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3부(삿 17-21)에는 '왕이 없으므로'라는 말이 반복된다. 이 말은 후대에 사무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세워질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의 화두였다. 그런데 여기서 왕이 없다는 말이 과연 왕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사사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진정한 왕인 우리(하나님)가 없다는 말인가? 성경 번역자들이 왕으로 번역한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음행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이 말의 참 뜻을 알아야 사사기의 후반부에 동심원 구조를 가지고 전하는 우리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참 남편이며 참 왕인 우리를 버리고 우상들을 쫓아 음란히 자기 길로 가 자기 옳은 대로 행하였다.
먼저 사사기 후반부의 동심원 구조를 살펴보자. 동심원 구조는 중심이 같은 크기가 다른 원들이 여럿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사진(무료 이미지): pim-de-boer-WHBWT21ZLJw-unsplash.jpg(Unsplash[^1]의Pim de Boer[^2])
동일한 중심을 두고 크기가 다른 원들이 배열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문학에도 이러한 구조들이 사용되는데 대부분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사용하여 글을 쓰기는 어렵다. 시문에서는 가끔 이러한 배열이 보이지만 긴 글의 일반적인 문장들에서는 작가들이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쓴 것으로 이러한 구조로 된 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장치들을 둔 것은 인간들이 성경을 연구하면서 글의 구조를 통해서도 우리의 뜻을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동심원 구조가 있을 수 있다.
D
C
B
A
B
C
D
글의 구조가 위와 같다면 그 핵심은 어디에 있겠는가? 동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A에 핵심이 있다.
다음의 구조에는 핵심이 있는가, 살펴보라.
A
B
C
A
A
c
b
A
이 구조의 핵심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A에 있다. 사사기 3부가 이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 A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N-ms]]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삿 17:6)
유다 족속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 B 레위 사람으로
그곳에 머물렀다(삿 17:7)
그 사람이 머무를 곳을 찾아다니다가 그 성읍
### C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삿 17:8)
#### a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N-ms]] 없었고
단 지파는 거주할 유업의 땅을 찾고 있었으니, 이는 그들이 그때까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유업의
땅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삿 18:1) 삿 18장- 단 우상 제사장
#### a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Conj-w+N-ms]] 없었던 그때에,
### c 에브라임 산지 외진 곳에 머물러 사는 어느
## b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한 여자를 첩으로 맞았는데(삿 19:1)
사사기 19:1 YLT
1And it cometh to pass, in those days, when there is no king in Israel, that there is a
man a *Levite,* * a sojourner in the sides of the hill-country of *Ephraim,* * and he
taketh to him a wife, a concubine, out of *Beth-Lehem-Judah;
: 그가 그 노인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외진 곳으로 가는 길입니
다. 제가 그곳 사람으로 유다 베들레헴에 들렀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길인데, 저를 집으
로 데려가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삿 19:18)
# A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N-ms]]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삿 21:25)
위에 예로 든 구조인 ABCAAcbA와 차이점은 가운데에 있는 AA가 aa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A는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N-ms]]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삿 17:6)
와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N-ms]]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삿 21:25)
a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N-ms]] 없었고(삿 18:1)
와 이스라엘에 왕이[[H4428 king Conj-w+N-ms]] 없었던 그때에(삿 19:1)
'그때에(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문장은 공통으로 있지만 a에는 없는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가 A에는 추가되어 있다. 이 차이로 A와 a를 구분하였다. A...aa...A의 구조에서 A와 a의 공통으로 있는 '그 시대에는(그때에) 왕이 없었으므로'가 당연히 중심 주제 즉 글의 핵심이다.
그런데 '왕이 없었으므로'는 문장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A에 있는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가 첨부되어야 문장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사사기 3부(삿 17-21)의 주제는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가 된다.
그 시대 또는 그 때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욤(יוֹם, H3117)이다. '그때에'와 '그 시대에'는 동일한 원어의 다른 번역이다. 욤은 하루를 뜻하기도 하고 한 달이나 1년을 뜻하기도 한다. 일정한 기간을 가진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한국어의 때와 비슷한 뜻을 가진다. '그때에 내가'라고 말할 때 '그때'는 한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날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같은 문장이다.
