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과 가나안(천국) 입성
Matthew 5:48 개정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여기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τέλειός)과 너희도 온전하라(τέλειοι)에 쓰인 단어는 끝에 이르거나 완성이 된다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일이 끝이 나거나 정해진 기간이 끝이 남을 뜻하는 단어 텔로스(τέλος)에서 출발한 형용사다. 이 단어 온전함이 인간에게 사용되면 그 뜻은 성인이 됨 즉 장성함을 뜻한다. 성장이 끝나 완전하여졌음을 뜻한다.
마 5:48절을 '장성한'이라는 뜻을 사용하여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장성하심과 같이 너희도 장성하라.
물론 이 번역은 오류가 있다. 아버지는 이미 완전하심으로 더 이상 성장이 필요 없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 이 단어가 사용되어질 때는 '완전한'이라는 형용사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개념에서의 완전이 헬라어(τέλειός)와 영어(perfect)의 완전함이다. 즉 성장이 완료되어 완전해졌다는 것이다. 이를 장성했다라고 표현한다. 이 단어는 시간이나 사건 또는 일에서는 그 끝이 나서 완료되었음을 뜻한다. 인간에게는 성장이 완료되었을 때 이 개념을 적용한다. 이 단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한 단어로 정의하면 완료다. 완료됨으로 완성되어 완전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사용된 명확한 표현이 사용된 문장이 있다. Ephesians 4:13이다.
Ephesians 4:13 바른
13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여기서 온전한 자가 되어라라고 할 때 온전한(τέλειον)이라는 단어가 바로 마 5:48절에 사용된 '완전한'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다. 이를 뒤에 부연 설명한 것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다. 그리고 그 다른 표현이 장성한 분량이다. 이 문장은 이 단어의 뜻이 무엇임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초대교회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완전을 뜻하는데 그것이 성장하여 '완전한' 데까지 이른 것을 뜻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영어권에도 이런 뜻으로 '완전한'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구약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우리(하나님)를 온전히 좇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단어의 뜻도 동일하다.
Numbers 32:12 바른
12다만 그나스 사람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예외이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기 때문이다.' 하시고,
물론 온전히 좇았다는 단어(H4390 히 מִלְא֖וּ, miliu, 밀리우)는 LXX에서는 συνεπηκολουθησεν(G4845)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도 끝마치다 또는 가득 채우다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 말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는 말로 사용된 것은 '따르는데 그 분량이 가득 차도록 따랐다'는 것이다. 완전한 행함이다. 또한 이 단어 온전히 따랐다(H4390 מלא male)는 다른 70인역 본문에서 신약 마 5:48절에 사용된 '온전한'이라는 단어의 동사형인 텔레이오오(τελειόω)로 번역되었다. 이것도 두 단어의 뜻이 통한다는 증거다.
이는 마 5장에 등장하는 율법을 완전히 행함으로 완전해지는 의,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의 수준을 넘어서는 완전한 의 즉 심령과 행위가 모두 완전한 의와도 그 맥락을 같이하는 단어다.
이 단어가 아버지(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완전함으로 쓰인다. 우리(하나님)는 완전함으로 모든 율법을 충족한다. 사실 율법은 우리의 완전함에 비해 부족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준 법으로서 율법은 우리의 성품의 일부를 완전하게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 맞게 다운그레이드된 완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모든 우주에서 모든 것을 통치하는 완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에 완전하다. 우리의 성품에서 전능과 완전은 필연적이며 상호충족적이다. 우리가 완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랑을 행할 전능한 능력을 가졌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완전하다. 인간도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들도 우리 안에서 완전하다. 우리의 완전한 사랑의 법을 따라야 한다. 물론 그 완전이 전능을 기반으로 한 완전은 아니며 인간에게 허락된 선 안에서 다운그레이드된 완전이다. 그런데 인간은 성장하여 완전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완전이 우리의 완전을 향해 나아와 나 예수가 인간으로서 완전함으로 나아가 우리(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은 것같이 된다. 그렇게 하여 인간은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나 예수와 함께 심판하는 자리에 앉는다(계 20:4).
