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6

by 에스겔

# 01.3.2.3.15.1. 왕?
# 01.3.2.3.15.2. 사울과 다윗
# 01.3.2.3.15.3. 까닭을 모르는 다윗
## 01.3.2.3.15.3.1. 까닭 모름의 증거
### 01.3.2.3.15.3.1.1. 하프
### 01.3.2.3.15.3.1.2. 골리앗
### 01.3.2.3.15.3.1.3.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 01.3.2.3.15.3.1.4. 악신
### 01.3.2.3.15.3.1.5. 미갈
### 01.3.2.3.15.3.1.6. 요나단
### 01.3.2.3.15.3.1.7. 골리앗을 죽인 광인
### 01.3.2.3.15.3.1.8. 아둘람과 모압
### 01.3.2.3.15.3.1.9. 제사장 집단학살
### 01.3.2.3.15.3.1.10. 양치기(목자)
### 01.3.2.3.15.3.1.11. 요나단의 양위
### 01.3.2.3.15.3.1.12. 십과 사울 1
### 01.3.2.3.15.3.1.13. 죽은 개나 벼룩
### 01.3.2.3.15.3.1.14. 사무엘의 죽음
### 01.3.2.3.15.3.1.15. 나발
### 01.3.2.3.15.3.1.16. 집단 학살을 막아선 아비가일
### 01.3.2.3.15.3.1.17. 다윗 아비가일 만나다
### 01.3.2.3.15.3.1.18. 미갈 아비가일
### 01.3.2.3.15.3.1.19. 십과 사울 2
### 01.3.2.3.15.3.1.20. 창과 물병
### 01.3.2.3.15.3.1.21. 산의 메추라기 벼룩 한 마리





01.3.2.3.15.3.1.21. 산의 메추라기 벼룩 한 마리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듣고 말하였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다윗이 말하였다.

"내 주 왕이시여, 제 음성입니다."

"내 주께서 왜 주의 종의 뒤를 쫓으며 추격하십니까? 참으로 제가 무엇을 하였으며 제 손에 무슨 악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내 주 왕께서는 종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만일 여호와께서 저를 대적하라고 당신을 충동하셨다면 그분께서 예물을 받으실 것이나, 만일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니, 이는 그들이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유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면서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라.'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 앞에서 멀리 떨어진 이 땅에 나의 피를 흘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스라엘 왕께서는 산의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사람처럼 벼룩 한 마리를 찾으러 나오신 것입니다."

사울이 말하였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너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히 여겼으므로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지 않겠다. 내가 어리석은 일을 했으며 대단히 잘못했다."

다윗이 대답하여 말했다.

"보십시오, 왕의 창입니다. 종들 중 하나를 건너오게 하여 이것을 가져가게 하십시오.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각자의 의로움과 신실함을 따라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제 손에 넘기셨으나 저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분에게 제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오늘 왕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긴 것처럼 여호와께서도 제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시고 모든 역경 중에서 저를 구해 주실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 다윗아, 네가 복 받기를 바란다. 너는 분명 큰 일을 할 것이며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갈 길로 갔고 사울도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삼상 26:17-25)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상황에서 다윗은 또 자신을 산의 메추라기와 벼룩 한 마리에 비유한다. 이를 겸손한 태도라 볼 수도 있지만 이를 좋은 태도로 보는 관점은 유교적 관점이다. 현재의 왕을 우상화하고 군사부일체라 하여 지극히 섬긴다. 군왕은 무치라 하여 왕이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 정당화된다. 왕이 있고 그 왕에게 반기를 드는 자는 반역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이것은 유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세뇌다.

