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 관하여 8

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는 식물들의 빛깔에 관하여

by 에스겔

태양빛

태양빛은 계절에 따라 그 색이나 강도가 달라진다. 하루 안에서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태양의 고도와 일출, 일몰 시간에 따라 계절이 정해진다. 하루 동안 흘러가는 시간도 태양에 따라 결정된다. 여름에는 활동가능시간이 길고 겨울에는 활동가능시간이 짧다. 이렇게 태양은 계절과 연시를 이룬다.

겨울빛

계절 중 해가 가장 짧은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은 하루 해가 아침 7시가 넘어서야 뜨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7곱시라는 것은 바다에서 해가 뜨는 시간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땅을 기준으로 한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독도에서도 7시 26분이 되어야 해가 뜬다. 같은 계절 같은 시간이라도 산중에서 해가 뜨는 시간은 더 늦다. 계곡이 깊으면 산에 가려 해가 늦게 뜨게 된다. 내가 겨울에 일어나 아파트 1층에서 해를 보려면 7시가 넘어야 한다. 날이 밝는 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렇다. 아파트 앞 동에 가려서 동그란 해가 내 눈에 직접 보이는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동지에는 오전 10시가 되어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1층에서는 오전에 2~3시간 오후에 2~3시간 직접적으로 해를 볼 수 있다. 자연적이면 겨울에는 해의 고도가 낮아져서 집 안 더 깊숙이 해가 들어와야 하는데 아파트라는 비자연적 구조물 안에서는 특히 땅과 닿아 고도가 낮은 1층에서는 해를 보기 힘들다. 오히려 해를 피하고 싶은 여름에는 해의 고도가 높아져서 하루 종일 해가 들어온다. 콘크리트로 된 아파트 벽과 창문이 달아올라 열기를 집 안으로 내뿜는다. 이걸 식히려면 또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 비효율의 극치다. 자연을 따라 지은 전통가옥들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단층 주택에 집과 집 사이에 마당과 길을 두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햇빛이 충분히 들게 했다. 물론 인구밀도가 과밀해 좁은 면적에 더 많은 주택을 지어야 하는 도시에는 맞지 않는 건축방식이다. 인간도 주택도 사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태양과 물과 바람과 땅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연의 기초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동식물이 모두 편안히 살 수 있다. 특히 태양빛은 자연을 구성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요소다. 태양빛이 없으면 생물 자체의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다. 태양이 계절을 따라 고도를 바꾸고 그 온도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자연은 번성할 수 있다. 태양은 겨울에는 그 고도가 낮고 고도가 낮으므로 떠있는 시간도 짧다. 겨울철에는 지구의 북반구와 태양이 이루는 각이 낮아져서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빛의 전체 총량이 작아진다. 그것이 겨울 추위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연히 겨울의 온도는 전체적으로 낮아진다. 낮아져서 영하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고 얼음이 얼기도 한다. 하늘에서 얼어버린 수증기는 눈이 되어 떨어진다. 겨울의 짧은 해는 얼어버린 눈의 대지를 비추어 희게 만든다. 눈은 밤에도 그 흰빛으로 겨울 밤을 환하게 하지만 낮에 해가 뜨면 눈이 부셔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만들어버린다. 눈의 색을 닮았는지 겨울 해의 색은 백색에 가깝다.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그 흰빛이 선명하다. 원래 태양빛은 약간 밝게 빛나는 아주 연한 귤색에 가깝다. 그런데 겨울 해는 유난히 다른 계절의 해보다 더 희게 보인다. 왜일까? 모든 것을 위한 희생으로 자신을 버리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떨어진 자의 주검은 그렇게 희고 거룩한 백색인 것일까? 그 순백의 희생의 주검의 계절 순백의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덮는다. 그 덮은 순백의 눈을 순백의 태양이 비춘다. 겨울은 그렇게 주검의 순백의 계절인 것이다. 그 겨울의 순백에 맞는 순백의 태양은 하늘의 응답일 것이다.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을 향한 거룩한 순결의 하늘 응답이 백색의 겨울 태양빛이다.