너희가 우리의 나라에 들어오려면 우리의 완전한 새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너희에게 주는 새 계명은 완전한 사랑이다. 마 5장에서 팔복을 제외한 부분들은 인간 사랑에 대한 계명이다. 그리고 6장 이후에 7:12절까지는 우리(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요구하는 계명이다.
우리의 통치에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의 사랑과 같은 완전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통치법은 사랑이기에 그 완전한 사랑의 법을 준수하는 자만이 우리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오는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다. 또한 완전한 사랑을 행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 속한 자가 아니다.
1 John 1:6 개정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1 John 2:3-6 개정
3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 지니라
1 John 2:9-11 개정
9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 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1 John 2:15 개정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 John 3:3-10 개정
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복음서에는 구약의 율법이 그러했듯 십계명(팔복)이 주어지고 세부적인 율법들인 우리(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에 대한 세부사항들이 주어진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구약의 십계명에 해당된다. 가장 앞의 십복(팔복)이 십계명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 후반부인 마 5:13~8:1은 새계명에 대한 해설이다. 구약의 십계명에는 대신 사랑의 5 계명이 먼저 나오고 뒤에 대인 사랑의 5 계명이 나온다. 그런데 신약의 새계명은 대인 사랑을 먼저 언급하고 난 뒤에 대신 사랑을 언급한다.
산상수훈은 아래와 같은 동심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심원 구조의 중심은 바로 위에 살펴본 마 5:48절이다. 통상적으로 동심원 구조의 핵심은 그 중심에 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의 핵심은 바로 이 문장이다.
Matthew 5:48 쉬운성경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도록 하여라."
아래의 마 5:1~8:1까지의 구조 분석을 보면 산상수훈의 핵심을 알 수 있다.
Mountain
Word
Blessing
Perfect
Love
Perfect(마 5:48)
Love
Perfect
Blessing
Word
Mountain
Mountain. 산으로 올라감
마 5:1
Word 말씀하심
마 5:2
Blessing. 십계명의 새 계명: 십복(팔복)
마 5:3~12 복되다
1. 마 5:3 영(하나님)에 주린 사람
하늘나라
2. 마 5:4 슬퍼하는 사람
위로
3. 마 5:5 온유한 사람
땅을 기업
4.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배부름
5. 마 5:7 긍휼히 여기는 사람
긍휼히 여김 받음
6. 마 5:8 마음이 청결한 사람
하나님을 봄
7. 마 5:9 화평케 하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8. 마 5:10 의를 위해 핍박받는 사람
하늘나라
9. 마 5:11~12A 복되다
모욕하고 박해
거짓으로 대항 온갖 악담
10. 마 5:11~12B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이 크다.
