구분하기도 힘들다. 삼각주의 퇴적이 완료되면 그 땅은 더 이상 삼각주가 아닌 육지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평야에 단지 강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또 삼각주는 바다를 향해 계속 확장을 거듭하기 때문에 몇 해만 지나도 그 넓이가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가장 넓은 삼각주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다. 어찌 되었던 나일강의 삼각주는 거대한 지역이다. 남북의 거리는 약 160km 정도다. 동서로는 동쪽의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서쪽의 포트사이드까지 약 240km의 넓은 지중해 해안선이 펼쳐져진다.  거대한 지역이다.

하지만 이집트 전체 땅에 비해서는 그 넓이가 넓다고 할 수 없다. 하구의 삼각주를 제외하고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은 나일강을 따라 남북으로 종으로 길게 배열되어 있다.

인간은 농사가 가능해지면 수렵과 채집을 포기한다. 수렵과 채집은 언제나 배고픔을 면하기 어려운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농경이 발달되면 인간은 사냥 능력과 전투 능력들이 대부분 상실된다. 물론 군대를 기르고 훈련을 시키지만 수렵과 채집을 위주로 사는 민족들에 비해 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다른 문명에서는 농경화가 되면 동물들은 대부분 농경이 불가능한 야생 산지로 쫓겨나 인간과 접촉이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신의 형태도 동물의 형태가 아닌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의 흔히 보는 인간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농경을 통해 도시화와 문명화를 인간은 거친다. 그렇게 권력과 부를 가진 인간은 자신을 우상화하고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 결코 다른 것을 섬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황제들은 스스로 신이 되기를 원했다. 진시황이 영원불사의 약을 구하여 영원한 통치를 원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백성들은 황제를 하늘의 아들, 천자로 섬겼다. 유교는 이런 사상의 중심이었다. 무위자연을 추구한 도교조차 스스로 참선을 하여 신의 경지에 이르려했다. 불교도 스스로 해탈하여 신이 돼라 했다. 문명화되고 도시화된 사회에 사는 인간들이 궁핍함과 위험을 벗어난 환경에 살게 되면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 신이 되려는 태초의 근원적 탐욕이다. 그러니 다른 형상을 구하지 않고 인간 자신의 형상을 가진 신을 추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신이 되려는 추구를 한다.

그런데 이집트는 그 거주지역의 특성상 농경이 아무리 발달해도 동물들과 계속 조우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동물과 인간의 생활구역이 겹친다. 그 구역이 나일강 주변이다. 사람과 동물 모두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일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사막이니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냥과 전투능력이 약해진 농경민족에게 야생 동물들의 신체능력은 탁월함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집트인이든 계속해서 동물들의 능력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그 동물의 능력과 인간의 신체가 합해지기를 원했다. 동물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지기를 원했다. 또는 인간의 머리에 동물의 몸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동물 형상의 신들을 계속 섬겼다.

인간의 힘은 집단과 무기의 힘에 기반을 한 것이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되면 인간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인간 자신들의 집단과 무기를 위한 테크놀로지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강함을 숭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강함의 집약체이며 자신들이 신앙할 신앙의 대상도 인간 형태로 변형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명권들은 신의 형태가 인간의 형태로 변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집단과 무기의 힘을 능가하는 힘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야생에 생존하여 있는 짐승들의 힘이다. 코브라는 물리면  몇 분 안에 목숨을 빼앗는 맹독을 가지기도 한다. 악어는 그 악력이 대단하여 어떤 짐승리라도 악어의 입에서 뼈까지 부러져 뜯겨져 나간다. 이런 힘과 나일강가에서 지속적으로 조우하는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경회감을 신으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신의 형태를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암무트나 아포피스다. 나일강 주변의 공포의 존재인 악어를 신격화한 것이 암무트다.

암무트는 악어의 머리에 사자의 갈기를 가지고 있다. 상반신은 사자 또는 표범이고 하반신은 하마다. 육상과 강의 공포스러운 존재들을 합하여 만든 형상의 신이다. 그 하는 일도 공포스러워 사후에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과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깃털보다 무거우면 암무트가 죽은 자의 심장을 먹어버린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포피스는 거대한 뱀으로 모든 세상을 감쌀 정도의 거대한 크기였다. 태초의 혼돈 속에 있던 존재로 태양신 라가 발생했을 때 라의 탯줄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아포피스는 우주를 감쌀 수 있는 크기의 거대한 뱀이다. 이 뱀은 이집트의 모든 신들 중 최강의 생물로 알려져 있다. 라와 세트가 함께 싸워도 대적하기 힘들 정도의 존재로 표현된다. 이 뱀은 태양을 삼키는 존재일 정도의 강력한 존재다.