삿 17:6 바야민(בַּיָּמִ֣ים) 즉 그날들에
삿 18:1 바야민(בַּיָּמִ֣ים) 즉 그날들에
삿 19:1 바야민(בַּיָּמִ֣ים) 즉 그날들에
삿 21:25 바야민(בַּיָּמִ֣ים) 즉 그날들에
원어는 네 구절 모두에서 동일한 히브리어 바야민(בַּיָּמִ֣ים)이 사용되었다. 야민의 원형인 욤은 시간, 날, 날들, 월, 월들, 년, 년들을 뜻하는 단어이며 시간의 일정 단위를 나타낼 수 있는 우리의 때와 같은 단어다. 본문들에는 그 복수형인 '바야민'이 사용되었고 거기에 전치사와 정관사가 결합 되었다. 그래서 동일한 어순의 영어로 번역하면 'In the days'댜 번역하면 '그날들에'가 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같은 문장이 네 번 반복된다. 동심원들의 가장 바깥 원의 원주에 있어 시작과 끝, 그리고 동심원들의 가장 지름이 짧은 중심에 근접한 원의 원주에 있어 중앙의 두 a가 되어 aa로 대칭을 이룬다. 먼저 네 번 반복되고 구조의 처음과 끝 그리고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 문장의 뜻을 살펴 사사기 마지막의 핵심적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이글 '01.3.2.3.12.4. 왕이 없으므로' 도입부에 제시한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에서 왕의 원어는 무엇이고 과연 사사기의 이 문맥에서 왕으로 번역되는 것이 합당한가 살펴보아야 한다.
왕의 원어는 멜렠(מֶלֶךְ)으로 왕 또는 통치자를 뜻한다. 이 단어는 '통치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말랔(מָלַךְ)에서 파생되었다.
왕정정치를 하는 나라의 통치자는 왕이다. 사사가 통치하는 나라의 통치자는 사사다.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의 통치자는 대통령이라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국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민주주의란 민(民)이 주인인 나라다. 백성 즉 국민이 주인이다. 그래서 백성이 나라의 수장(대통령, 또는 의원내각제의 총리, 수상)도 스스로 선거를 통해 뽑는다. 또한 그 수장의 임기도 임시여서 언제든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모든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만약 신정정치를 하는 나라라면 그 나라의 통치자는 신(god)이다. 물론 그 대리자인 인간 샤먼이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신이 최종 의사결정자인 통치자다. 너희가 보기에 이스라엘은 어떤 통치제도를 가졌었는가?
이스라엘이 신정정치를 하였으므로 잠정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우리(하나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왕의 의미가 통치 제도에 따라 변하기에 사무엘하, 열왕기, 역대기에 표시된 통치자는 왕이다. 또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모세였다. 그리고 그 이후 여호수아 세대의 통치자는 여호수아였다. 또한 사사기의 통치자는 사사들이었다. 물론 왕정에서나 광야 세대와 여호수아 세대, 그리고 사사들의 세대에서도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은 우리였다.
그렇다면 사사기 3부(17:1-21:25)에서 말하는 왕은 누구인가?
