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3. 열왕의 어미 룻의 연대기 2

by 에스겔

01.3.2.3.13.3. 은혜


룻이 열왕의 어미가 된 것은 스스로 가진 것이 있어 된 것이 아니다. 단지 은혜였다. 이방 모압 여인이었고 남편도 없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미모가 어떠한가에 대한 표현도 룻기에는 없다. 가난한 여인은 일을 하지 못하는 늙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이삭 줍기를 해야 했다. 원래 율법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이삭까지 줍지 말라고 했다. 이삭이라도 주워 먹고 가난한 자들이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룻은 이러한 처지였다. 가난하고 시어머니까지 딸린 여인이 이스라엘에서 살 수 있는 길은 구걸에 가깝다. 밀레의 이삭 줍기에 나오는 장면은 농부가 떨어트린 이삭을 줍는 것이다. 수고로움은 있지만 구걸은 아니다. 그러나 룻은 구걸을 해야 했다. 이스라엘에 공식적으로 합법화된 구걸이었다. 그래서 룻은 은혜라는 표현을 썼다. 은혜라는 단어는 룻기 2장에 네 번 나온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기 2:2 [KorRV])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룻기 2:10 [KorRV])

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룻기 2:13 [KorRV])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룻기 2:20 [KorRV])


01.3.2.3.13.3.1. 은혜의 첫 번째 사용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때는 추수를 시작할 때였다.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양식을 구했는데 그 방법이 이삭 줍기였다. 그런데 이 이삭 줍기는 밭주인의 허락이 필요했다. 밭주인의 은혜가 있어야 이삭을 줍고 그것을 가지고 시어머니를 위한 빵을 구울 수 있다. 그래서 2절과 같이 나오미 자신이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으면 이삭을 줍겠다고 하는 것이다.


룻은 자신과 시모의 상황을 생각했다. 며칠을 한 끼로 버텼다. 그것도 나오미의 친족들이 조금씩 나누어 준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이 마지막이었다. 빵 하나의 대부분을 시모에게 주고 자신은 겨우 부스러기로 허기만을 달랬다. 물로 가득 배를 채우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럴 때 자신이 베들레헴으로 들어오며 본 풍경을 기억해 냈다. 소녀들이 이삭을 줍고 있었다. 모압에서는 주인들이 이삭까지 모두 주웠다. 그런데 소녀들은 밭의 주인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다. 시모인 나오미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 소녀들은 자기 이삭도 아닌데 이삭을 줍고 있는데요?, 혹시 품군인가요?"

"얘야, 저들은 가난한 과부의 딸이거나, 가난한 아비의 딸이다. 아니면 고아나, 과부란다.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떨어진 이삭을 나누어 준단다."


룻은 자신도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밭에 나가 볼까 합니다. 혹시 나에게 은혜를 입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그래, 나가 보아라."


시모에게 허락을 받은 룻은 밭으로 갔다. 밭에서 일하던 우두머리에게 허락을 받은 룻은 열심히 이삭을 주웠다. 점심시간에는 주운 이삭으로 빵을 구워 시모에게 먹이기 위해 집으로 갔다. 그 시간 외에는 열심히 밀 이삭을 주었다. 이삭을 줍고 있는데 나이 많은 밭의 주인이 자신을 불러서 말했다.

"여보시오, 새댁,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이삭을 주우려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마시오. 여기를 떠나지 말고, 우리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도록 하시오. 우리 일꾼들이 곡식을 거두는 밭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여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도록 하시오.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는 댁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소. 목이 마르거든 주저하지 말고 물단지에 가서, 젊은 남자 일꾼들이 길어다가 둔 물을 마시도록 하시오."(룻 2:8-9 표준새번역)

룻은 감사한 마음에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왜 이렇게 그가 잘해주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01.3.2.3.13.3.2. 은혜의 두 번째 사용


"저는 한낱 이방 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이렇게 까지 잘 보살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까?"

보아스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댁이 한 일은 주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01.3.2.3.13.3.3. 은혜의 세 번째 사용


룻이 말했다.

"내 주여, 제가 어르신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비록 제가 어르신의 하녀들 중 하나만도 못하지만, 참으로 어르신이 저를 위로하셨고, 참으로 어르신이 여종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였다.

"이리 가까이 와서, 네 빵 조각을 초에 찍어 먹어라."

