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3.2.3.15.1. 왕?
# 01.3.2.3.15.2. 사울과 다윗
# 01.3.2.3.15.3. 까닭을 모르는 다윗
## 01.3.2.3.15.3.1. 까닭 모름의 증거
### 01.3.2.3.15.3.1.1. 하프
### 01.3.2.3.15.3.1.2. 골리앗
### 01.3.2.3.15.3.1.3.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 01.3.2.3.15.3.1.4. 악신
### 01.3.2.3.15.3.1.5. 미갈
### 01.3.2.3.15.3.1.6. 요나단
### 01.3.2.3.15.3.1.7. 골리앗을 죽인 광인
### 01.3.2.3.15.3.1.8. 아둘람과 모압
### 01.3.2.3.15.3.1.9. 제사장 집단학살
### 01.3.2.3.15.3.1.10. 양치기(목자)
### 01.3.2.3.15.3.1.11. 요나단의 양위
### 01.3.2.3.15.3.1.12. 십과 사울 1
### 01.3.2.3.15.3.1.13. 죽은 개나 벼룩
### 01.3.2.3.15.3.1.14. 사무엘의 죽음
### 01.3.2.3.15.3.1.15. 나발
### 01.3.2.3.15.3.1.16. 집단 학살을 막아선 아비가일
### 01.3.2.3.15.3.1.17. 다윗 아비가일 만나다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의 으슥한 곳으로 내려가는데,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그 여자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그 여자가 그들을 만났다.
다윗이 이미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을 광야에서 지켜 그의 소유 중 아무것도 잃지 않게 한 것이 참으로 헛일이었다. 그는 선을 악으로 내게 갚는구나.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중 한 사내라도 내가 아침까지 남겨 둔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다.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다.
"내 주여, 잘못은 저에게 있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의 귀에 말씀드리겠으니, 여종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내 주께서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에게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그는 그의 이름과 같으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여종인 저는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고, 당신도 살아 계시거니와,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는 죄와 당신의 손으로 직접 복수하는 일을 막으셨으니, 당신의 원수들과 내 주께 악을 행하려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당신의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소년들에게 주시고, 당신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해 주십시오. 참으로 여호와께서 내 주를 위해 견고한 집을 반드시 세우실 것이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시며 당신의 일생 동안 당신에게서 악을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당신을 추격하여 목숨을 노린다면, 내 주의 목숨은 여호와 당신의 하나님께 있는 생명 보자기에 싸여 있겠고, 당신의 원수들의 목숨은 그분께서 무릿매로 던지듯이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주께 모든 선을 행하시고 당신을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우실 때, 내 주께서 까닭 없이 피를 흘리거나 친히 보복하였다 하여 주께서 슬퍼하거나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선대 하실 때 주의 여종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하였다.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만나게 하신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네 판단이 칭찬받을 만하며, 오늘 내가 피를 흘리지 않게 하고 내 손으로 친히 복수하지 못하게 한 네가 복을 받을 것이고, 너를 해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으신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네가 급히 오지 않아 내가 만나지 못했다면, 아침이 밝을 때까지 참으로 나발에게는 한 사람의 사내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이 그 여자가 가져온 것을 받으며 말하였다.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너의 청을 들어주겠다." (삼상 25:20-35)
어리석은 나발은 다윗을 모욕했지만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롭게 판단하여 멸족을 막았다. 남자가 모두 죽는다는 것은 대가 끊어지는 것이고 그 기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발의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타인의 소유가 될 것이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선한 기업 무를 자를 만난다면 그 재산의 일부라도 보존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재산은 모두 타인의 소유가 된다. 그 근본 기업인 땅이라도 보존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아비가일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나발의 집은 씨를 보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다윗이 이렇게 분노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앞에 잠시 설명하였는데 바로 사무엘의 죽음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낙담한 다윗은 조울증에 빠져들었다. 우울과 분노가 괘종시계의 추와 같이 왔다, 갔다, 했다. 그때 사탄이 다윗의 마음을 충동질하여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혹했다. 그 유혹의 수단이 바로 나발의 불량함이었다. 만약 다윗이 사무엘에게 자신이 확실히 다음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면 이렇게 까지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한편 다윗이 이를 모른 것이 천천과 만만의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는 다윗을 보호해 주었다. 또 그 이후 다윗이 지혜로왔다면 빨리 확신을 하였을 것인데 다윗은 계속 자신의 출생의 죄스러움과 비천함 만을 탓했다. 그런데 다윗의 출생이 어찌 다윗의 죄란 말인가? 또 다윗의 어미의 죄인가? 아내를 지키지 못한 이새의 죄이며, 우리를 떠난 이스라엘의 죄다. 이스라엘이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 민족을 우리(하나님)가 지켰을 것이다. 그랬다면 암몬 왕에게 다윗의 어미가 납치되어 겁탈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 중에 겁탈을 당한 여자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 땅에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매일 보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마음이 슬픈 자들의 눈물과 극단적 선택에 우리의 가슴은 하루에도 수백 번 무너진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의 마음을 담아 다윗과 같은 상처 입은 목자를 이스라엘에 세워 길 잃은 가여운 우리 양들을 구원했다.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와서 보니, 나발이 자기 집에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벌여 놓고 그의 마음이 유쾌하여 매우 취했기 때문에 아침이 밝을 때까지는 그에게 크든 작든 아무 일도 알려 주지 않았다. 아침에 나발이 술에서 깼을 때,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들을 알려 주었더니 그가 낙담하여 돌처럼 되었고, 약 열흘 후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다.