사사기 1부(1: 1-3:4)는 여호수아 사후의 기록이다. 이 시기에는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우리(하나님)를 기억하는 장로들이 살아있었다. 이들을 통해 백성들은 남아 있는 미정복지를 점령했다. 물론 믿음이 부족하여 강한 적들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을 그 땅에 남겨두었다. 이 시기에는 왕과 같은 존재가 이스라엘에 없었다. 그러나 저들은 우리(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여 땅들을 점령했다. 이 시기의 실질적인 통치자는 우리였다. 또한 우리를 대리하는 대제사장과 선지자가 있었고 지파별로 장로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사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리더는 없었다. 갈렙도 이 시기에 사사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성경에는 갈렙의 죽음에 대한 기록조차 없다. 그러나 유다 지파의 정복에서 갈렙이 점령한 헤브론의 이야기와 그의 조카 웃니엘이 점령한 기럇세벨이 등장함으로 갈렙이 이 시기에 헤브론을 점령했음을 알 수 있다. 헤브론과 드빌 점령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삿 1:10-15절이 포함된 유다의 점령 사건의 앞에 삿 1:1절에서 이 모든 사건이 여호수아의 사후에 일어난 일임을 명시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보다 갈렙이 더 오래 살았고 여호수아 사후에 헤브론을 점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갈렙은 이스라엘의 사사는 아니었다. 갈렙은 이방 그니스 족속의 혈통으로 유다 지파의 유력한 자 중 하나였을 뿐이다. 물론 그의 조카 웃니엘은 뒤에 사사가 된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에게 이스라엘이 식민지가 되었을 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하나님)가 세운 웃니엘을 백성의 재판관과 통치자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 시기(사사기 1부; 1: 1-3:4)에도 왕이 없었는데 성경에는 왜 왕이 없었다는 말이 등장하지 않을까? 이 궁금증을 가지고 2부(3:5-16:31)를 살펴보자.
사사기 2부(3:5-16:31)는 웃니엘을 시작으로 사사들의 구원이 계속된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준 땅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면 타락하여 이방인들의 신들을 섬기고 이방인들의 악행을 그대로 행하기 시작했다. 이방인들과 교류하고 혼인과 각종 언약의 관계에 놓이면서 이스라엘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을 섬겼다. 우리는 거룩함과 도덕을 원하지만 이방의 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심을 이루어주는 기도를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이는 귀신들이 자신들을 신으로 속여 따르도록 인간들에게 던지는 낚시 밥이었다. 그런데 내 백성 이스라엘은 귀신들이 던지는 미끼를 물고는 쾌락에 젖어들었다. 그러데 그들은 곧 자신들이 먹은 것이 정상적인 먹이가 아닌 미끼임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귀신들의 노예가 되었고 그 결과 자신들은 이방인들에게 노예와 같이 압제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괴로움으로 인해 부르짖으면 우리(하나님)는 사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그런데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또 타락했다. 이렇게 우리를 떠남과 타락과 징계와 회개와 구원 그리고 안식의 회복이 반복하여 일어났다. 이러한 반복적인 타락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이스라엘의 죄악은 더욱 가증스러워졌다. 12명의 사사가 나타났는데 이스라엘의 타락의 가중에 물들어 사사들도 타락해 갔다. 계속된 타락은 다섯 번째 사사였던 기드온을 시작으로 표면에 나타났다. 기드온은 전쟁 후 백성들에게 금 귀고리와 반달 모양의 펜던트 등 장신구를 받았고 그것으로 에봇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음란하게 그 에봇을 섬겼다. 우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 내었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내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주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를 요청하노니 곧 너희 각 사람이 자기의 탈취물 중에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스마엘 족속이므로 금귀고리를 가지고 있었더라.) 그들이 응답하되, 우리가 기꺼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서 각 사람이 자기의 탈취물 중에서 귀고리를 그 안에 던지니 그가 요청한 금귀고리의 무게가 금으로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장식과 목걸이와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주색 의복과 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이 그것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도시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거기로 가서 그것을 따라 음행의 길을 가므로 그 일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이와 같이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여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 시대에 사십 년 동안 그 지역이 평온하였더라. (사사기 8:22-28 [KorHKJV])"
그 후 기드온은 여러 아내를 두었고 그 여인들을 통해 70명의 아들들을 낳았다. 또한 세겜에는 아내들 외에도 첩을 두고 그 첩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아비멜렉이었다. 아비멜렉은 여룹바알이라 불리던 아버지 기드온이 죽자, 첩의 아들인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기드온의 본 부인들의 아들들 70명을 죽였다. 세겜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이런 악행을 저질렀다. 아비멜렉의 말을 근거로 유추하면 기드온은 백성들이 왕이 되어 달라고 할 때 표면적인 말로는 거절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왕으로 살았다. 그러니 아들 70을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아비멜렉의 다음 말을 들으면 기드온이 사실상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음을 알 수 있다.