선지자들을 이같이 박해
Perfect.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완전한 의
마 5:13~16 소금과 빛
마 5:17~20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
Love. 대인 계명(마 5:21~47)-완전한 사람 사랑
1. 마 5:21~26 미움 없는 사랑
2. 마 5:27~32 음욕 없는 사랑
3. 마 5:33~37 맹세 없는 사랑
4. 마 5:38~41 복수 없는 사랑
5. 마 5:43~47 원수 없는 사랑
Perfect. 마 5:48 아버지와 같이 완전하라
Love. 대신 계명( 마 6:1~7:11)-완전한 우리(하나님) 사랑
6. 마 6:1 아버지께만 은밀히 의를 보이라
마 6:2~4 은밀히 도와줌
마 6:5~6 은밀히 기도
마 6:7~15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
마 6:16~18 은밀히 금식
7. 마 6:19~21 보화도 하늘 아버지께
8. 마 6:22~24 눈 초점도 아버지께
마 6:25~34 초점을 의식주보다 아버지께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9. 마 7:1~5 스스로 판단하지 마라 판단도 아버지의 눈으로
마 7:6 판단력 없는 개, 돼지에게 지혜를 던지지 말라
10. 마 7:7~11 스스로 아닌 아버지의 성령님으로(성령님을 구하라)
Perfect. 완전한 대접
마 7:12 개정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너희가 너희에게 하여 주기를 원하는 모든 일을 너희도 그렇게 그들에게 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Blessing. 복(생명)과 저주(사망)
마 7:13~14
위에 주신 법을 행하면
좁은 문, 좁은 길=생명 문
마 7: 24~27 듣고 행하는 자 어떤 경우라도 생명
행하면 생명(반석 위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됨)
위에 주신 법을 행하지 않으면
넓은 문, 넓은 길=사망 문
마 7:15~23 듣고도 불법을 행하는 선지자(=거짓 선지자)
주님 주님 불러도
내(예수) 이름으로 예언, 축사, 기적 행해도
그래도 거짓영
불법 행하면 죽음(모래 위 무너질 사탄의 세상 아래 있게 됨)
사탄이 하나님과 대적할 만큼 높아서 상대의 자리에 놓은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권세를 아담에게 주었는데 아담이 사탄에게 속아서 빼앗겼다. 팔아넘겼다.
허랑방탕하게
Word 서기관과는 다른 권세 있는 말씀
마 7:28~29
Mountain 산에서 내려오심
마 8:1
위에서 대인 계명(마 5:21~47)과 대신 계명( 마 6:1~7:11)의 가운데에 동심원 구조의 중심인 마 5:48이 있음으로 앞 뒤의 모든 계명을 완전히 지키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렇게 완전한 자만이 천국에 들어올 수 있음을 강조하여 선포하고 있다.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나은 의, 즉 완전한 의(마 5:17~20)와 완전함(마 5:48)과 완전한 대접(마 7:12)의 사이에 완전한 대인 사랑과 완전한 대신 사랑을 배치함으로 완전함을 강조하였고 하늘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은 완전이 없이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음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마 7:13절 이후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다 천국에 들어올 수 없음을 선포하였고 앞에 말한 것을 들은 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 선포하였다.
거짓선지자와 그들에게서 난 거짓말쟁이들은 모두 불에 살라짐을 선포했다. 그들은 나의 법을 행하지 않고 자기 원함대로 행하는 불법자들이다. 저들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은 사탄과 처음 하늘 땅과 함께 불못에 들어가 불살라진다.
2 Peter 3:7-10 개정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Revelation 21:1 개정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Revelation 21:8 개정
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 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거짓선지자들아 성경 전체가 이것을 말하고 모든 피조물들이 이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스스로 거짓 기준을 만들어 천국문을 막고 넓은 길을 열어 지옥문으로 사람들을 밀어 넣는다면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그러므로 경의 말씀을 통해 진리의 기준을 들은 자들은 두려워 떨었다. 산상수훈은 회개(항복)하고 천국으로 들어오려는 자들에게 준 항복조항문이다. 그러니 이 기준을 듣고 그 시대의 백성들이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이 계명을 말하는 나의 말을 듣고 그들은 의아해했다. 성령을 구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구하여야 할지도 몰랐다. 죽어서 가는 천국을 생각하는 자들은 성령을 구한다면 성령이 엘리야에게 불수레와 함께 임하여 엘리야를 들어 올렸던 것처럼 자신들도 천국으로 들어 올려지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또는 지상의 천국을 생각하는 자들은 성령이 임하면 내가 세계를 정복했을 때 자신들도 구약의 왕들과 같이 한 나라를 통치하는 자들이 될 것으로 상상했다. 나는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산상수훈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통해 천국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깨닫고 돌이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천국에 들어오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천국복음을 깨닫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것이 전자는 능력이 없음 때문이다. 그리고 후자는 욕심으로 눈이 가리어져서다. 욕심으로 눈이 가리어진 자는 진리를 볼 수가 없다. 바로 눈앞에 성경이 있어 읽어도 엉뚱한 해석을 한다. 마치 가장 확실한 스승인 나 예수가 땅에서 사람들을 가르쳤음에도 유대인들은 그 말을 듣고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욕심에 차서 나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나의 복음을 가장 순수하게 받아들인 자들은 한센병자들이나 세리와 창기들이었다. 그들은 인생이 이미 무너져서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게 그들은 죄인이었고 특히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그들 스스로는 죄인의 수준이 아니라 혐오스러운 괴물이었다.