다윗이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여호와께서 나발에게서 받은 나의 모욕을 갚아 주시고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시고 나발의 악행을 자기 머리로 돌아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비가일을 자기의 아내로 삼기 위해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다윗의 종들이 갈멜로 가서 아비가일에게 말하였다.
"다윗이 당신을 자기 아내로 삼기 위해 우리를 당신께 보냈습니다."
아비가일이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말하였다.
"보십시오,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종들의 발이나 씻길 하녀입니다."
서둘러 일어나 나귀를 타고 자기를 따르는 다섯 여종들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 그의 아내가 되었다. 다윗이 이스르엘 출신 아히노암을 아내로 삼았으므로 그 두 여자 모두 그의 아내가 되었다. 사울은 그의 딸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 사람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다. (삼상 25:36-44)
마온과 갈멜은 유다 산지에 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하던 헤브론의 남쪽에 위치했다. 마온과 갈멜은 지척에 있었다. 마온이 산맥을 따라 남쪽에 있었고 갈멜은 그 북쪽 1.6km 지점에 있었다. 갈멜은 사울이 아말렉을 무찌른 후 기념비를 세운 곳이었다. 갈멜에서 출발하여 다윗의 군인들이 마온에 있는 나발을 죽이려 한 것은 아주 급박한 상황이었다. 1.6km는 100m를 16번 뛰는 거리다. 이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다. 도망 다니며 광야와 산악지형에 익숙했던 다윗의 군대에게 이 정도 거리는 말의 구보로는 10분 안에, 군인들의 전력 질주로는 1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나발과 그 아내 아비가일은 정 반대의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그 악이 쌓이고 쌓여 심판의 날이 가까운 자였고 아내는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이었다. 아내 아비가일이 집안의 멸문을 막고 다윗에게 선대 했다.
그 후 열흘에 남편 나발은 우리가 쳐서 죽였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기 위해 전령을 보냈다. 아비가일은 그 전령들과 함께 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남편이 죽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남편을 맞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것도 남편이 관리하던 모든 부를 버리고 남자 하나를 쫓아 여종 다섯만 데리고 떠나는 것을 보면 어리석은 것 같다. 심지어 정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른 남자를 따라 떠난다는 말인가? 그것도 도망자를 따라 떠나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지 않은가?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으로 보였는데 그녀는 어리석고 성급한 여인이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지혜롭고 결단력이 있으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였다. 아비가일은 우리가 다윗을 세웠음을 지혜롭게 알아보았고 결단력 있게 다윗의 길을 막아서서 다윗과 자신의 남편 나발을 동시에 구했다. 만약 그녀가 망설였다면 다윗의 군대는 지척인 갈멜에서 달려와 남편 나발의 가문을 멸하였을 것이다.
나발은 마치 사울과 같았다. 그는 어리석어 우리가 세운 다윗을 대적하는 사울과 같이 행동하였다. 사울은 자기 딸 미갈을 다윗에게서 빼앗아 다른 남자에게 주었다. 어리석다. 어떤 여인은 남편이 죽고 바로 다윗이 불렀어도 그가 우리가 세운 내일의 왕임을 알아보고 부름에 응답했다. 그와 함께 도망을 다녀도 그녀는 우리의 뜻을 좇는 것을 기뻐했다. 결국 아비가일은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왕비가 되었다. 어떤 자의 선택이 지혜로운 선택인가? 과연 아비가일의 선택이 어리석고 순결하지 못한 행동인가? 아비가일은 다윗보다도 더 지혜로운 자였다. 그녀는 다윗도 확신하지 못한 우리의 일을 알아보고 다윗이 왕이 되는 길에 동참하였다. 그것이 도망자의 길이라 해도 그녀에게는 기쁨의 축제로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녀는 다윗이 자신의 과거와 혈통의 오점에 비실대고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의 길을 보고 그 길을 따라 용기 있는 질주를 했다. 누가 이 여인과 같은 아내를 얻을 것인가? 그녀는 용맹을 발하며 기치를 든 군대와 같은 여인이다.