"¶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자기 어머니의 형제들에게 이르러 그들과 자기 외조부 집의 온 가족과 대화하며 말하되, 청하노니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모든 아들 곧 칠십 명이 너희를 통치하는 것과 한 사람이 너희를 통치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너희에게 더 나으냐? 또 나는 너희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라.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에 관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이 마음을 기울이고 아비멜렉을 따랐더라.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였더라. 그들이 바알베릿의 집에서 은 칠십 개를 꺼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허영심 많고 천박한 자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오브라에 있던 자기 아버지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돌 위에서 죽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룹바알의 막내아들 요담은 숨었으므로 살아남으니라. 세겜의 모든 사람들과 밀로의 온 집이 함께 모인 뒤에 가서 세겜에 있던 기둥 평야 옆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그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고하매 그가 그리심 산의 꼭대기로 가서 서서 목소리를 높여 외쳐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세겜 사람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하여야 하나님께서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시리라. 한 번은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기들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려고 올리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를 통치하라, 하였으나 올리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나를 가지고 내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존귀하게 하거늘 내가 내 기름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올라서리오? 하니라.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를 통치하라, 하였으나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올라서리오? 하니라. 이에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를 통치하라, 하니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즙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올라서리오? 하니라.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를 통치하라, 하니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를 다스릴 왕으로 삼으려 하거든 와서 내 그림자를 신뢰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가시나무에서 불이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삼킬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진실하고 성실하게 행하였느냐? 또한 너희가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잘 대우하여 그의 손이 대접받을 만한 대로 그에게 행하였느냐? (내 아버지가 전에 자기 생명을 내걸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내었거늘 너희가 이 날 일어나 내 아버지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돌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라는 이유로 그를 세겜 사람들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느니라.) 그런즉 만일 너희가 이 날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진실하고 성실하게 대우하였으면 너희가 아비멜렉을 기뻐할 것이요, 그도 너희를 기뻐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삼킬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삼킬 것이니라, 하고 요담이 자기 형제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달려서 도망하고 브엘로 가서 거기 거하니라. (사사기 9:1-21 [KorHKJV])"
아비멜렉이 1절에서 말한 것을 들어보라.
"여룹바알의 모든 아들 곧 칠십 명이 너희를 통치하는 것과 한 사람이 너희를 통치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너희에게 더 나으냐?"
이 말은 기드온이 사사로 통치했었고 그의 아들들이 통치할 것이라는 말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희가 알 것은 사사의 직분은 가계의 혈통을 따라 계승되지 않는다. 다른 사사들 그 누구도 아들이 사사의 직을 계승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면 기드온의 서자, 아비멜렉이 한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앞 장인 사사기 8장에 그 답이 있다.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 내었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내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주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기드온은 표면적으로 왕이 되는 것을 거절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으로 행세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다음 왕이 되는 것을 꿈꾸고 적통인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대군이 아닌 후궁의 자식인 자신이 반역을 일으켰다. 이 모든 일이 있을 수 있었던 전제는 기드온이 실질적인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적통 대군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왕이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다. 반역을 일으킨 아비멜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세겜의 모든 사람들과 밀로의 온 집이 함께 모인 뒤에 가서 세겜에 있던 기둥 평야 옆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사사기 9:6 [KorHKJV])
사사기 9:1절에서 아비멜렉이 한 '아버지의 아들들 모두가 다스린다'는 말은 기드온의 집안이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통치한다'는 말이며 결국 기드온이 호칭으로는 왕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이라는 말이다. 통치자의 자리를 대대로 이어간다는 말은 그 자체가 왕이라는 말이다. 그 말이 부족에서는 부족장일 수 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열두 거대한 부족을 거느린 단위를 부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600만 명)는 세계의 강대국들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기드온과 자손들은 왕이라 할 수 있었다. 최소한 기드온은 왕으로 인정을 받았고 왕으로 살았다. 단지 호칭만 사사라는 형식을 취하였고 실질적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사실 다른 사사들도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기드온과의 차이는 왕과 같은 권위와 왕권의 혈통 계승에 있었다. 다른 사사들은 이방의 인간 왕들과는 달리 오직 우리가 세운 권위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진정한 왕은 우리(하나님)였다. 그런데 기드온은 실질적으로 왕의 위치에 올랐고 그 서자가 결국 이방의 왕들이나 벌이는 골육상잔의 악행을 저질렀다. 아비멜렉은 또 세겜에 있던 망대를 불태워 남녀 약 천 명을 죽였다. 아비멜렉의 악행은 결국 다른 성의 망대 위에 있던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가 깨어짐으로 끝이 났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는데 결국 그는 자신의 악행의 결과를 보았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기드온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기드온의 타락은 아들 아비멜렉에게서 더욱 가중되어 그 숨겨진 폐부가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기드온이 심은 것이 자라 그 아들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사사 기드온의 타락으로 이스라엘은 큰 곤경에 처하였다. 그 이후에 사사 돌라와 사사 야일이 있었다. 그 후 나타난 입다는 그 출신이 기생의 아들이었으며 양아치들과 어울렸던 자다. 그는 율법에 대해 무지했고 결국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저질렀다.