세리들은 돈을 탐하는 매국노의 인생을 살았지만 이미 자신에 대한 모든 기대는 무너진 자들이었다. 심지어 민족과 자기 자긍심을 팔아 번 돈과 쾌락도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없었으므로 세상 속에서 이미 절망을 경험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아실현은 꿈꾸지도 않았다. 이미 그들 안에는 자신에 대한 절망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자신이 아닌 우리(하나님)를 기대했다. 더 이상 자기를 세우고 자신의 목적을 따라 자아를 실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스스로 그 가장 처참한 밑바닥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세리들 중 거듭난 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세리들은 돈을 위해 그 어떤 악행을 일삼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세금을 과도하게 징수하고 부과된 세금을 못 내는 자들은 노예로 팔거나 창녀로 팔아넘겼다. 그 후에도 그들은 노예와 창녀에게조차 세금을 물려 착취했다. 사회적으로 이미 세금에서 자유롭게 된 자들도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돈을 빼앗았다. 그들의 탐욕은 세금을 걷는데서 끝나지 않았다. 타인의 재산과 심지어 얼굴이 예쁜 여자들의 몸조차 마음대로 빼앗았다. 그들은 식민 지배자 로마의 힘을 빌어 악의 꽃을 피웠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악마가 다스리는 지옥도였다. 그들의 표적이 되면 그 가정의 모든 삶은 괴멸되고 파괴되었다. 차라리 노예상들에게 잡혀가는 한이 있어도 그들의 표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시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정상적인 삶을 사는 가정도 그들의 표적이 되면 전 재산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몸조차 노예나 창녀로 팔려나가야 했다. 그 후에도 그들의 집요한 추적은 멈추지를 않았다. 그들이 흡혈귀와 같이 사람들의 삶의 혈액을 빨아들이는 구실은 식민 지배자 로마에 대한 반역자의 누명이었다. 그들과 결탁한 로마의 관리들의 표적이 되면 그 누명은 벗을 길이 없었다. 거짓증인들과 거짓증거들이 조작되어 죄를 씌우는데 한번 걸려들면 대단한 가문의 후손들도 그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시대에는 이러한 것들이 팽배해 있었는데 나에게 누명을 씌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도 이러한 것들을 활용했었다.
