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3.2.3.15.1. 왕?
# 01.3.2.3.15.2. 사울과 다윗
# 01.3.2.3.15.3. 까닭을 모르는 다윗
## 01.3.2.3.15.3.1. 까닭 모름의 증거
### 01.3.2.3.15.3.1.1. 하프
### 01.3.2.3.15.3.1.2. 골리앗
### 01.3.2.3.15.3.1.3.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 01.3.2.3.15.3.1.4. 악신
### 01.3.2.3.15.3.1.5. 미갈
### 01.3.2.3.15.3.1.6. 요나단
### 01.3.2.3.15.3.1.7. 골리앗을 죽인 광인
### 01.3.2.3.15.3.1.8. 아둘람과 모압
### 01.3.2.3.15.3.1.9. 제사장 집단학살
### 01.3.2.3.15.3.1.10. 양치기(목자)
### 01.3.2.3.15.3.1.11. 요나단의 양위
### 01.3.2.3.15.3.1.12. 십과 사울 1
### 01.3.2.3.15.3.1.13. 죽은 개나 벼룩
### 01.3.2.3.15.3.1.14. 사무엘의 죽음
### 01.3.2.3.15.3.1.15. 나발
### 01.3.2.3.15.3.1.16. 집단 학살을 막아선 아비가일
### 01.3.2.3.15.3.1.17. 다윗 아비가일 만나다
### 01.3.2.3.15.3.1.18. 미갈 아비가일
### 01.3.2.3.15.3.1.19. 십과 사울 2
### 01.3.2.3.15.3.1.20. 창과 물병
### 01.3.2.3.15.3.1.21. 산의 메추라기 벼룩 한 마리
### 01.3.2.3.15.3.1.22. 다시 아기스 왕에게
### 01.3.2.3.15.3.1.23. 매국을 한 미래의 왕
### 01.3.2.3.15.3.1.24. 접신한 현재의 왕
### 01.3.2.3.15.3.1.25. 매국을 막아선 적장
다윗은 블레셋 군주 중 하나였던 아기스 왕을 따라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이미 자신은 고국에서 버림받은 자이기에 적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말을 역사상 수많은 매국노들이 사용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어서 일본 천황에게 충성 맹세의 혈서를 바쳤다. 어쩔 수 없어 천황을 위해 간도에서 731부대에 조선인 수천을 인체 실험용으로 잡아 바쳤다. 어쩔 수 없어 일본의 전쟁을 도왔다. 돈을 바치고 일본을 위해 총을 들었다. 어쩔 수 없어 같은 민족을 약탈하고 고문하고 거짓 누명을 씌웠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면장이고, 군수이며 면의 서기이니 시키는 대로 조선인들을 수탈하여 일본의 전쟁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것이 나의 직업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학교의 선생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민족말살 정책을 따라 학생들을 교육하였고 조선말을 사용하는 학생은 '일본의 신민이 될 자격이 없는 빠가야로'라고 교육의 매를 대고 훈계의 욕설을 하였다. 다윗도 매국노들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미래의 왕으로 매국노가 되어서는 안 되었기에 질투와 의심의 영을 블레셋 장수들에게 침투시켜 다윗을 매국노의 길에서 구원했다. 다음 성경을 보라.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다. 블레셋 군주들이 수백 혹은 수천 명씩 거느리고 나아갔으며,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아기스와 함께 뒤따라 나아갔다.
그러니 블레셋 장군들이 말하였다.
"이 히브리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아기스가 블레셋 장군들에게 말하였다.
"이 다윗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가 아니냐? 여러 날 여러 해 나와 함께 있었지만 그가 내게 도피해 온 날부터 오늘까지 아무 허물도 그에게서 찾지 못했다."
블레셋 장군들이 다윗에게 분노하여 아기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여 준 그의 거처로 돌아가게 하십시오. 그는 전쟁에 우리와 함께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가 무엇으로 자기 주인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춤추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구나.'라고 칭송했던 자가 이 다윗이 아닙니까?"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말하였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참으로 너는 올바른 사람이며, 네가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서 악을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네가 나와 함께 진영 가운데 출입하는 것이 내게는 좋으나 장군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가서 블레셋 장군들의 눈에 거슬리게 행동하지 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하였다.
"제가 무엇을 했으며 제가 왕 앞에서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왕께서 왕의 종에게서 무엇을 발견하셨기에 제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십니까?"