봄빛

봄은 해가 겨울을 지나 낮아진 고도와 비추는 시간을 올려가는 때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지는데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점을 춘분이라 부른다. 고대에는 이 때를 태양신 아폴론이 어둠을 이기는 시간이라 하여 생명의 탄생과 부활의 시간으로 여겨졌다. 그 이교적 전통을 이어받아 부활절을 춘분으로 로마시대에 결정했다. 태양이 비추는 낮이 밤보다 길어져야 지구는 따듯해질 수 있다. 낮은 서서히 길어진다. 얼어있던 땅은 태양빛이 비추는 시간과 각도가 높아짐에 따라 서서히 녹는다. 땅 속 지구의 열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의 열이 만나 땅을 녹이다, 두 녹는 부분이 만나면 완연한 봄을 맞는다. 자연의 모든 뿌리와 씨앗들은 연둣빛 싹을 내어 새 생명의 시간이 왔음을 알린다. 이집트나 고대인들은 그래서 초록을 부활의 색으로 믿었다. 죽음 같은 겨울을 지나 다시 초록이 돋아나는 것을 부활로 보았다. 겨울 나목도 뿌리만 살아남은 다년생풀들도 주검에서 생명의 싹을 틔워 올린다. 씨앗들은 새롭게 탄생하여 연둣빛 생명을 땅에 퍼트린다. 그 생명은 태양의 고도가 올라가면서 점점 자라 그 생명을 강하게 한다. 그 생명이 가장 강하게 되는 그 때가 여름이다.

여름빛

여름은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때다. 북반구에 있는 우리나라의 여름은 6~8월이다. 6월은 싱그러우며 7월은 고온 다습하며 8월은 그 뜨거운 햇살에 피부가 따가울 정도다. 여름의 태양은 왠지 겨울보다 더 노란빛과 붉은빛이 강하다. 그 강한 열기를 그 색이 말을 해주는 듯 아이들도 여름의 태양은 붉게 칠을 한다. 그 붉은 태양아래 봄의 연두 빛 식물들은 진한 녹색을 가지게 된다. 가지를 뻗고 잎을 늘리고 그 세력을 기른다. 열매들을 익히고 자라게 할 강력한 에너지를 그 진한 녹색의 잎들이 만들어낸다. 열매 맺음은 여름 목마름과 땀 흘림이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다. 그 목마름에 하늘은 다른 계절 보다 많은 비를 뿌려 갈증을 씻어준다. 고난이 없이 맺어지는 열매는 없다. 열매는 고난이 흘린 눈물을 먹고 자란다. 그렇게 붉은 태양 아래 열매가 자라 익어가면 가을이 온다.

가을빛

가을빛은 유난히 눈이 부시다. 하늘이 맑고 높은 에멜랄드 빛이어서 그런지 여름보다 온도는 떨어졌지만 가을 빛은 유난히 따갑고 눈이 부시다. 고난의 빛이다. 그래서 가을빛은 모든 것을 익게 만든다. 모든 빛깔을 단풍으로 물들인다. 열매도 그렇게 물들이고 잎도 물들인다. 그렇게 물이 들면 온 산이 붉고 노랗다. 고난의 빛은 대지를 피로 물들인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끔찍한 붉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생명의 붉음이다. 그래서 그 모든 붉음은 아름답다. 어느 붉음의 날에 동박의 꽃을 떨군 그 목수의 피처럼 아름답다. 모든 열매들은 익어 그 씨를 성숙시킨다. 그 씨는 새로운 생명의 그릇으로 죽음의 겨울을 지나 새 생명의 봄에 생명을 움돋게 한다. 열매는 씨를 보호한다. 씨가 익기 전에는 떫은 맛이나 좋지 못한 맛을 내어 벌레들이나 새들의 접근을 막는다. 씨가 성숙되어 익으면 열매는 그 맛을 달게 변화시켜 주변의 벌레와 새들을 모은다. 그래서 그 새들의 배설물을 통해 씨를 퍼트리게 한다. 열매는 새들이나 동물의 먹이가 된다. 그리고 그 배설물이 되어 씨가 자랄 수 있는 거름이 된다. 그렇게 씨와 함께 배설되어 씨를 키운다. 열매의 모든 것은 씨를 위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명의 씨앗을 키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지는 것은 생명을 위함이다. 그렇게 떨어져 백 배, 육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 이런 가운데 추분이 온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 이후로는 태양의 낮이 달의 밤보다 짧아진다. 그렇게 되면 서서히 추워지면서 겨울이 온다. 오직 겨울에는 생명을 담은 떨어진 씨앗과 나목과 땅 속에 묻힌 월동하는 뿌리만 남는 계절이다. 이렇게 태양빛의 변화에 따라 일년은 변화를 거듭한다. 매해 매해 이것들을 반복하며 생명이 이 땅에 심기우는 고난이면서 행복이요 배신당한 눈물이면서 사랑한 자의 용서를 심령 속에 일깨운다. 그리고 그를 따라 난 씨들에는 봄의 생명의 부활이 기다림을 일깨운다. 부활의 아름다운 봄 꽃 그 영광은 결코 고난의 계절과 죽음의 계절 겨울이 없이는 오지 않는 꽃이다.