그들은 식민통치하의 성공의 길이었던 세리의 길을 갔다. 그들은 사회적인 엘리트들이었다. 헬라어에 능통해야 했고 헬라어로 작성된 장부와 세금에 대한 통계와 로마어 즉 라틴어로 된 공문서들을 읽고 작성하는데 능통했다. 또한 사교성과 정치력도 있어 로마의 관리들과 유대의 관리와 종교지도자들과도 커넥션을 형성했다. 그렇지 않으면 세리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이 정직하게 세금을 걷어서는 로마에 기본적으로 바쳐야 하는 년세도 걷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온갖 불법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 불법에는 권력자들의 조력과 눈감아줌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세리의 삶을 청산하고 나(예수님)를 따르는 자들은 원래 양심의 감수성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 양심은 우리(하나님)가 심은 것이다. 그들은 세리의 삶이 성공의 길이었지만 그 양심이 그 길을 견딜 수 없었다. 어떤 자들은 그 세리의 삶을 위해 딸을 로마 관리에게 바치기도 하고 세리직을 돈으로 매수하기도 했다. 심지어 언어나 기타 능력들이 떨어지면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자들을 고용해서라고 세리직을 수행했다. 그런 자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착취를 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리의 직업을 갖는 것이 성공에 다가서는 길이었다. 다른 이들은 적극적으로 세리일을 원하고 사회적 성공의 표상이 되는 일이 되었지만 그들 속에 내가 심은 양심은 그것을 거부했다. 양심은 자신이 매국노이며 다른 이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지적하며 밤낮으로 그들을 괴롭혔다. 잠을 잘 수도 없고 행복을 느낄 수도 없다. 아이를 보면 부끄럽고 아내를 보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부모님 앞에서는 생활비를 내놓으면서도 내놓는 손에 모멸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성문 앞에서 나를 만난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다. 더 이상 죄인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모든 죄를 사함을 받고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민중들이 스승으로 그리고 메시야로 여기는 나 예수의 제자가 되어 자랑스럽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했던 독립영웅으로서의 메시야를 생각하면 마태는 자신이 독립운동과 종교개혁운동에 동시에 참여하는 시대적 투사라고 생각되어졌다. 또한 그 시대에 생각했던 정치적 메시야의 마지막 목표였던 세계정복이 끝나면 마태는 세계 제국의 제상 12 중에 자신도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여 이러한 이유로 나를 따르는 세리들이 있었다.
물론 후에 나의 십자가를 보고 모두 도망을 가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함으로 그들에게 깨닫게 하는 은혜가 주어졌을 때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나의 증인으로 살았다. 세리들이 천국에 더 빨리 들어온 것은 그들이 사회의 엘리트여서가 아니었다. 다른 이들보다 더 뛰어난 지성과 사회적 능력을 지녔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그들의 더 많은 죄가 더 많은 은혜를 가져왔다.
누구든지 천국을 소유하는 은혜를 누리고 싶다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 제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해 주세요."
창기들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버려 더럽혀진 자들이다. 몸도 더럽혀졌지만 그들의 평판은 이미 여자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모든 기본권조차 없는 비참함이었다. 생계를 위해 몸을 팔지만 그 삶의 가난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굴레와도 같았다. 현대의 창녀들의 삶은 그 시대 창녀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시대 창녀의 삶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기에도 부족한 별 볼 일 없는 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겪게 되는 수치는 문둥병자나 세리의 그것과는 비교될 수조차 없을 정도록 혹독했다. 그녀들은 여자로서의 존중은 물론이요, 사람으로서의 존중도 기대할 수 없었다. 성밖에서 지나치는 문둥병자들조차 그녀들을 보면 침을 뱉고 욕을 해댔다. 그녀들은 세상의 가장 추잡하고 더러운 오물이었다. 구약 율법에 따르면 그녀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할 죄인이었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유대 땅에 살고 있다는 자체를 쉬쉬하며 그 자체를 유대땅의 가자 수치스러운 부분이라 생각했다. 유독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서 그 혐오는 더 크게 증폭되었다. 그런 남자들이 혐오하는 자신들을 푼돈으로 유린할 때면 그녀들은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들의 눈에서조차 경멸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쾌락을 위해 창녀와 교합을 했다. 그러면 자신들도 동일한 죄인이면서도 유독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오직 자신이 유린하고 있는 그녀들에 대해서만 혹독한 잣대를 들이댔다. 그런 모멸감을 느끼며 자신들의 몸을 더럽히는 자들의 아래에 누웠어도 그들이 주는 푼돈으로는 한 끼를 연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하루에도 서너 번 이상을 그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유대 남자들은 자신들이 경멸하는 창녀들에게 화대로 고액을 내기를 거부했다. 더러운 것들에게 많은 돈을 준다는 자체가 그들의 고결함에 손상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으니 참으로 창녀들을 찾는 죄인들이 갖는 생각이 그러했다는 것이 논리적 비약이요, 심리학적 괴변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주 아름다운 창녀들은 부유한 자들의 첩이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었다. 이방인들은 창녀를 첩으로 맞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종교적 자만에 빠져있던 유대인들은 고결한 처녀들을 두 번째, 세 번째 아내로 맞아들였지 창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내로 맞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돌로 쳐 죽여야 할 죄인을 아내로 맞는다는 것을 종교적 양심에 거리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푼돈으로 그녀들을 유린했던 그들은 도대체 어떤 신앙을 가졌던 것일까? 그러한 자들은 자신들의 조상 야곱이 자신의 며느리 다말을 창녀로 여겨 들어갔던 것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들의 율법 잣대는 자신들에게는 관대하고 창녀들에게는 유독 혹독했다. 그렇게 경멸하는 대상과 교합을 하는 자들의 심리는 악어의 눈물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정신병과 같다.