이를 교회 안에서 주의 종을 대적하면 죄이며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치는데 성경 어디에도 그런 사상은 없다. 그들이 자주 이 다윗이 사용한 말을 사용하는데 다윗이 그러한 말을 사용한 것은 성격적 근거가 없다. 단지 자신을 비하하고 상대가 순혈의 베냐민 지파 왕이기에 주눅이 들어서 한 표현이다. 자신은 개잡종이며 그래서 자신은 산의 가장 작은 메추라기나 벌레 중 가장 작은 벼룩이다. 그런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데 순혈에 키가 월등히 큰 준수한 외모의 사울은 누가 보아도 왕이 될 자였다. 다윗은 사무엘이 사울을 폐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은 기름이 왕의 기름 부음인 것도 알지 못했다. 과거 우리가 감동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겠다고 직접 말했으나 그것도 자신의 자격지심으로 인해 단지 가장 낮은 직위를 자신이 가질 것이라 여겼다. 목동이 사실 높은 직함은 아니다. 낮은 직함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돌보는 목자가 된다는 말은 누가 보아도 평범한 목동이 아닌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격지심이 있었던 다윗은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를 겸양으로 보고 심지어 목회자를 대하는 바른 자세로 설교하는 자들은 자기 교만을 높이고 자기 배를 섬기는 우상숭배자일 뿐이다. 자신을 섬기고 자신의 앞에 굴종하라고 가르치는 목회자는 그 말을 하면서 그 낯이 달아오르지 않는가? 다윗이 이렇게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동안 다윗과 함께 한 무리들은 고난의 행군을 하였다. 굶주리고 천시당하며 도망자로 살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한 왕 아래서 이방 족속들의 침략을 계속 받았다. 백성들은 전쟁에 죽어나갔고 그 전쟁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 모든 것은 온전한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않은 까닭이다. 요나단도 아비가일도 그리고 전쟁에 지친 백성들 중에서도 다윗을 왕으로 받드는 자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사울조차도 다윗을 다음 왕으로 보고 죽이려 달려들었다. 그런데 정작 다윗은 자기 비하에 사로 잡혀 목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리와 사자를 끌어들이는 내부의 대적자 사울 왕을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여기며 도망만 다니고 있었다.

모압 왕에게 피하여 도망간 다윗에게 우리가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다윗은 이스라엘의 목자다. 그런데 자기 양인 이스라엘이 삯꾼에 의해 신음하고 있는데 그것을 두고 도망을 간 다윗이 과연 제정신이며 옳은 자인가? 항상 역사는 자신의 옳음을 지킨 방관자들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다윗이 우리의 성령이 이미 떠난 사울을 기름 부음 받은 자라 여기고 자기 사명을 잃어버렸을 때 역사는 제 길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울과 함께 전쟁에 끌려나간 수많은 아들들의 목숨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블레셋의 약탈에 의해 겁간을 당한 수많은 다윗의 어미와 같은 여인들은 어찌한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어미가 겁간당하게 만든 원흉이 된 자를 정당한 기름 부음 받은 왕으로 섬긴다. 이미 그 왕은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지배하고 있는데 여전히 그에게 기름 부음이 있다고 여긴다. 자기 어미의 원수를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과연 겸양의 소양을 지닌 자란 말인가? 이스라엘의 왕이 자신을 산의 메추라기와 벼룩으로 비하하며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상인가? 우리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었다. 그런데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겸양인가? 우리가 이미 폐하였는데 어찌 저는 사울을 왕이라 여긴다는 말인가? 우리가 기름 부음을 걷었는데 저는 어찌하여 그에게 기름 부음이 있다고 한다는 말인가?

마치 고려시대 정몽주가 타락한 왕과 고려의 귀족들의 편을 들며 자신을 충신으로 포장한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백성들은 갈취를 당하고 굶어 죽고 권력자들에게 딸들이 겁간을 당하고 있는데 그 일을 하고 있는 원흉인 왕을 떠받치고 있는 신하가 과연 충신인가? 이직의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라. 과연 누가 검은 자였을까?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ㅡ 이직[^1]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까지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그러므로 내 자식들이 죽어가는데 겸양을 떠는 자가 있다면 내가 그를 어찌 보겠는가?






01.3.2.3.15.3.1.22. 다시 아기스 왕에게



사울과 백성들 앞에서 이런 기백(?)을 보인 다윗은 아이러니하게도 블레셋의 아기스에게로 갔다. 그곳에서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광인인 것처럼 연기하였었다. 이제 그곳으로 다시 갔다. 골리앗의 땅으로 가 그 왕의 신하가 되었다. 블레셋은 전통적으로 다섯 왕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아기스였다. 아기스가 다스리던 땅의 도읍은 가드 성이었다.




다윗이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멸망할 것이니, 정녕 블레셋 땅으로 도피하는 것 외에 다른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러면 사울이 나를 단념하여 이스라엘의 온 지경에서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것이고,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육백 명과 더불어 마옥의 아들인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건너갔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각자 자기 가족들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함께 살았으며, 다윗도 자기의 두 아내 이스르엘 사람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다. 다윗이 가드로 도망한 것이 사울에게 알려진 후 그가 다시는 다윗을 찾지 않았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하였다.

"만일 제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들에 있는 성읍들 중 하나를 제게 주어 거기에 살게 해 주십시오. 왕의 종이 어찌 왕과 함께 왕의 성에서 살겠습니까?"

그날 아기스가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날까지 유다 왕들의 소유가 되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들에서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옛적부터 술을 지나 이집트 땅에 이르기까지 그 땅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 두지 않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들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로 갔다.

아기스가 물었다.

"오늘은 누구를 침략했느냐?"

다윗이 대답하였다.

"유다의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입니다."