아기스가 대답하여 다윗에게 말했다.
"너는 내가 보기에 하나님의 천사처럼 선하다는 것을 내가 알지만 블레셋 장군들이 '그는 우리와 함께 싸우러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하니, 이제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종들과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 날이 밝으면 떠나라."
이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떠나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블레셋 땅으로 돌아갔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갔다. (삼상 29:1-11 바른)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자신은 개 잡종에 곤충 중에서도 가장 비굴한 벼룩일 뿐이라 생각하였다. 아비와 형들과 베들레헴 사람들이 멸시하며 했던 말들이 그의 뇌리에 새겨져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쫓겨 다니며 비참한 생활을 하였어도 이것은 아니었다. 다음 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일이 벌어졌을 때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 치려 했던 것을 보면 다윗의 매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가족들이 잡혀 갔다고 해서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잡혀간 이유가 자신들에게 매국의 명을 내린 다윗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윗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생사고락을 같이한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다윗에게 돌을 들 이유가 없었다.
다윗의 매국은 우리가 막아 섬으로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였다. 아무리 자포자기했어도 왕이 아니라 일반 백성이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죄였다. 이러한 내용을 역사서의 저자들이 차마 기록할 수 없었던 심정을 너희는 아는가? 그러나 차마 직접적으로는 매국을 말할 수는 없어도 사건의 기록을 자세히 남겨 후세인들이 경계를 삼을 수 있게 했다.
제 삼일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시글락에 이르렀을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게브와 시글락을 침략하여,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여자들과 그 성에 있던 자들을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로잡아 갔으며,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자기들의 길로 끌고 갔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그 성에 이르러보니, 성은 불타고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들이 사로잡혀 갔으므로, 다윗과 그와 함께한 병사들이 울 힘이 없을 때까지 소리 높여 울었다. 다윗의 두 아내인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혀 갔다. 모든 백성이 자신들의 아들과 딸로 인하여 마음이 고통스러워,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하였다. (삼상 30:1-6a)
다윗은 도착하여 상황을 보고 목 놓아 울며 회개했다. 가족들이 잡혀갔으면 응당 먼저 해야 할 일은 원수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을 보라. 역전의 용사들인 저들이다. 그 수많은 세월을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버텨낸 자들이었다. 골리앗을 때려잡은 다윗이다. 그런데 그 모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울 힘이 없을 때까지 소리 높여 울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저들 모두는 알았다. 자신들이 하려 한 일에 대한 징계가 자신들에게 내려졌음을 안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매국의 명령을 내린 다윗을 돌로 치려했다.
다윗이 힘이 다하도록 울었다. 그의 부하들도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 다윗이 우리(하나님)에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용서하고 그의 집을 회복하기로 하였다.
다윗이 큰 곤경에 빠졌으나 여호와 자기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인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말하였다.
"에봇을 내게로 가져 오너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 가져왔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었다.
"제가 이 무리들을 뒤쫓으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쫓아가거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정녕 도로 찾을 것이다."
다윗과 그와 함께한 부하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까지 이르러서는 뒤처진 자들을 그곳에 머물게 했으니, 곧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할 만큼 지친 이백 명은 그곳에 머물게 했고 다윗과 사백 명은 계속 추격하였다. 부하들이 들에서 한 이집트 사람을 만나 그를 다윗에게 데려와서 그에게 음식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그에게 무화과 한 덩이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므로 그가 먹고 제정신이 돌아왔으니, 그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고 물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젊은이가 말하였다.
"저는 이집트 사람으로서 아말렉 사람의 종입니다. 제가 병들자 삼 일 전에 제 주인이 저를 버렸습니다. 우리가 글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영토와 갈렙의 남방을 침략하고 시글락을 불살랐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그 무리들에게 데리고 내려갈 수 있겠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당신이 저를 죽이지도 않고 저를 제 주인의 손에 넘기지도 않겠다고 하나님으로 제게 맹세하시면 제가 당신을 그 무리들에게 모시고 내려가겠습니다."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갔는데, 보라, 그들은 블레셋 땅과 유다 땅에서 탈취한 그 엄청난 노략물을 가지고 온 땅에 흩어져 먹고 마시며 춤추고 있었다. 다윗이 동틀 때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그들을 죽였으니, 낙타를 타고 도망한 사백 명의 젊은 사람들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다. 다윗이 아말렉이 탈취했던 모든 것을 도로 빼앗았으며, 또 자기 두 아내도 구출했고,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노략물이나 그들이 탈취한 어떤 것도 잃은 것 없이 모든 것을 되찾았으며, 또 다윗이 모든 양 떼와 소 떼를 되찾았다.