이러한 창녀들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그들은 현재의 삶도 지옥이었지만 내세에도 지옥을 살아야 했다. 자기중심적 선민의식에 빠져있던 유대인들에게 창녀들은 용서받지 못할 지옥의 백성이었다. 그녀들은 회개할 기회조차 없는 지옥을 위한 더러운 오물이었다.
그러한 그녀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했을 때 그녀들은 처음 듣는 용서의 소리에 자신들의 귀와 눈을 의심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했다. 그녀들만큼 나의 이 말을 반긴 이들이 있었을까?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았던 그녀들은 자신의 처참한 현실을 버리고 나를 따랐다. 나를 따르면 굶어 죽게 되겠지만 그래도 나를 따랐다. 그렇게 그녀들은 용서가 절박했다. 이제 거룩한 백성, 성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차라리 나를 따르다 굶어 죽어 이 비참한 생을 끝낼 기회가 왔다고도 생각했다. 거기다, 용서까지 받을 수 있다니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며 눈물을 흘리며 나를 쫒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렇게 따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굶어 죽을 줄 알았는데 그런 기적을 경험했다. 또 나의 가르침을 들은 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부족한 음식이라도 나누었다. 그녀들은 구제의 음식을 먹으며 나를 따랐다. 그런 그녀들과 함께 하는 여인들이 있었다. 하나는 일곱 귀신 들렸다가 구함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또 귀신에게서 구함을 받은 여자들이 더 있었는데 헤롯의 관리인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리고 다른 많은 여자들이었다. 그 여자들은 자신의 소유물들로 나와 내 제자들을 섬겼다(눅 8:1~3). 그리고 함께 한 여인의 무리들도 도왔다.
창녀들은 십자가 사건 때에도 나를 버리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자신들도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굶어 죽는 것은 당연하였기에 굳이 십자가형의 자리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무덤에서 부활 아침의 영광을 맞은 것도 그녀들이었다. 처음 부활한 나를 만난 것도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였다. 내가 부활했다는 소문은 나의 무덤을 처음 방문했던 여인들을 통해 그 무덤 근처를 떠나지 않고 머물던 여인들에게 전해졌다. 그 여인들 중에는 창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즘은 문둥병을 한센병이라 한다. 원래 한센병이라는 병명과 문둥병이라는 병명이 공존했는데 인권문제로 한센병이라 부르기로 했다. 너희가 사는 현대에나 고대에나 문둥병은 불치병이었다. 현대의학으로 병을 낫게는 할 수 있지만 이미 문드러진 몸의 일부는 되찾을 수 없다.
현대에 의학이 발달하여 치료받고 있는 문둥병자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지 않게 되었다. 또한 완치된 환자는 전염 가능성이 0%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문둥병자와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문둥병은 리팜피신을 주 성분으로 하는 복합 항생제를 쓰면 힘들이지 않고 저렴한 비용으로 완치가 될 수 있는 병이다. 나병균만 죽으면 완치가 된다. 초기에 발견하여 치료하면 거의 후유증이 남지 않아 정상인과 똑같은 외모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기를 놓치면 좀 흉물스런 외모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이는 병을 숨기다가 시기를 놓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병원에 가면 아주 쉽게 완치가 된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한센병의 치료비는 전액 국가에서 부담을 한다. 그런데도 병원을 찾아 한센병으로 확진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병원에 가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결국 몸의 일부가 문드러지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만큼 문둥병에 대한 인식이 공포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한센병에 대한 차별이 심해서 한센병 환자들은 수용소에서 살아야 했으며 심지어 한센병의 전파를 막는다는 구실로 한센병자들의 태아들을 살해하는 일들까지도 벌어졌다. 강제로 낙태를 시킨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자행된 모든 이유는 한센병에 대한 오래된 공포와 몰이해다.