이런 인간과 짐승의 하이브리드형 신들의 신화는 이집트인들이 나일강가에서 만나는 악어와 코브라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생했다. 이집트 신들이 짐승과 동물의 하이브리드 형태인 것이 이런 이유에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이집트인들은 가축을 기르는 목축을 가증스럽게 여겼다. 그들의 농경문화와 자신들의 신들이 제시하는 법인 마아트에 위배됨도 있지만 자신들의 신들이 가지고 있는 형태인 짐승을 도축하는 일을 해야 하는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내 백성들이 목축을 함으로 이집트인들과 분리가 되고 그들이 이집트의 악에 물드는 것이 방지되었다.


01.3.2.3.8.10.2.1.4.2.2. 짐승과 인간의 하이브리드형 신들에 대한 심판


우리가 앞으로 행하는 기적과 심판은 이집트의 신들의 형태가 인간과 짐승의 하이브리드임을 감안하여 한 심판이다. 우리가 짐승들과 인간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그들이 영향을 받는 것은 이집트의 신들의 아바타가 심판을 받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의 신들이 심판을 받는 것이다. 이집트의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소가 죽어가면 소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신들이 능력이 없으며 그 신들의 권세가 거짓임이 드러나는 것이 되었다. 또한 가축들의 지켜주는 기능을 하는 신들도 그 실패를 드러내게 된다. 해당하는 병충해를 관리하는 신이나 그 재앙과 관련한 물질들(예, 땅의 티끌)과 관련된 신들도 모두 그 실패가 확인된다. 한두 마리는 죽을 수 있지만 집단폐사한다는 것은 그 신들이 이미 힘을 잃은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 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신이 이러한 심판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세계관에서 이집트인들은 이 모든 과정들을 신들의 전쟁으로 받아들였다.


01.3.2.3.8.10.2.1.5. 다섯째 모세의 선포와 파리 심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보아라, 그(바로, Pharaoh)가 물에 나아올 것이니, 그(파라오; 콥트어, 퍼로)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 네가 만약 내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내가 너와 네 신하들과 네 백성들과 네 궁궐들에 파리를 보낼 것이니, 이집트 사람의 집과 그들이 사는 땅에 파리가 가득할 것이다."

"그날 내가 내 백성이 사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여 내가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겠다. 내가 내 백성과 너의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겠으니, 내일 이 표적이 있을 것이다.' 하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 떼가 바로의 집과 그의 신하들의 집과 이집트 온 땅에 이르러, 그 땅이 파리 때문에 황폐하게 되었다.

그때 바로(파라오의 한자 음역)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가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모세가 말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이집트 사람이 몹시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몹시 싫어하는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우리를 돌로 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사흘 길을 광야로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바로가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보내어 너희가 광야에서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겠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지 마라. 이제 너희가 나를 위해 기도하여라."

모세가 말하였다.

"내가 왕 앞에서 나가 여호와께 기도하겠으니, 내일 파리떼가 바로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서 떠나갈 것입니다. 다만 왕께서는 이 백성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일에 더 이상 속이지 마십시오."

모세가 바로에게서 나와 여호와께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모세가 말한 대로 하셔서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백성들로부터 떠나 하나도 남지 않았으나, 바로가 이번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다.
(Exodus 8:20-32 바른 )

이와 파리를 통한 재앙은 기생충들을 동원한 재앙이다. 또한 기생충 중에서도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통해서 심판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의 거짓신들은 이런 작은 곤충들조차 통제할 힘이 없었다. 사실 타락한 천사들 주제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작은 것은 당연하다. 천사들이 대단한 능력을 행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었는데 그때는 우리(하나님)의 명령을 들고 가서 그들이 전달하는 것이다. 결코 그들 자신들에게 허락된 능력이 아니다. 천사들은 단지 전달자들일뿐이다. 원래는 우리(하나님)와 인간의 명령을 하달받아 실행하던 천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단지 메신저일 뿐이었다. 우리(하나님)와 인간들의 명령에는 힘이 있었다. 바로 신인 우리(하나님)와 우리의 형상인 인간에게 있는 힘이다. 원래의 근원은 우리고 인간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에게서 그것을 허락받은 유일한 존재다. 타락한 천사나 원래 천사들은 사실 자신들의 것이 아닌 우리와 인간들의 것을 전달하는 메신저였다. 그러니 이들은 사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단지 우리와 인간들의 것을 훔쳐 사용하는 기생충일 뿐이다. 그러니 동물들에 기생하는 작은 이와 파리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능력이 있었다면 이와 파리를 감당하지 못할 리가 없다. 또한 자신들의 아바타인 동물과 인간의 육체가 이와 파리에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타락한 천사들에게 원래 있던 작은 능력으로는 이런 것을 감당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이집트 전역에 창궐한 이와 파리를 몰아낼 수 있겠는가?

