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3. 열왕의 어미 룻의 연대기 1

by 에스겔

01.3.2.3.13.1. 열왕의 어미와 열국의 어미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기 17:16 개역)

위 구절은 다음 성경의 장의 일부다.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이었고 그 아들 이스마엘이 그 양피를 벤 때는 십삼 세이었더라 당일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생장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창세기 17:1-27 개역)


열국의 어미와 열왕의 어미는 각각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창 17:16절에서 우리(하나님)가 약속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아브라함을 통해 사라에게 아들을 준다.

둘째, 우리가 사라에게 복을 주어 사라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겠다.

셋째, 사라에게서 민족의 열왕이 나겠다.

첫째는 아들이며 둘째는 열국(민족들)이고 셋째는 민족의 열왕이다.

첫째, 아들은 히브리어 벤(בֵּן)이다. 아들 또는 손자, 또는 자손을 뜻한다. 이 단어는 단수로 한 사람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뒤에 언급되는 대로 이 아들은 이삭이다. 이 이삭의 어미도 사라다.

둘째, 열국은 히브리어 노임(גֹויִ֔ם)이다. 국민이나 국가를 뜻한다. 본문에 사용된 단어는 노임의 복수로 국민들이나 국가들을 뜻한다. 열국이라 번역한 개역 성경은 국가들을 뜻하는 번역이다. 국민은 민족이고 그 민족 또는 국민이 이룬 나라가 국가다. 그래서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다 사용된다. 이 열국의 어미가 되는 자도 사라다.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을 통해 나온 자손들이 민족을 이룬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지 한 백성만을 말하지 않는다. 백성들을 말하며, 나라들을 말한다. 이는 나 예수를 통하여 열방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은 열방의 민족들이 되었다.

셋째, 민족의 열왕은 히브리어로 민족들의 왕들, 말러키 아밈(מַלְכֵ֥י עַמִּ֖ים)이다. 민족들의 왕들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민족들, 각자의 왕들을 뜻한다. 민족은 사라를 통해 올 민족인 이스라엘을 말한다. 또한 후에 나 예수를 통하여 돌아올 이방민족들을 뜻한다. 그런데 그 민족들의 왕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들과 왕들은 세상의 왕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나라에서의 왕들이다. 즉 하늘나라에서의 왕들이다. 저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다. 구약 이스라엘의 왕들은 예표이며, 구약 이스라엘이 사라지면서 그 예표의 왕들도 사라졌다. 신약에서 베드로는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말한 자들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에 흩어진 나그네들이다. 저들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며 현대 터키 땅에 속한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의 본토인이 아니며 이방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저들을 '택하신 족속'이라 표현하고 있다. 구약에서 택한 족속은 이스라엘이라 불렸다. 다른 이방인들이 개종하여 돌아와도 저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택한 족속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신약에서 베드로는 이방인들이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 하고 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선택된 민족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자신들은 선민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이제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들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민족이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제 자신들, 이스라엘이 아닌 자들도 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인종 우월주의로 신앙을 대체했으며 자신들이 지상에서 축복받은 유일한 민족이며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사상을 가졌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우리(여호와)를 믿는 신앙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들을 괴롭혔던 다른 민족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졌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 왕국의 실체다. 저들이 원한 것은 열방의 구원이 아니다. 단지 열방이 자신들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복종하기를 원한 것이다. 저들이 바란 것은 세상의 악인들의 소욕과 동일한 것이다. 악한 구더기들의 똥 독을 구하는 몸부림이다. 그러므로 저들의 배와 저들의 겉 모든 곳에는 똥이 가득하다. 악으로 가득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위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그것이 정복의 본질이다. 유목민의 약탈과 제국주의의 수탈과 같은 정복욕으로 이스라엘은 가득 찼다. 저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인하여 받은 징벌과 그 징벌을 행한 자들에 대한 원한을 품고 원수들에게 복수를 꿈꾸었다. 그 복수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 메시야였다. 메시야가 와서 자신들의 원수를 갚아주고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정복을 하여 자신들에게 세계를 지배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의 실체였으며, 그들이 메시야를 대항한 근원적 욕구였다. 구원자를 기다렸으나, 진정한 구원자가 아닌 자신들의 탐욕을 실현해 줄 우상을 기다렸다. 저들이 기다린 것은 나 예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죽였다. 심지어 자신들의 유대 인종우월주의로 나 예수를 판단해 갈릴리의 개 잡종으로 정죄하며 나의 진리를 듣지 않았다. 저들이 고대한 메시야 왕국은 자신들에게는 선이었으나 다른 민족들에게는 약탈과 수탈의 제국주의였다. 저들은 히틀러와 다를 바 없는 사상을 가졌으며 혈통적 우수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저들은 나를 죽일 때에 자신들이 한 말과 같이 그 모든 정죄를 받았다. 나 예수가 갈릴리 출신의 혼혈일 가능성이 있다 하여 배쳑하였던 저들이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했다.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를 관할하던 분봉왕 헤롯이 함께 다스리던 영지였다. 그 사마리아 인들이 앗수르에 잡혀가 혼혈되었으므로 저들을 개와 같이 취급하였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가 포함된 사마리아 속주의 혈통들이 이러한 형편이었는데 변방의 갈릴리 혈통들은 얼마나 많이 혼잡하여져 혼혈이 되었겠는가? 그래서 남왕국 유다의 유대인들은 저들을 개취급을 했다. 그곳에서 자란 나 예수와 나의 제자들 대부분을 개 잡종으로 취급했다. 이로 인해 나를 죽인 저들은 1세기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한 이후에 세계 각처로 흩어져 방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저들은 자신들이 나 예수를 죽인 죄인이라는 대가를 치루었다. 나를 죽였다고 하여 저들은 죄인 취급을 당했다. 여자들은 조선의 백정들의 아내와 딸들이 당하는 일을 당하였다. 지나는 남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면 유대인 여자들을 겁탈하였다. 그래서 그 유대인 여자가 낳은 아이는 아비가 누구인지 몰랐다. 역사학자들의 기록에도 나와 있지만 유대인들이 모계 혈통으로 이어진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편이 유대인이고 아내가 이방인인 경우 강간을 당하여 아이를 놓으면 남편의 아이인지, 이방 강간범의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강간범의 아이라면 이방인 아내가 낳은 아이는 우대인의 피를 단 한 방울도 가지지 않은 이방인이다. 그래서 유대인 아내가 낳은 아이들 만을 유대인으로 인정했다. 일단 엄마가 유대인이면 강간범의 자식을 낳았더라도 반은 유대인 엄마의 피를 물려받게 된다. 그 일을 2000년 동안 당한 유대인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다. 그들의 아비는 이방인 강간범이며 저들의 혈통은 강간범의 혈통이다. 결코 저들은 이스라엘인이 아니며 저들은 강간범의 개 같은 새끼들이다. 저들은 나 예수를 죽일 때에도 이미 나의 백성이 아니었다. 저들은 이미 악인들이었으며 자신들의 탐욕의 우상들과 간음한 불륜의 추잡한 무리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인종우월주의는 철저히 무너졌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강간범들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를 모르고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고 자신들이 빼앗은 땅의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을 인종청소하고 있다. 저들은 과연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아니면 강간범의 자손인가? 저들이 행위가 저들의 실체를 증명한다.