심지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문둥병은 문둥병이 아니다. 원래 구약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에 중동과 유럽에는 문둥병이라는 병이 없었다. 즉 나병균의 전파가 중동과 유럽에는 늦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구약성경에 문둥병으로 번역된 단어 차라아트(צרעת)는 당시에는 피부병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70인역이 번역될 당시 레프라스(λέπρας)라는 헬라어로 옮겨졌다. 레프라스(λέπρας)도 차라아트(צרעת)와 마찬가지로 그냥 피부병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70인역이 번역된 시기인 BC 3~2에 유럽에 나병균이 전파되었다. 나병은 유럽 사람들에게는 공포였다. 그래서 헬라어 레프라스(λέπρας)가 나병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는 나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누군가 피부병만 생기면 나병으로 오인하여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피부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병을 뜻하는 단어가 된듯하다. 그래서 그 후대의 사람들은 이유도 알지 못하고 레프라스(λέπρας)라는 70인역의 피부병을 나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히브리어 성경을 해석하는데도 영향을 미쳐 결국 히브리어 차라아트(צרעת)도 피부병이 아닌 나병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 구약의 피부병에 관한 규정은 나병에 관한 법으로 변질되게 되었다. 그러한 변질에 의해 내가 갔던 시기에는 이미 나병 환자들은 구약 차라아트(צרעת)에 대한 모든 제약을 받아야 했다. 물론 나병도 일종의 피부병이라 볼 수 있기에 그러한 제약이 완전히 잘못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구약의 제약은 사실 어느 정도 전염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한센병이 저주에 의해 걸리거나 또는 부모의 죄에 의해 걸리게 된다는 주장은 없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보면 너희도 알 수 있듯 그 시대의 사람들은 문둥병은 저주받을 죄인이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다. 심지어 장애인들도 저주에 의해 병에 걸리는 것이라 인식했다.
문둥병자들은 성 안에서 살 수 없었다. 성밖에 격리되었다. 그는 혼자 살아야 했으며 심지어 다른 병자들과의 접촉도 차단되었다. 또한 죄인으로 낙인찍혔으며 저주받아 그 병이 낫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문둥병자가 된다는 것은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의 형벌을 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구약성경과는 상관도 없는 후대에 들어온 병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문둥병에 걸린 자들은 가족과 마을과 모든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 사람과 말을 할 수도 없으며 사람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완전한 죄인이었다. 가장 부정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부정함을 다른 이에게도 전염시키는 악의 근원으로 모두가 피하고 경멸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죄사함과 회개의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천국이 임한 증거로 죄악으로 병든 세상에 존재하던 병을 고쳐주었다. 문둥병자들이 낫는 것을 본 자들은 나를 그리스도로 인정했다. 세상 어디에도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병은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불치병이었다. 그러므로 문둥병은 걸리면 나을 수 없고 온몸이 문드러져 죽는 저주의 병이었다. 그 병을 고쳤다는 것만을 듣고 수많은 나병 환자들이 나를 따랐다.
그러나 한센병이나 세리나 창기라 하여 모두 나를 따른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를 따라나섰으나 구원에 이른 자들은 더 적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그들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했을 때에야 그들은 눈을 뜨고 진리의 빛 아래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저들이 구원받는 경우들이 훨씬 많았다. 왜냐하면 저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며 온유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나의 말을 경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들을 구원할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목말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