그들이 가축 떼를 몰고 가면서 말했다.
"이는 다윗의 노략물이다."
다윗이 전에 너무 피곤하여 자신의 뒤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했던 이백 명의 부하들에게 이르니, 그들이 다윗을 영접하고 또 그와 함께한 백성을 영접하기 위해 나아오므로, 다윗이 그 병사들에게 가까이 가서 문안하였다.
다윗과 함께 갔던 부하들 중 악한 자들과 성품이 못된 자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가지 않았으니, 우리는 우리가 되찾은 노략물을 그들에게 줄 수 없다. 다만 그들 각자는 자기 아내와 자식들만 데리고 떠나라."
다윗이 말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키셨고 우리를 치러온 무리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으니, 너희들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누가 이 일에 관해 너희 말을 듣겠느냐? 싸우러 내려갔던 자의 몫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몫을 똑같이 나눠야 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다윗이 이것을 이스라엘의 규례와 법도로 삼았더니,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자기 친구인 유다 장로들에게 노략물 중에서 일부를 보내며 말하였다.
"보아라, 이것은 여호와의 원수들에게서 노략한 것 중에서 너희를 위해 주는 선물이다."
베델에 있는 자들과 라못 남방에 있는 자들과 얏딜에 있는 자들과, 아로엘 사람들과 십못 사람들과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들과, 라갈 사람들과 여라므엘 성읍에 있는 자들과 겐 사람들의 성읍에 있는 자들과, 홀마에 있는 자들과 고라산에 있는 자들과 아닥의 사람들과, 헤브론에 있는 자들, 곧 다윗과 자기 부하들이 다녔던 모든 곳에 그 선물을 보냈다. (삼상 30:6b-31 바른)
시글락을 공격한 아말렉은 다윗이 시글락에 거주하면서 멸하고 약탈한 족속이었다. 그술과 기르스 족속과 아말렉을 멸하고 약탈하였는데 그중 아말렉이 시글락을 공격하여 다윗 무리의 가족과 가축과 재산을 약탈하였다. 다윗은 저들을 약탈하면서 아기스 왕에게는 다른 곳을 약탈한다고 속였다. 그런데 아말렉이 보복을 위하여 쳐들어 왔다. 이는 아기스 왕에게 거짓 충성을 고하며 매국의 충성을 다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아말렉이 정복의 대상인 것은 확실했다. 가나안을 제외하고도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영토는 나일강까지였다. 그러므로 그 범위의 남서 끝 단에 있던 아말렉은 정복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매국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 그 적국의 왕에게 충성을 보이기 위해 그 정복을 속여야 하는 다윗의 상황 자체는 우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살 길을 찾는 것일 뿐이었다. 다윗의 할 일은 자신의 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 다윗이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윗의 살 길은 우리가 준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 임무는 비로 이스라엘이라는 양 떼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 떼는 삯꾼 목자에게 버려두고 늑대와 사자들에게 늑탈당하도록 버려두고 사자와 늑대의 무리와 한패가 되는 것은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양치기 개가 양 떼를 늑탈하는 늑대의 무리와 하나가 되는 것은 자신의 타고난 사명을 버리는 배신이다. 늑대들이 양들을 늑탈하는데 그곳에 참여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행위는 사명을 이루는 과정이라 포장하려 해도 도저히 포장의 사기가 불가능한 배신의 행위다. 이는 심지어 자신의 본능과도 대치되는 것이다. 다윗의 현재 행위는 이와 같다. 그래서 늑대가 아닌 곰의 무리의 습격을 받게 한 것이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윗과 그 무리가 힘이 진하도록 울며 후회하고 회개하였을 때 우리는 다윗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풀었다. 원수들을 추격할 수 있게 하였고 그들과 싸워 이기게 하였으며 자녀와 아내와 무리들을 찾게 하였다. 또한 가축도 찾게 했으며 원래 그들의 것이 아닌 원수의 것까지 취하게 했다. 어리석고 악한 다윗의 부하들은 흉악한 도적과 같이 자신의 무리에 속한 약자들의 것까지 빼앗으려 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다윗이나 다윗의 무리가 다른 무리에 비해 더 선하여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저들도 우리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일 뿐이다. 우리는 찾게 하고 그것에 더하여 은혜를 베풀었다.