사사 입산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이 있었는데 아들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시키고 딸들은 이방 남자들에게 시집보냈다. 이 일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한 일이다. 우리가 이방인들과 혼인을 막고 그들의 풍습을 따라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의 악행을 따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 사사들조차 우리의 명령을 잊었다.
사사 삼손은 나실인이 지켜야 할 계명들을 잊고 사자의 사체에서 나온 꿀을 먹고 이방 여인 여럿을 사랑하여 그 여인들과 동침하고 결혼했으며 결국 그 여인 중 하나인 들릴라에게 속아 머리를 밀리고 눈알이 뽑힌 채 잡혀갔다. 우리가 마지막에 힘을 주어 블레셋인들에게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었지만 결국 그 자신도 그곳에서 죽었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이런 타락의 길을 가다가 부끄러운 죽임을 당했다. 그가 원수를 갚은 것과 능력을 행한 것은 우리(하나님)가 기회를 준 것이지만 그 자신은 사사로서의 직분을 망각하고 타락의 길을 가다가 이방인들의 손에 잡혀갔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제 백성뿐 아니라 사사도 타락하여 자기 길로 갔다. 그래서 삼손 이후에는 더 이상 사사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사사기 3부(삿 17-21)가 시작되었다. 이제 이스라엘의 타락이 극심하여 더 이상 사사조차 등장하지 않는 암흑기가 찾아왔다. 이 시기에는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위에 언급한 동심원 구조를 통하여 사사기 3부(삿 17-21)의 핵심이 이 문장에 있음을 보았다. 3부에는 더 이상 사사도 등장하지 않고 백성들은 자신들을 다스릴 사사도 선지자도 없으므로 자신들이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그래서 그 타락은 점점 심화되어 집단 살인과 집단 강간이 난무하는 지경이 되었다. 저들의 타락은 노아 홍수 이전의 심판받을 상태보다 더한 상태였고 저들은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사사기 1부(1: 1-3:4)에는 왕이나 사사가 없었는데 이 시기에는 왕이 없다는 언급이 없다. 사사기 2부(3:5-16:31)에는 사사는 있었으나 왕은 없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도 왕이 없다는 언급이 없다. 사사기 3부(삿 17-21)에는 왕이나 사사가 없었는데 왕이 없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동일한 저자인 사무엘에 의해 기록된 사사기의 세 시기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 차이를 두고 기록된 것일까? 동일한 사람이 전혀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사기 1부(1: 1-3:4)와 사사기 3부(삿 17-21)는 동일하게 사사나 왕이 없었는데 왜 굳이 사사기 3부(삿 17-21)에서만 왕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여기서 언급된 왕은 왕일 수도 있지만 사사일 수도 있고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일 수도 있으며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 진정한 이스라엘의 통치자인 우리(여호와 하나님)일 수도 있다. 특히 2부는 사사는 있었으나 왕은 없었다. 1부, 2부, 3부 모두 공통적으로 왕은 없었다. 그런데 왜 굳이 3부에서만 왕이 없다는 것을 네 번이나 강조하여 말하였을까? 이러한 추론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감동을 통해 사사기를 기록한 사무엘이 왕이 없다고 말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1부와 2부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사사기 3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1, 2부와는 구분되게 3부에만 특징적인 언급을 한 것이다. 사사기 1, 2부와 3부의 차이점은 1, 2부는 형태는 다르지만 통치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1부는 여호수아 사후지만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장로들이 살아서 이스라엘을 우리의 뜻대로 이끌었다. 또한 2부에는 더 이상 여호수아 시대의 우리(하나님)를 알던 자들은 없었지만 사사들이 있어 이스라엘을 우리의 뜻대로 이끌었다. 그러나 3부에는 더 이상 사사도 없었다. 왜냐하면 2부의 중 후반부터는 사사가 된 자들조차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사로 세울 자조차 없었다. 제사장들도 타락하여 눈이 멀었으며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은 타락하여 성전에 섬기는 레위 여인들을 겁간하고 성전에 드려지는 제물을 우리에게 드리기도 전에 빼돌려 자신의 배를 채웠다. 