십 사람들은 또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알려 다윗을 고발했다. 저들은 다윗을 역적으로 여겼다. 사울 왕의 왕위를 탐하는 자로 여겨 다윗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현재의 왕인 사울이 다윗을 역적으로 만들었는데 누가 그것을 의심할 수 있는가? 만약 현재의 왕이 문제가 많았다면 백성들은 사울을 대적하고 다윗을 세우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울은 자신들을 위하여 블레셋을 막아내는 선한 왕이었다. 심지어 백성들이 아말렉의 재물과 가축들을 필요로 해 멸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을 때 자신들의 편을 들어 아각 왕을 살리고 가축들을 살려왔다. 그러니 사울은 백성들의 눈치를 보며 백성들의 편을 드는 왕이었다. 그래서 백성들도 사울을 잘 따랐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들의 왕이 아니다. 이스라엘 왕의 조건은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의 말과 법을 따르는 순종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눈치를 보기보다 백성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인기와 명예와 권력을 중시하는 왕은 이스라엘 왕이 아니다. 우리에게 순종하지 않는 왕으로 인해 블레셋의 침공은 계속되었다. 사사기에 사사가 세워지면 그 땅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사사기에 사사는 개인이었기 때문에 타락하면 힘을 잃어 삼손과 같이 원수들에게 잡히거나 죽임을 당했다. 또 타락해도 사울과 같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사사라는 직위 자체가 왕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기에 탐할 것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전쟁을 수행하고 나면 할 일도 별로 없었다. 평소에는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재판관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정규군도 없었고 정규적인 행정조직도 없었다. 치안을 유지하는 사법조직도 없었다. 사사가 탐욕을 부릴만한 권한의 한계가 아주 작았다. 그래서 그 타락도 별 것 없었다. 아주 타락해도 개인적인 일탈일 뿐이었다. 아내를 많이 가져 자식을 많이 낳는다든가, 아니면 이방 여인을 사랑하여 여러 여인과 염문을 퍼트린 삼손 정도의 타락이었다. 사울과 같이 다음 대를 위해 우리가 세운 자를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죽이려고 하는 추잡한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이래도 왕정이 사사 제도보다 더 발전된 제도인가?
십 사람들의 발고를 들은 사울은 다윗을 죽이러 갔다. 다음을 보라.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였다.
"다윗이 여시몬 맞은편 하길라 산에 숨지 않았습니까?"
사울이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기 위해 이스라엘에서 뽑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 여시몬 맞은편 하길라 산의 길가에 진을 쳤다. 그때 다윗은 광야에 머물면서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왔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자는 곳을 살피니, 사울은 진영 가운데 누웠고 그 주위로 백성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삼상 26:1-5)
이 상황에 다윗은 무모한 듯한 행동을 한다. 사울의 군대는 삼천이었다. 그 군대가 진을 치고 사울은 그 중심에 있는데 다윗은 단 한 사람만을 거느리고 사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간다.
다윗이 헷사람 아히멜렉과 요압의 아우이며 스루야의 아들인 아비새에게 물었다.
"누가 나와 함께 사울의 진영으로 내려가겠느냐?"
아비새가 말하였다.
"제가 당신과 함께 내려가겠습니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백성에게 와서 보니, 사울은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있었고 그의 창은 그의 머리맡 땅에 꽂혀 있었으며 아브넬과 백성은 그를 둘러 누워 있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제 제가 그를 창으로 단번에 땅에 꽂게 해 주십시오. 제가 그를 두 번 찌를 필요도 없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말하였다.
"그를 죽이지 마라. 누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 손을 대고도 무죄할 수 있겠느냐?"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날이 이르러 죽든지 전쟁에 나가 죽을 것이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 내 손을 대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셨으므로 이제 우리가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자."
다윗이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갔지만, 이를 보거나 눈치채거나 깨는 사람이 없었으니,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멀리 산꼭대기에 서니 그들 사이가 멀었다. 다윗이 넬의 아들 아브넬과 그 백성에게 외쳐 말하였다.
"아브넬아, 네가 대답하지 않겠느냐?"
아브넬이 대답하였다.
"네가 누구이기에 왕을 부르느냐?"
다윗이 아브넬에게 말했다.
"너는 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 중에 너와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네 주 왕을 지키지 않느냐? 참으로 백성 중 하나가 네 주 왕을 없애려고 들어갔었다. 네가 행한 이 일이 선하지 못하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들이다. 너희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너희 주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왕의 머리맡에 있던 왕의 창과 물병이 어디 있는지 보아라."