다윗이 남자든지 여자든지 가드로 데려가기 위하여 살려두지 않았다. 이는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윗이 그와 같이 하니,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들에 사는 동안 내내 그의 습관이 그와 같았다'라고 할까 두렵다" 하였기 때문이다.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매우 미움받을 짓을 했으니 그가 영영 자신의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윗을 신뢰하였다. (삼상 27:1-12)



아기스는 혼자 자기의 성으로 왔던 과거의 다윗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윗을 골리앗을 때려죽인 영웅으로 생각하였다. 그런 그를 장수로 삼아 자신의 휘하에 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신하들의 말대로 다윗이 위협이 될 것이라 내심 의심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삼손은 혼자서 블레셋의 신전을 무너트려 블레셋 왕들과 방백들을 한꺼번에 몰살했었다. 다윗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다윗은 미친 척 침을 질질 흘리다가, 어느 날 소식도 없이 도망가버렸다. 싸움은 잘하지만 기백이 없는 자라 여겼다. 그 힘에 비해 간이 작은 자이므로 삼손과 같은 일을 벌일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아기스 왕은 좋은 장수를 얻었다고 여겼다. 거기다, 다윗이 자신의 돌격대 600명까지 데리고 투항하였으므로 위급한 싸움에 자신의 군사를 희생시키지 않고 다윗의 군대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작은 성을 주었더니 유다의 남방을 공격하고 전리품을 가져와 자신에게 주었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민족을 배신하고 그곳을 약탈하고 온 다윗을 보니 완전히 자신에게 전향(회개)하였다, 생각했다.

다윗의 처지를 생각하여 보라. 자신의 민족에게 배신당하고 이제 민족의 원수 블레셋에 투항하였다. 자신도 민족을 배신한 매국노로 행동하여 그곳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에게 무슨 소망이 보이는가?

물론 다윗이 시글락에 정착하여 가드 왕 아기스를 속이고 이스라엘의 대적이었던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략하여 그 성읍들을 멸했다. 이들은 남방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약탈했던 자들이다. 이는 다윗의 마음에 자신은 이스라엘에서 축출되었어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목자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다윗을 향한 우리의 뜻이었을까? 다윗이 사울을 폐하여 유폐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를 포기하고 자신만 의로운 척하며 사울을 피하여 적국인 블레셋으로 간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아무리 자존감이 무너져서 자신을 비하한다고 해도 자신의 백성을 버린 왕을 왕이라 할 수 있는가? 자기 양을 버린 목자를 목자라 할 수 있는가?

다윗의 선택의 결과를 알 수 있는 결정적 사건이 다음 장면에 등장한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앞서 두려움을 안고 신접한 엔돌의 여자 무당을 만난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물론 이스라엘군의 피해도 막심하여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두 아들과 부하들이 죽었다. 군대는 학살을 당하다 시피하여고 이스라엘은 무너졌다. 이 전투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을 치는 적의 역할을 맡았었다. 그런데 우리가 블레셋 방백들을 선동하여 다윗이 그 전쟁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친 매국노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은 막아주었다. 그때 다윗과 부하들의 가족이 있는 시글락은 아말렉의 공격을 받았고 다윗의 아내들과 부하들의 식솔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갔다. 다윗의 선택이 옳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는가? 이 일들을 성경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01.3.2.3.15.3.1.23. 매국을 한 미래의 왕




그 무렵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였으며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와 네 부하들이 나와 함께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 두어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하였다.

"왕께서는 왕의 종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시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내가 너를 평생 내 머리를 지키는 자로 삼겠다." (삼상 28:1-2)



뒤인 사무엘상 29장에 나오지만 다윗은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올라간다. 자신의 힘으로는 안되니 적국 블레셋의 힘을 빌어 이스라엘을 쳐 정복하고 왕이 되려 한 것일까? 아니면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적국의 장수가 되어 적국에서 일지라도 가족들과 함께 평안히 살기를 원한 것일까? 성경은 이에 대한 어떤 답도 제시하고 있지 않았다. 너희는 다윗의 진의가 무엇이었다고 생각되는가? 뒤에 다윗의 성 시글락에 내린 징계를 보면 너희는 다윗의 중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01.3.2.3.15.3.1.24. 접신한 현재의 왕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해 애곡하며, 그의 성읍 라마에 장사지냈고, 사울은 그 땅에서 신접한 자와 영매를 쫓아내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니 사울은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을 쳤다. 사울이 블레셋 진을 보고 두려워하여 그의 마음이 매우 떨렸으므로, 여호와께 물었으나,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자를 찾아라. 내가 그 여자에게 가서 묻겠다."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신접한 여자가 엔돌에 있습니다."