거짓된 신들인 이집트의 타락한 천사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또한 그 거짓 신들과 야합한 샤먼들인 파라오와 신관과 관직을 겸했던 자들이 만든 세상도 그 속임이 밝혀져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재앙들


전반 다섯 재앙과 후반 일곱 재앙


열두 기적은 믿는 내 백성에게는 구원이 되었다. 그러나 내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에게는 심판이 되었다. 이 심판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재앙부터 다섯째 재앙까지는 고통을 주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여섯째 재앙 이후로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재앙이었다. 그러나 그 여섯째 재앙 이후에도 단지 고통만을 주는 재앙들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집트 백성을 심판하거나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회개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학살하는 짓을 멈추고 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였다. 우리가 여러 말과 여러 수단으로 설득하였으나 파라오는 그 모든 것을 거절하고 내 백성을 멸절시키기 위한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한 짓은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잡아다 학살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며 의료용 실험체로 사용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악행이다. 우리는 심판을 원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이집트 파라오의 완고함이 재앙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처음에는 말로 타일렀고 그것이 안되자,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도 안되니, 결국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주었다. 그 죽음도 바로 죽음을 주지 않고 죽음에 가까운 우박과 메뚜기와 흑암 재앙을 주었다. 그것도 교만하여 거절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생명들을 멸했다. 처음에는 장자만 죽였는데 그래도 내 백성을 죽이겠다고 따라오니 어쩔 수 없이 그 군대 전체를 멸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전에 그들의 인생 전체에서 나는 끊임없이 그들이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앞에 단계적 훈계와 심판에 대해 말했는데 12 심판에서 전반 다섯 재앙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후반 7 재앙은 죽음이 섞여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말로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리고 백 년이 넘는 동안 이집트인들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인간의 양심과 평등의 잣대를 벗어난 것임을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되면 악마적 얼굴을 드러낸다. 그전까지는 위선의 페르소나를 가면으로 내둘러 인자한 미소를 짓지만 자신에게 손해가 끼쳐지면 바로 상대를 위협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응징하여 자신의 손해가 만회될 수 있는 길을 만든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 대부분의 것은 도적질로 얻은 것이다.


도적놈들의 사회정의


사회의 시스템을 설계한 영감의 존재가 도적놈 마귀이니 그들 사회의 거의 대부분은 도적질이 일상화되어 있다. 자신의 시대의 도적질은 잘 몰라도 낯선 다른 시대의 도적질은 잘 구분할 수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자신의 시대의 것은 세뇌당한 머리로는 찾기 어렵다. 너희 시대가 아닌 이집트 시대의 도적질을 한번 보라. 이집트인들은 자신들과는 민족이 다른 내 백성 이스라엘을 노예로 전락시켰다. 그 논리는 이러했다. 이(異) 민족인 이스라엘이 자신들보다 수가 많아지고 강성해지니 이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전복하여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에 외적들이 침입했을 때에 이스라엘이 그들과 연합한다면 이집트는 멸망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이 스스로 반란을 일으켜도 자신들보다 수가 많고 신체가 건장하고 정신력과 지력이 뛰어남으로 자신들의 안위가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노예로 삼아버렸다. 또 그들의 인종을 멸종시키기 위해 남자들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그 방법이 남성 성별의 유아 살해였다. 이스라엘의 씨(남자)를 없애고 밭(여자)만 남겨 자신들 이집트인들의 씨를 이스라엘의 밭(여자)에 뿌려 이집트의 씨만 풍성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 시대적 정의였으며 집단 논리였다. 우리가 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이것이 자신들에게 당연히 실행되고 집행되어야 할 사회적 정의였다. 그 사회적 정의의 시스템으로 내 백성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갓난아기는 강에 빠트려 익사시키고 성인 남자들은 고된 노역현장에서 시달리다가 사고로 죽거나 곯아서 병사하게 만들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생존하려면 이것이 정당한 사회보존의 길이며 이를 전략으로 전술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중되는 심판


이를 주장하며 내 백성을 잡아먹는 이 짐승들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들은 그들의 신들의 형상과 같이 정녕 짐승의 머리와 내장을 가졌다는 말인가? 내 백성들은 이렇게 신음하며 죽어가는데 그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이 정의인가? 만약 그것이 정의라면 그 정의는 둘 모두를 공멸로 몰고갈 죽음의 독약일 것이다. 내 백성은 멸절될 것이고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악의 총화로 결국 자신들의 심판을 불러올 것이다.

그래서 내 백성에게는 구원의 길로 그리고 이집트 백성에게는 부분적 악을 도려내는 정화의 길로 우리는 죽음의 심판도 실행을 했다.

여섯 번째 악질 재앙 이후로는 짐승 그리고 식물 그리고 다음으로는 인간에게 죽음이 임했다. 이도 계속 기회를 주어 인간의 죽음은 가장 마지막에 두었다. 그래도 돌이켜서 최소한 내 백성을 도살하는 일만이라도 멈추기를 원하는 우리의 바람은 허망한 기대로 끝났다. 그들은 끝까지 악독함을 뉘우치지 않았다. 심지어 최소한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기적 정의로 잣대를 만들어 내 백성들을 도살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내 백성을 자신들의 가축이나 물건으로 여기고 그들을 내놓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가 점진적으로 행하는 심판은 이러한 연유에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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