더 이상 그 어떤 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사로 세울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러한 시대였기에 마지막 사사 삼손은 부모가 수태할 수 없을 때에 우리가 찾아가 아이를 나실인으로 구별하여 기를 것을 명했다. 그런데 나실인으로 세운 사사 삼손은 나실인으로 살지 않고 타락하여 온갖 죄악을 저질렀다. 이러한 지경이니 더 이상 사사로 세울 자도 없었다. 또한 백성의 상태가 죄악이 가득하여 우리가 저들을 구원할 상태가 아니었다. 저들은 자신들을 압제하는 이방인들보다 더 악하여 심판을 향한 마지막 극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저들은 고집 센 나귀보다 더하여 저들을 길들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야생의 무법으로 저 CS 루이스의 소설 속 사자와 같이 사탄의 형상을 한 무법자들이 세상에 가득하였다.[^3] 그래서 3부의 왕 즉 통치자가 없다는 말은 1차적으로 사사가 없었다는 말이다. 사사가 있어 백성들을 구원하여 우리와 올바른 관계로 이끌던 그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또한 2차적 의미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인 우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우리를 버림으로 그곳에는 우리 없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우리가 저들을 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저들을 부패로 이끌어 죄악이 가득하게 한 것이 아니다. 오직 저들이 우리를 버려 자신의 길로 갔다. 우리가 없이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우리가 명하는 것이 생명의 길임에도 그것을 싫어하여 자기 마음대로 망나니처럼 죄악의 길로 갔다. 부패한 전과자들이 수많은 전과를 거듭하여 쌓고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것처럼 저들도 죄악의 길로 반복하여 나아가 더 흉악한 범죄자들로 진화해 갔다. 진화는 생물학 분야에 확률이 0%인 곳에 쓸 용어가 아니라 바로 인간 너희 자신들의 악의 점층과 가중에 써야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사기 3부(삿 17-21)에 왕이 없었다는 말은 우리(하나님)가 이스라엘에 없었다는 말이며 우리의 사역자가 이스라엘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를 더 확증하는 기록이 사무엘서에 있다. 사무엘이 등장하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말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돌아와 우리의 보호 아래 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는 진정한 왕이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무엘서에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사무엘서에 백성들이 타락하여 왕을 구하였을 때 왕이 없어 이스라엘이 자기 보기에 옳은 길로 행하였던 것이라면 우리가 기뻐하여 왕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무엘도 우리(하나님)도 모두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인 우리를 버리고 인간 왕을 구하는 것을 슬퍼했다. 그러니 사사기 3부에 백성들이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은 이스라엘에 인간 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진정한 왕인 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왕이 생겼을 때에도 이스라엘의 왕들은 타락하여 백성들을 우상숭배와 악으로 이끌었으며 우리를 온전히 따른 왕은 손에 꼽힌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통치자가 없었다는 말을 곡해하고 있는 자들은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사람을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하여야 한다. 구약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인간 지도자인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가 우리에게 나아왔다. 그러나 이제 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너희는 피 뿌림 받은 거룩한 백성이니 너희는 단번에 지성소의 휘장을 찢은 나 예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하나님)에게 담대히 나아올 것이다. 나는 사사기의 타락에도 나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나실인보다 더 구별된 자, 사무엘을 택하여 어릴 때부터 우리가 거하는 성전에서 우리가 직접 길러 선지자로 만들고 그를 통하여 백성을 다시 구원했다.