룻은 추수하는 자들 곁에 앉았고, 보아스가 룻에게 볶은 곡식을 건네주니, 룻이 배불리 먹고 남겼다.

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 보아스가 자기의 종들에게 명령하였다.

"그 여자가 곡식 단 사이에서도 주울 수 있게 하고 책망하지 마라. 오히려 그 여자를 위하여 곡식 다발 중에서 일부러 뽑아 두어 그 여자가 줍게 하고 꾸짖지 마라."

룻이 그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 쯤 되었다. 룻이 주운 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 자기 시어머니에게 보여 주고, 자기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꺼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니, 시어머니가 룻에게 말하였다.

"네가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가 복 받기를 바란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자기가 누구 곁에서 일하였는지 알려주며 말하였다.

"오늘 저를 일할 수 있게 한 분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01.3.2.3.13.3.4. 은혜의 네 번째 사용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여호와께로부터 복 받기를 바란다."

또 나오미가 룻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운 사이이며, 우리의 유업을 물러 줄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모압 여자 룻이 말하였다.

"그분이 제게 '너는 내가 데리고 있는 종들이 추수를 마칠 때까지 따라다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네가 그의 여종들과 함께 다니고, 다른 밭에서 사람들이 너를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룻이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스의 여종들과 바싹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우며 자기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01.3.2.3.13.3.5.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다.


위에서 사용된 은혜를 입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헨(חֵ֖ן, H2580)이다. 은혜를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이 단어를 사용하여 기록된 히브리어 관용구는 "햄자 핸 비헤이네잌 (אֶמְצָא־חֵ֖ן בְּעֵינָ֑יו)"이다.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in whose eyes I find grace"

전체 문장은 아래와 같다.

And Ruth the Moabitess saith unto Naomi, "Let me go, I pray thee, into the field, and I gather among the ears of corn after him **in whose eyes I find grace**;" and she saith to her, "Go, my daughter."(룻기 2:2 YLT)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기 2:2 [KorRV])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는다는 표현은 누군가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는 일이다.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은 성경에 반복된다. 창 6:8절에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도 같은 히브리어 관용구가 사용되었다. 창 18:3절에 아브라함이 손님을 청할 때도 이 표현을 사용한다. 창 19:19에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중에도 자신의 피신처를 구하는데 이 표현을 사용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예들이 성경에 있다. 은혜는 항상 우리(하나님)의 눈에 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발견하는 자는 우리의 은혜를 구한다. 우리는 은혜 베풀기를 원한다. 어떤 죄인이든지 돌아온다면 우리는 은혜를 주려 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죄 중에 멸망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에 괴롭고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다면 낙심하고 좌절하여 죽음을 선택하지 말고 우리에게 나오라 우리는 항상 은혜의 눈으로 너를 보며 너에게 죄를 이기며 원수 사탄의 모든 유혹을 이길 능력을 준비하고 있다. 나 예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이 땅에 부어진 은혜는 유효하여 모든 죄를 이기며 원수의 모든 강력한 진을 파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나오면 우리는 은혜를 붓는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다. 이방 과부라는 사실은 룻에게 불리한 조건을 형성했다. 특히 남편의 형제 모두가 죽은 상황에서 형사취수(兄死娶嫂)를 기대할 수도 없다. 또한 재산도 잃어버린 가난한 과부라면 더하다. 거기에다, 모셔야 할 시모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여인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경우 대부분 이 여인을 아내로 취하려면 그 가문의 기업에 대한 대가를 최우선 상속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누가 그녀를 선택할 것인가?