베드로와 신약의 성도들은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원래 우리가 의도했던 복음을 만민족에게 전하는 일을 위해 헌신했다. 진정한 백성과 나라와 왕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다. 거듭난 자들은 사랑으로 돌보며 열방을 섬긴다. 저들은 열방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헌신하며 복음을 전하여 저들을 구원한다. 또한 저들에게 속한 영역에서 사랑이 가득하게 한다. 우리의 명령을 따라 서로 사랑한다. 그곳에 바로 우리의 통치인 공의와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저들은 통치자가 되며, 왕이 된다. 진정한 통치자, 왕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나 예수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래야 진정한 하늘나라의 왕이다. 하늘나라의 다스림은 보살핌과 보호다. 천국의 왕은 진정으로 남을 섬기는 자다. 그것이 원래 왕이다. 세상의 왕들과 같이 착취와 억압을 일삼는 자들은 왕이 아니다. 저들은 도적들이다.

사라에게는 약속이 주어졌다. 결국 천국의 회복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진정 거듭난 자들이 아들들로 거듭나 사랑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이 된다. 저들은 악한 이방의 왕들과는 다르게 자기 백성을 섬기며 그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왕들이 있는 곳은 천국으로 변화한다. 복음의 약속은 이러한 천국이 회복되는 것이다. 결코 유대 인종우월주의와 그 확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어리석은 꿈이 아니다. 저들의 모습은 히틀러와 같고 저 이슬람의 어리석음과도 같다. 천국과 사탄의 회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나 예수는 이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KorRV])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복음 8:44 [KorRV])

세상의 모든 자들은 착취를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는 독사의 새끼들이다.

이러한 세상에 천국을 가져오고 사랑의 나라를 가져오려는 것이 바로 사라에게 준 약속들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역사에 우리의 경륜을 이루어 갔다.


01.3.2.3.13.2. 사라의 계승자: 이방인 룻


룻기의 시작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사들의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 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 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룻기 1:1-7 [KorRV])