다윗은 이를 통해 유다 장로들의 마음을 얻었다. 장로들에게 탈취품들을 나누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다윗을 기름 붓고 왕으로 삼은 자들의 주축이 되는 자들이 바로 탈취품들을 받은 장로들이었다.
결정적인 은혜는 다윗이 이러한 결정을 할 정도로 절망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절망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를 버리지 못한다. 사울을 죽이지도 않고 자신의 의를 지킨 다윗이다. 그러한 다윗이 자신의 민족을 공격하려 할 정도의 자포자기와 절망에 빠져 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우울함은 사무엘의 죽음과 나발의 사건과 자신이 구원해 준 그일라 백성들이 사울에게 자신을 파는 사건들을 겪으며 점점 다윗에게 스며들었다. 그것이 다윗의 내부를 잠식하였고 다윗 자신도 모르게 포기하고 적국에서라도 평안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양심은 남아 있어서 유다의 남방을 치지는 않았다. 전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아말렉과 이스라엘 남방의 이방족속들을 쳐서 전리품을 회득했다. 그러나 이로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버리고 적국 블레셋의 아기스 왕 아래서 평안을 누리는 매국 행위에 대한 꺼림칙함을 상쇄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적국의 왕 아기스에게 충성을 해야 하고 그 충성에는 이스라엘을 쳐야 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다윗을 절망에 이르게 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믿지 않고 자신의 의가 아닌 우리를 의지하는 법을 진실하게 배웠다. 어릴 때부터 다윗이 겪은 모든 일들은 우리(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그 가장 큰 수업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편에서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말은 진리다. 자신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 인간은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절대절망만이 인간에게는 소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 절대절망에 이르도록 기다릴 때가 있다. 그 기간이 길고 지옥 같을 수 있지만 그것이 결코 실패의 길은 아니다. 우리를 절실히 찾아도 우리가 답하지 않고 불의한 재판장과 같이 너희를 대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의 의도는 너희를 절망으로 실패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를 절대절망에 이르게 하여 진실로 우리를 의지하고 우리에게 간절히 나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쓰러졌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바싹 쫓아가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였다. 사울을 대적하는 싸움이 치열하여 활 쏘는 자들이 그를 맞추니, 그가 활 쏘는 자들로 말미암아 중상을 입었다.
그래서 사울이 그의 무기를 드는 자에게 말하였다.
"이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하지 않도록 네 칼을 빼어 나를 찔러라."
그러나 그의 무기를 드는 자가 매우 두려워하여 그렇게 행하지 않으니, 사울이 칼을 빼어 들고 그 위에 엎어졌다. 사울의 무기를 든 자가 그가 죽은 것을 보고 그 역시 자기 칼 위에 엎어져서 그와 함께 죽었으니,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의 무기를 드는 자와 심지어 그의 모든 부하들이 그날 함께 죽었다.
골짜기 건너편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사들이 도망하는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는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니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곳에서 살았다.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들의 옷을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그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블레셋 땅 사방에 보냈다. 그들이 그의 갑옷을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벳산 성벽에 매달았는데,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용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벳산 성벽에서 가져다가, 야베스로 와서 거기서 그것들을 불사르고, 그들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의 에셀 나무 아래 묻고 칠일 동안 금식하였다. (삼상 31장)
여기서 인간의 한계를 보았다. 미래의 왕은 매국노가 되고 현재의 왕은 우상숭배자가 되었다. 둘 모두 죄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둘에게서 나온 결과는 달랐다. 하나는 원수들에게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하나는 징계의 상황에서 원수들의 앞에 두려움을 느끼고 결국 자신의 수단을 사용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자신과 모든 것에 대해 절대절망을 느끼고 자기의 수단이나 세상의 수단을 버리고 우리에게 나아왔다. 그래서 둘의 결과가 달랐다. 다윗은 그 상황에서 울고 우리에게 회개하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사울은 그 상황에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둘의 결과가 달라진 이유가 이것이다. 다윗도 여러 번 실수를 범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지적하였을 때 진정 우리를 두려워하는 다윗은 우리 앞에 겸손히 엎드려 회개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 앞에서 이스라엘을 돌보는 목자가 될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기에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 절망 앞에서 우리를 찾는 자만이 우리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