그런데 보아스는 그 여인에게 은혜를 베푼다. 처음에는 단지 시모와 우리(하나님)를 믿음으로 선택하고 온 이 이방 여인의 선함을 인해 은혜를 베풀었다. 그런데 그 은혜가 가볍지 않다. 점심을 챙겨주고 일군들이 떠온 물을 마시게 했다. 또 그녀가 더 많은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일부러 더 많은 이삭을 흘리라고 일군들에게 시켰다. 너희가 롯의 입장이 되면 어떻게 느껴지겠는가? 배고팠던 자가 있다면 연고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식사 자리에 초대하여 참여시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 지를 알고 있다. 또한 이유 없이 자신을 돕고 양식을 걱정하여 챙겨준다면 그것이 얼마나 감격할 일인지 알게 된다. 그것도 자신들이 천시하는 이방 여인에게 그러한 은혜를 베푼다면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푼 것은 그 배경이 있다. 보아스의 어미는 라합이다. 여호수아 시대의 정복에서 여리고에 온 정탐군을 만나 그들의 생명을 구한 여인이었다. 그 여인이 나 예수의 족보에 등장하는 유다의 후손 살몬과 결혼했다. 살몬은 라합이 살려준 정탐군 중 하나였다. 라합과 그 가족도 이방인이었는데 자신의 족속들이 살육을 당하는 현장에서 은혜를 입어 살아났다. 그런데 생각하여 보라. 모든 이방 족속을 살해하고 그 성을 멸하였는데 이스라엘인들이 그 이방인 중 살아남은 여인들을 어떻게 대했겠는가? 정상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보아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씌워진 운명의 굴레를 어려서부터 보고 살았다. 그래서 같은 처지에 놓인 착한 롯을 보자, 어머니 라합을 떠올렸다. 그 어미를 보살피듯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고 자애를 베풀려 한다면 그 근원에는 항상 자신과의 동질감이 존재한다. 가엽고 연약한 자신의 아픔이 있다. 그러한 자만이 긍휼히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상처 입어본 자만이 상처 입은 자의 마음을 안다. 굶어본 자만이 굶는 자의 심정을 안다.

우리(하나님)의 신경은 너희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전지자다. 전지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단순히 추측하여 아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경험하는 것도 보아 추측하여 아는 정도의 앎이 아니라 너희 스스로도 모르는 숨겨진 내면의 무의식조차 모두 아는 완전한 앎이다. 심지어 너희가 느끼는 감각도 완전히 안다. 그러니 우리도 너희가 고통을 느낄 때에 모든 것을 동일하게 느낀다. 안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그러니 인류가 심판에 떨어지는 것을 우리가 기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상대의 심정을 모르는 싸페나 쏘페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동일하게 알고 느끼는 공감자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알고 후히 베푸는 우리의 은혜에 나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우리는 너희에게 무엇을 구하여야 필요가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뾰족 지붕집과 같이 너희 헌금이 필요하겠는가? 너희 머릿수가 우리에게 과연 필요하겠는가?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참교회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것을 구하지 않아도 그리고 그것이 없어도 모든 것을 걸고 우리를 따른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너희가 죄와 원수와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기를 원한다. 고통에서 행복으로 옮겨지기를 원한다. 고아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를 원한다. 세상에는 너희를 사랑해 줄 완전한 사랑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너희의 사랑이 되기를 원한다. 영원히 변치 않으며 영원히 떠나지 않는 완전한 사랑이 되기를 원하다. 원수에게서 영원히 지키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너희는 사기군들의 속임수와 사탕발림은 사랑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인간의 상태가 그러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죄인의 사랑, 독사 새끼의 사랑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완전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탐심과 섞이면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상대를 이용한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상대가 가진 모든 것을 용납하고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요구와 자신의 필요를 상대에게 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 자체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상대가 가진 형용이나, 상대의 제물과, 권력과, 명예와 조건이 사랑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탐심이다. 수많은 결혼 정보회사를 찾는 자들이 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한 사랑을 하는 자들에게는 사랑을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하기에 우리(하나님)가 사랑을 말하여도 믿을 수 없다. 물론 세상의 많은 뾰족 지붕집들에 속한 자들이 너희를 속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다. 저들은 그리스도교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 속은 사탄의 회다. 1 세기의 유대교가 그러했듯, 그리고 1세기를 넘기기도 전에 벌써 화석화된 거짓신앙들이 그러했듯 저들은 나 예수와 참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이다. 너희가 세상에 있는 것은 양이 늑대의 무리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큰 자)을 불러 바울(작은 자)로 만들어 내 양들을 늑대들로부터 지키게 했다. 그는 늑대였으나 전향하여 양치기 개가 되었고 자신과도 같은 수많은 악인들을 사랑했다. 지금도 세상에는 바울과 같이 회개한 양치기들이 있다. 나는 또한 너희도 돌아와 양치기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긍휼과 은혜를 타인에게 베푸는 사랑이 되기를 원한다. 이 멸망받을 세상에서 사랑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영원한 사랑의 새 세상에서 변치 않는 사랑이 되기를 원한다. 새 존재가 되어 새 세상에 속한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려면 먼저 우리(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고,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발견할 것이며,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고, 찾는 이는 발견하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자기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자가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더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안다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들을(성령님, 눅11:13)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마 7:7-11 바른)


01.3.2.3.13.4. 평강(안식=쉼)


룻기 3장은 안식으로 시작하여 안식으로 끝난다. 이러한 구조를 양괄 구조라 한다. 마치 앞 뒤로 괄호가 있는 구조와 같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당연히 구조의 핵심은 처음과 마지막에 반복되는 구절에 있다. 룻기 3장의 핵심은 다음에 언급하는 첫 구절과 마지막 두 구절에 있다.