사울이 변장하여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두 명의 부하와 함께 밤에 그 여자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를 위해 점을 치는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내게 불러 올려라."

그 여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사울이 행한 일, 즉 그가 신접한 자와 영매를 이 땅에서 멸절시킨 것을 당신도 아실 터인데 어찌하여 당신은 제 목숨에 올무를 놓아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사울이 그 여자에게 여호와로 맹세하였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니, 이 일로 인해 네가 결코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 여자가 말하였다.

"제가 당신께 누구를 불러 올릴까요?"

사울이 말하였다.

"사무엘을 내게 불러 올려라."

그 여자가 사무엘을 보자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사울에게 말하였다.

"왜 당신은 저를 속였습니까? 당신은 사울입니다."

왕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 여자가 사울에게 말하였다.

"한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제가 봅니다."

왕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그 여자가 말하였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겉옷으로 몸을 두르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그에게 절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왜 나를 불러 올려서 괴롭게 하느냐?"

사울이 말했다.

"저는 큰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저와 전쟁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떠나셨고,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다시는 제게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자 하여 당신을 불렀습니다."

사무엘이 말했다.

"왜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너의 원수가 되셨으며,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시어 여호와께서 왕국을 네 손에서 찢어내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다. 네가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주의 맹렬한 진노를 아말렉에게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이스라엘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 것이며 또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군대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쓰러지니, 그가 사무엘의 말을 듣고 매우 두려워하고, 또한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못하여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사울에게 와서 그가 매우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왕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따라, 제 목숨을 걸고 왕께서 제게 명령하신 말씀을 들었으니, 이제 왕께서도 왕의 여종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왕 앞에 약간의 음식을 차리겠으니 드시고 기운을 차려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거절하여 말하였다.

"내가 먹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신하들과 그 여자도 간청하므로, 그가 그들의 음성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그 여자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었으므로 서둘러 그것을 잡고 밀가루를 가져가 반죽하여 누룩 없는 빵을 구워, 사울과 그 부하들 앞에 가져오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 그날 밤에 떠났다. (삼상 28: 3-25 바른)





미래의 왕은 매국노가 되었고 현재의 왕은 마녀를 통해 접신을 한 자가 되었다. 사술을 행하는 것은 율법에 엄격히 금한 것이었는데 사울은 이를 어기고 접신을 했다. [^2] 이 얼마나 경악할 만한 일인가? 비참하여 그 마음에 어둠의 비가 흘러내린다. 나의 눈물은 강이 되어 내 백성들 위에 뿌려진다. 내 백성을 구원해야 할 왕들이 저 모양이니 나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인생은 어떤 인생이든 소망이 없다. 사울도 다윗도 다 그러한 자들이다. 그래서 인생의 죄를 씻고 인생의 악함을 죽이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은 나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없다. 나와 함께 죽고 나와 함께 다시 태어나지 않는 다면 인생들에게는 소망이 없다.







[^1]: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1362~1431). 자는 우정(庭). 호는 형재(亨齋). 이성계를 도와 개국 공신이 되었으며, 왕자의 난 때에는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이 되었다. 벼슬은 대제학, 이조 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저서에 ≪형재시집≫이 있다.




[^2]: 성경의 기록자는 자기 시대의 관점대로 그 나타난 자를 사무엘로 기록하였다. 그런데 나타난 영은 사무엘이 아니다. 신접한 여인이 본 것은 흐릿한 형체였을 뿐이다. 이를 성경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오류가 아니다. 해가 동에서 떠 서로 진다는 것은 단지 너희가 보는 관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을 기록하였다 하여 어찌 그것을 오류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단지 그것은 자신이 보는 관점대로 그 시대의 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성경을 흠잡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기 시대의 개굴 소리 만을 요구하는 자들이다. 시대가 다르면 세계관이 다르다. 다른 시대의 세계관으로 말해진 것을 자기 시대의 세계관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은 자는 성경 석의학의 기본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사무엘이 가짜이듯 가짜 사무엘이 한 예언도 가짜다. 귀신들의 사특한 말도 이루어진다. 이는 사울이 그 말을 사무엘이 한 것으로 믿고 전장에 나아갔기 때문이다. 지상의 통치자인 인간이 원수의 저주를 믿고 따르면 그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사술은 모두 이러한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귀신들의 기적도 모두 인간의 기도 응답을 훔치거나 인간의 추악한 염원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인간들 중 정말 대가 센 사람들에게는 귀신들의 저주도 소용이 없다. 인간 스스로 믿지 않으면 원수의 저주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물론 그러한 자에게도 다른 인간을 통해 악한 염원의 저주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어찌할 수는 없다. 그 저주한 다른 인간의 권세로 그 일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귀신 자체의 권세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2화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