(삼상 26:5-16)
그런데 다윗의 이 행동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겠는가?
다윗은 이 행동을 통해 어떤 의를 이루었는가?
다시 말해 다윗은 우리의 명령을 듣고 그 명령을 수행했는가?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하였는가?
위에 우리가 사울과 그 군대를 깊이 잠들게 했다는 것으로 인해 다윗의 행동이 옳았다고 증명되는가?
이 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울은 또 뉘우치는 듯했지만 다시 악신이 내려 다윗을 죽이려 했다. 다윗은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급기야 전에 침을 흘리며 미친 짓을 했던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쳤다. 무엇을 이루었다는 말인가? 혹시 이를 통해 다윗의 양심이 증명되었다고 성경을 보는 자가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라. 그 양심은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지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윗의 의가 증명되는 것과 내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 다윗의 참 의가 되지 않겠는가? 자기 의를 보이자고 내 백성들이 사울 아래서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강간을 당하는데 사울을 그냥 둔 다윗이 과연 의로운 자인가? 그가 그렇게 의롭다면 그는 어찌하여 블레셋으로 도망갔는가? 어찌 내 백성을 죽이는 원수들에게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갔는가?
그리고 과연 이것이 다윗의 의가 되었는가? 그가 골리앗을 때려죽인 것은 옳았는가? 그렇다면 내 백성을 죽음과 강간당함으로 내몰고 있는 사울을 죽이는 것은 옳은 것일까? 골리앗은 외부의 적이다. 그렇다면 악신이 내린 사울은 내부의 적이 아닌가? 내부의 적이었던 아간은 어떻게 처단하였는가? 그가 진멸할 가증한 물건들을 가져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아이 성에서 패하였을 때 그에게 내려진 징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르고 적국의 왕과 짐승들을 수도 없이 살려서 온 사울의 죄에는 어떤 징벌이 내려져야 할 것인가? 감히 제사장도 아닌 자가 제사장인 사무엘이 올 것을 약속하였으나 늦는다고 하여 허락도 없이 제사를 드린 사울에게는 어떤 징벌이 내려져야 할 것인가? 만약 사울이 아간과 같이 힘이 없는 자였다면 우리는 당장 그를 돌로 쳐서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백성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다면 사울에게 있는 막강한 군대가 도리어 백성들을 칠 것이기에 그러한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이것이 왕정의 폐단이다. 우리의 명령을 수행할 백성들을 압제할 수 있는 힘을 왕이 가진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윗에게 여러 번 사울을 죽일 기회를 주었는데 다윗은 돌로 쳐 죽여야 할 자를 죽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의를 증명하고자 함이었는데 그 의라는 것이 단지 자기중심의 자기 방식의 의였다. 결코 우리가 명한 것도 아닌 것을 스스로의 양심을 증명하기 위해 원칙으로 삼고 지켰다.
처음 기회를 주었을 때 죽이지 않고 자기 의를 내세워 자기 교만을 쌓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더 그를 죽일 기회를 주지 않으니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며 사울과 군사들 앞에서 자신의 의를 자랑하였다. 실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의를 증명하기 위해 부하를 죽음의 위기에 내몰았다. 어리석은 다윗이 죽지 않도록 우리가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다윗의 사명도 그의 생명과 함께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까운 부하 아비새의 생명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가 정말 의로운 자라면 사울의 진영으로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울의 창과 물병을 훔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무엇이 증명된다는 말인가? 자기를 증명하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는 우리가 가증히 여기는 자다. 자기 마음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백성을 위하는 자가 진정 양심이 있는 자다. 자기 자랑을 일삼는 다윗의 행위는 우리가 가증히 여기는 바였다. 이 사건을 보고 우리의 마음을 읽지도 못하고 자기 권위를 내세우는 더러운 삯꾼들은 모두 엎드려 회개하라.
세상에 위대한 자는 없다. 모두 다 다윗과 같이 어리석은 자다. 다윗이 후에 왕이 되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우리의 나라를 든든히 하여 백성들에게 평안을 준 것은 그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보여 주기를 원했다. 사울과 같이 뛰어난 자가 왕이 되었을 때는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교만과 권력욕으로 우리를 배신하였다. 그런데 비천한 목동인 다윗을 왕으로 만들었을 때 그는 그래도 자신의 주제를 알고 겸손히 우리를 따를 것임을 보여주려 했다.
누군가 성경의 인물들이 영웅이며 위대한 자라 믿는다면 그는 성경을 읽고 엉뚱하게 해석을 한 것이다. 사무엘서의 앞에 기록된 사사기의 주제가 무엇인 지를 잊어버린 어리석은 자의 해석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배와 같이 문맥의 길을 잃어버린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