3:1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
.
.
3: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안식)** 아니하리라

나오미는 룻이 단지 일시적인 은혜를 입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원했다. 좋은 기업을 무를 자를 찾아 그에게 보살핌을 받기 원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상속자인 남자들이 모두 죽은 가문의 며느리를 아내로 맞아 그 기업을 관리하고 자식들을 낳아 다시 그 가문의 대를 이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남기는 것은 없다. 단지 형제의 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유익이 없고 오직 일할 것만 배가 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그 기업이 이미 황폐하여져 소득이 나지 않는 다면 그 모든 손해도 자신이 떠안아야 한다. 그리고 소득이 늘어 남는 것이 있어도 자신의 것이 되지 않으니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그런데 오늘 룻은 낮에 은혜를 베푼 보아스에게 남에도 은혜를 구하기 위해 나아갔다. 그의 그늘을 의지하여 평생을 기대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어 보자.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네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내가 네게 안식할 곳을 구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있었던 그 여종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마침 그가 오늘 밤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타작할 것이다. 너는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른 다음, 겉옷을 입고서 타작마당으로 내려가거라. 그러나 그가 먹고 마시기를 다할 때까지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고, 그가 누울 때 너는 그의 눕는 곳을 알아 두었다가, 너도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추고 누워라. 그러면 네 할 일을 그가 알려 줄 것이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대로 제가 다 하겠습니다."

그 여자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자기 시어머니가 지시한 대로 다 하였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니 마음이 즐거워서, 곡식더미 끝에 눕자, 룻도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추고 누웠다. 한밤중에 그 사람이 깜짝 놀라 몸을 돌이켜 보니 한 여자가 자기 발치에 누워 있었다.

그가 물었다.

"네가 누구냐?"

룻이 대답하였다.

"저는 어르신의 여종 룻입니다. 어르신의 옷자락으로 이 여종을 덮어 주십시오. 이는 어르신께서 저희 유업을 물러 줄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였다.

"내 딸아, 네가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 네가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간에 젊은 자들을 따르지 않았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크구나.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말한 것을 모두 해 주겠으니, 이는 네가 현숙한 여자라는 것을 성 안에 있는 모든 내 백성이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유업을 물러 줄 사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유업을 물러 줄 사람들 중에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오늘 밤에는 여기 머물러라. 아침에 만일 그가 네 유업을 물러 주려 한다면 좋으니, 그가 유업을 물러 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유업을 물러 주기를 기뻐하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내가 유업을 물러 줄 것이니, 너는 아침까지 누워 있어라."

룻이 아침까지 그의 발치에 누워 있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전에 일어났으니, 이는 그 여자가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아스가 말하였기 때문이다.

보아스가 또 말하였다.

"네가 걸치고 있는 겉옷을 가져와 펴서 잡아라."

룻이 그것을 펴서 잡았고, 그가 보리를 여섯 번 되어서 그 여자에게 이워 주고 성으로 들어갔다.

룻이 자기 시어머니에게 오자, 시어머니가 말하였다.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한 모든 것을 시어머니에게 알려주고,

또 말하였다.

"그분이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제게 주며 '네 시어머니에게 빈손으로 가지 마라.'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말하였다.

"내 딸아, 이 일이 어떻게 될지 알게 될 때까지 앉아 있어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쉬지 않을 것이다."



나오미는 룻에게 안식을 얻으라 했고 그 길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길이 되는 보아스는 그 일을 끝낼 때까지는 안식하지(쉬지) 않을 것이라 했다. 지금 장별로 이어지는 단어들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장은 이스라엘로의 돌이킴이다. 2장은 은혜다. 3장은 안식이다. 그리고 이어질 4장은 기업이다. 4장까지의 이야기를 읽은 후 나(예수님)는 너희에게 룻기의 메시지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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