그러니 너희 누구든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고민하고 우리(하나님)에게 나오기를 주저한다면, 나 예수는 이제 말한다. 나의 피는 완전하며 나의 구원은 완전하니 너희가 뾰족지붕집에서 들은 상상 구원이 아닌 완전한 성경의 구원으로 나아와 죄의 사람이 죽고 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거룩함으로 나아오라. 나는 너희를 구원하는 자, 너희 죄로부터 너희를 구원하는 자, 예수다. 나는 여호수아이며 나는 고멜도 품는 호세아다. 그러니 너희는 나아와서 저 역사의 현장에서 참 구원을 얻고 부흥을 이끌었던 수많은 자들이 발견하였던 참으로 새 피조물로 변화되는 참 복음을 믿으라. 사람의 계명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우리(하나님)의 참 구원을 얻어 진정으로 거듭나라. 그러면 너희는 새 피조물이 되어 구약의 어떠한 자보다 더 거룩함으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너희는 참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할 때까지 기도하라. 나는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같이 임할 것이며 나는 약속의 날에 큰 승리를 너희에게 주어 이기고 이기고 이기게 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여 나의 피조물로 거듭나는 자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겠으며 사망이나 죽음도 그들의 길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의 날은 클 것이며 이스르엘의 날은 큰 평안의 날이 될 것이다.[^4] 너희는 골짜기의 뼈와 같을지라도 일어나 거대한 생기의 군대가 되어 열방을 점령할 것이다. 이제 말세지말의 부흥의 군대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구약의 모든 약속과 신약의 모든 약속은 너희를 위한 것이니 이제 너희여 일어나 행군하라. 너희 발로 밟는 모든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리고 마지막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세계를 너희에게 주어 영원히 통치하며 그곳에서 천국의 통치자로 너희를 세우리라. 너희는 만물 위의 교회요, 나 예수는 너희의 머리요. 나 예수의 위에는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계신다.(엡 1:21-23)
[^1]: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B%B2%BD%EC%97%90-%EC%9B%90%ED%98%95-%ED%8C%A8%ED%84%B4%EC%9D%98-%ED%81%B4%EB%A1%9C%EC%A6%88%EC%97%85-WHBWT21ZLJw?utm_content=creditCopyText&utm_medium=referral&utm_source=unsplash
[^2]: https://unsplash.com/ko/@puntertje?utm_content=creditCopyText&utm_medium=referral&utm_source=unsplash
[^3]: cs 루이스는 진정 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는 말년에 카톨릭으로 개종하였으며 그의 저서들에서는 적그리스도적인 면모들이 많이 발견된다. 저명한 설교가이며 저술가였던 마틴 로이드 존즈는 루이스를 만난 후 그가 자유주의자이며 예수 그리스도님을 통한 대속을 거부하는 자라고 평가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그가 예수님으로 묘사한 사자는 사실 예수님이 아니라 사탄이었다. 예수님은 죽기 까지 복종하신 길들여진 종이셨는데 루이스를 사자를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존재로 묘사하다.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상징들이 사탄의 세력을 빛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고도로 계산된 의도적인 배교다. 루이스는 사탄교의 숭배자로 의심되어져 왔고 실제적인 그의 저서들에는 그러한 루이스의 많은 적그리스도 세력에 속한 진술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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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호세아 1:4-5 [KorRV])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세아 1:11 [KorRV])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호세아 2:17-23 [KorR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