룻기는 사사들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사기를 끝으로 사사사대의 기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사들의 시대에 있었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사기의 끝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KorRV])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 이를 다루었는데 결국 이스라엘의 참 왕인 우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도 없었다. 우리의 뜻을 전하고 그 뜻을 수행할 사사조차 없었다. 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악함은 참담했다. 집단강간과 집단살인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스라엘은 이제 나의 백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악인들이요, 살인자들이요, 강간범들이었다. 사사들마저 타락하여 마지막 사사 삼손은 온갖 이방 음녀들과 음행을 저지르고 결국 실패하여 죽었다. 적들에게 사로잡혀갔으나 그의 마지막 소원들 들어주어 그들과 함께 죽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거룩해야 할 사사가 타락하고 결국 나의 기름부음을 잃어버리고 적들에게 눈알이 뽑히고 그들에게 조롱을 당하게 되었다. 타락한 이스라엘은 나의 보호를 떠났고 나의 능력을 상실하여 적들에게 노리개 감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을 돌이켜 돌볼 자를 길렀다. 바로 다윗이다. 우리는 룻기의 역사를 통하여 다윗의 길을 준비했다. 룻기는 다윗의 조상들이 다윗의 길을 준비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이후에 사무엘이 나오는데 사무엘은 레위지파의 제사장 가문에서 나온 제사장이었다. 백성들이 그를 통해 나를 따랐더라면 왕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미 이스라엘의 참 왕인 우리(하나님)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백성을 위해 목숨을 버려 십자가를 지는 사랑의 왕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적인 우상들을 섬겼다. 저들은 악마의 조악한 화신들로 그 본질은 속이는 자요, 그 목적은 영혼의 약탈이었다. 저들에게 속하게 되니 저들은 세상 속의 약탈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원수의 세상에서는 원수의 룰이 적용된다. 그래서 세상은 약탈과 착취와 폭력과 살인의 장이다. 그 현장에서 어리석은 내 백성들은 또 고통에 부르짖었다. 그때마다, 구원하였는데 이제는 그 구원자로 세울 사사마저 없어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우리(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란 사무엘을 길러 리더로 세웠다. 그는 우리의 충직한 종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은 우리(하나님)와 사무엘을 버렸다. 그리고 왕을 요구했는데 그 왕도 실패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의 아들인 다윗을 광야에서 모든 사람들과 격리하여 길렀다. 사무엘도 구별하여 길렀지만 성전에도 사람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더 훈련되고 연단된 사람을 기르기 위해 들에서 혼자 양을 치는 다윗을 길렀다. 그 다윗의 선조에 관한 이야기가 룻기다. 이렇게 준비된 가운데 사무엘의 시대를 거쳐 다윗이 세워진다. 이제 다윗에 의해 세워지는 이스라엘 왕국의 서막이 시작된다.

사사들의 시대 베들레헴 에브라다에 살았던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로 룻기는 시작된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은 기근을 피하여 모압 지방으로 갔다. 그곳에서 엘리멜렉은 죽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말론과 기룐이었다. 이방 모압 지방에서 아들들은 모압 여인들과 결혼했다. 결국 두 아들도 죽고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모두 과부가 되었다. 살 길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며느리 중 하나인 룻은 시모인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룻은 나오미를 따라 우리(하나님)를 섬기기로 결정했다. 자신에게 다른 남편이 주어질 수도 없었다. 이스라엘에서도 자신과 시어머니가 어떻게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 그곳으로 가야 했다. 인종적 우월주의인 선민 사상을 가진 이스라엘에서 자신과 같은 이방인 과부가 과연 나이든 시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어떠한 취급을 받을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무언가를 보았다. 룻은 이스라엘로 왔다. 우리(하나님)와 자신의 시모를 따르기로 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이끌림이 있었다. 자신의 민족에 남아 다른 남편을 만나거나 자신의 친정에서 지내는 것이 더 안전함을 알았지만 그래도 아무 보장도 없는 이 길에 올랐다. 이 여인이 이렇게 선택한 선택에는 엄청난 축복이 숨겨져 있었는데 바로 베들레헴에 거주하던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다윗의 고조할머니가 된 것이다. 이는 사라의 축복이 그녀에게 계승된 것이다. 바로 왕들을 후손으로 둔 열왕들의 어미가 된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이나 사라도 이방인이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파는 자였다. 그런 자의 아들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래서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아브라함)을 얻었다. 사라도 그렇게 열국의 어미, 열왕의 어미라는 이름(사라)을 얻었다. 그 축복이 룻에게 계승되었다. 그래서 이방 과부였던 여인의 혈통을 통해 다윗이라는 이스라엘을 반석에 올린 왕이 태어났다.

이방인이라도 우리를 사랑하는 자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여 우리를 그에게 나타낸다. 그에게 우리의 계획을 보이고 그를 통해 우리의 계획을 성취한다. 우리는 그가 가난한 거지 과부라도 그를 사랑한다. 들에서 곡식의 낫알을 주워 끼니를 해결하고 그것을 다 먹고 나면 굶어야 하지만 남편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고 그 시모를 사랑한 룻은 우리의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베들레헴 최고의 신랑(보아스)을 주었다. 그녀의 모든 과거를 덮어 새롭게 하고 언약의 백성으로 삼았으며 그녀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로 인해 그녀의 손자인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제 누가 룻을 이방의 가난한 과부라고 무시할 것인가? 그녀의 이름은 나의 성경에 기록되어 그녀의 믿음은 영원히 전해진다.

누군가의 믿음은 그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 사람을 이끌어 믿음의 영웅으로 만든다.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다윗과 같은, 바울과 같은 영웅이 되기를 원한다. 이 땅을 우리의 뜻대로 다스릴 통치자가 되기 원한다.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한다. 오늘 우리의 부름과 만물의 부름을 원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를 만나라 그리고 우리를 통해 거듭나 새 피조물이 돼라. 그러면 너는 열방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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