태양의 낮과 달의 밤

태양은 낮과 밤을 만든다. 그 둘이 합해야 하루가 된다. 아침의 태양이 뜨고 그 태양이 지고 다시 어둠이 시작되고 그 어둠이 끝나 새 햇빛이 아침을 비춰야 하루가 된다. 밤과 낮은 둘이 짝을 이룬다. 낮은 태양이 주인이 되는 시간이다. 밤은 달이 주인이 되지만 달은 온전한 주인이 아니다. 태양빛이 없는 시간에 태양을 거울처럼 비추어 희게 밤하늘에 연한 태양빛을 전한다. 그것이 달의 소임이요. 그것이 달의 영광이다. 달의 영광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다. 태양의 것을 반사하는 것이다. 결코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 스스로 자랑할 수 없다. 하물며 스스로 자신의 빛을 비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스로는 낼 수 있는 빛이 없다. 빛은 밤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자신은 사라지는 주검을 맞는다. 그리고 주검의 시간을 지나면 부활의 아침을 맞는다. 새벽 가지들의 끝 잎새의 끝에 맺힌 이슬에 비친 눈부심이 그 영광의 시간이다. 바로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이다. 밤의 낮은 기온이 없으면 이슬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슬이 아침의 햇살을 만나지 않으면 영롱하게 빛날 수 없다. 아침의 영광은 밤의 고난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밤의 어두움과 고난의 저온이 없으면 이슬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아침의 밝은 햇빛을 새롭게 맞을 수 없다. 아침 미명에 해를 기다려본 자들은 누구나 알게 된다. 그 해를 자신이 얼마나 기다리고 그 해가 조금 솟아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그 해를 얼마나 자신이 기뻐하는지를 아침 해가 싫어서 눈을 가리고 그 햇빛을 피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주검의 시간을 지난 자들은 모두 빛을 사랑한다. 주검의 겨울을 견디고 나온 자들도 봄볕을 그렇게 사랑한다. 봄볕과 아침의 햇빛은 모두 주검을 지나 부활을 기다리는 자들의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빛을 사랑하여 그 빛에 나아오고 그 빛을 기뻐한다.


그런데 빛을 잃어버리게 되는 오후 늦은 햇빛을 우리는 싫어한다. 빛을 우리는 거부한다. 그 빛은 유난히도 싫다. 그 싫음이 빛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래서 밤이 우리를 지배한다. 가을의 볕이 그렇게 따갑고 싫은 것도 오후 햇빛과 같다. 항상 빛을 잃어버리고 그 빛이 가진 생명을 잃어버리는 계절에는 우리는 항상 빛을 싫어한다. 그 빛을 향해 낯을 돌리고 눈을 가린다. 어찌 그 빛을 그리 싫어하는지 그렇게 생명을 거부하는 계절이 지나면 항상 주검의 겨울이 온다. 그 겨울과 그 밤에는 생명과 빛은 없다. 바로 주검의 시간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그 주검의 시간에 우리의 주검을 대신한 완전한 빛이 이 땅에 오셨다. 봄 볕과 같이 아침 볕과 같이 생명으로 가득 찬 영광의 생명의 계절, 생명의 시간을 가져올 그 생명 빛 영광이 King’s Glory다. 우리의 위로와 우리의 안위는 이곳에 있다. 그 빛을 찾고 헤매이던 시간 그 죽음의 어둠을 통과하고 만난 그 빛은 참으로 따듯했다. 그 스물 중턱에 나를 찾은 빛은 온 세상보다 컸고 모든 말들의 말을 담고 있었기에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만나는 그 순간 눈물이 쏟아지게 했다. 그 눈물은 그치지 않았고 그 감격은 멈추지 않았다. 누구나 그 생명의 빛을 만나면 그렇게 된다. 보지 못한 것은 보지 못한 것이나, 그를 본 자 그와 같이 된다. 그를 본 자 그와 같은 빛에 거하게 된다. 빛의 자녀가 된다. 어둠이 만지지도 못한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 빛을 보지 못하였고 보지 못하므로 그 빛에 거하지 못한다.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사랑하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의 빛 그 사랑을 만나야 한다. 그를 본 자 그와 같이 된다. 형제를 사랑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린다. 오직 자신이 아니요 그 빛의 광휘에 휩싸여 빛으로 화한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요 오직 그 빛의 광휘다. 그 빛의 영광이다. 바로 아침의 광휘요. 봄의 광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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