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는 식물들의 빛깔에 관하여
빛과 그 빛을 반사하는 물질의 색은 서로 관련되어있지만 다른 특징을 가진다. 빛은 합해지면 점점 밝아진다. 빛은 여러 색을 더하면 점점 밝아져서 투명한 흰빛이 된다. 빛의 3원색(trichromat of light)은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 이다. 합하면 흰색이 된다. 색의 3원색(trichromat of color)은 자홍색(magenta), 노랑(yellow), 청록(cyan)이다. 합하면 검은 색이 된다. 학교에서 색의 삼원색이 빨강(red), 노랑(yellow), 파랑(blue)라고 교육하는 것은 쉬운 용어를 선택한 것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RYB(빨강-노랑-파랑) 원색이 먼저 알려졌기 때문이다. RYB(빨강-노랑-파랑)가 먼저 알려졌지만 나중에 CMY(cyan-magenta-yellow)가 과학적으로 원색으로 밝혀지고 더 다양한 색의 합성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쇄에서는 잉크의 색을 직접 혼합하지 않고 CMYK(cyan-magenta-yellow-검정: key plate)를 미세한 점으로 혼합하여 사용한다. 모자이크 형태의 타일벽화를 그리는데 그 타일이 미세한 점이어서 합성하면 다양한 색감을 나타내게 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색을 합성을 한다. 잉크를 직접 섞어야 하면 상당히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다양한 색감을 나타내기 위해 거의 모든 색의 잉크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물감을 각각의 색에 맞게 인쇄를 한다면 한 장에 수많은 색을 인쇄하기 위해 수많은 인쇄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현재 발달해 있는 잉크젯과 같이 한 번에 많은 200가지가 넘는 색을 카트리지에 넣어 헤드를 통해 인쇄한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그런데 잉크젯이나 레이저 프린트 모두 컬러를 인쇄하는데 다양한 275가지 색을 전부 잉크 카트리지에 넣고 사용하지는 않는다. 단지 네 가지 색 CMYK(cyan-magenta-yellow-검정: key plate)을 모자이크 식으로 배치하여 빛이 멀리서 볼 때 섞이는 성질을 이용하여 인쇄를 한다. 사실 magenta는 우리말로 번역이 되지 않는 색이다. 자홍이라고 하는데 보라(violet)가 섞인 빨강이다. 사실 이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 없다. 색에 대한 통합된 용어가 정착이 되어야 하겠다. Cyan도 청록이라고 하지만 사실 하늘색에 가깝다. 어두운 하늘색이 cyan이다. 또 때로는 민트색이라 불릴 때도 있다.
빛은 태양빛과 같은 빛 자체를 말한다. 태양은 완벽한 흰색은 아니고 약한 주황색을 띄는 흰색이다. 이를 주광색이라고도 한다. 그냥 낮에 비취는 빛의 색을 뜻하는 한자어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광원에서 나오는 빛은 별 빛이나 태양 빛 또는 연소하는 빛 또는 화학반응의 빛 또는 전기에 의한 빛이다. 모든 빛은 그 온도에 따라 빛의 색이 달라진다. 빨강보다는 노랑이 그리고 노란 빛보다 일반적으로 푸른빛이 온도가 높다. 열에 의해 달아오르면 금속은 빛을 낸다. 그 빛은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온도에 따라 붉은 빛에서 노랑으로 그 색이 변한다. 물질들은 탈 때 색을 낸다. 이렇게 탈 때 내는 색은 물질에 따라서 색이 다르다. 이것을 불꽃반응이라고 과학시간에 배운다. 서양의 마녀나 마법사들은 이런 물질이 불에 의해 탈 때 내는 빛이 다른 것을 이용해 마법처럼 꾸미기도 했다. 나트륨은 노란색 빛을 낸다. 가스렌지에 소금을 던지면 푸른 가스불빛이 노란 빛으로 바뀐다. 이 불빛이 밤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다. 또 구리는 청록색의 불빛을 낸다. 인은 청록색의 불빛을 낸다. 인은 불꽃을 만나서 타기도 하지만 물을 만나도 탄다. 보통 사람들이 도깨비불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인과 수증기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진홍색을 내는 스트론툼도 있다. 이런 현상을 이용해서 요즘에는 캠핑용 불멍 용품도 나온다.
인공으로 만든 빛 중 대표적인 것은 전깃불이다. 전구의 빛은 전기에 의해 발광하는 것이다. 전기가 지나갈 때 크롬이나 대나무를 구워 만든 탄소 코일이 빛을 낸다. 대나무를 구워 만든 탄소 코일로 된 전구를 처음 만든 사람이 에디슨이었다. 전구의 발명은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켰다. 어두운 밤에 빛을 준 것이다. 그 이전에 있었던 가스등이나 여타 화석연료를 태우는 빛은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 화석연료와 다르게 화제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저렴한 빛이 밤을 밝히게 되었다. 수많은 학생들은 촛불이나 호롱불이 아닌 낮과 같이 밝은 빛으로 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인류가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곳의 밤에 낮을 인공으로 불러와 낮과 같은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기에 의한 인공 광원은 실용성을 넘어 예술에도 응용이 되었다. 수많은 인공 색 광원을 통해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갔다.
빛은 빛 자체다. 빛은 발광을 하는 것이다. 빛이 푸른 것은 그 푸른 빛 자체를 발광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전구의 빛깔은 발광하는 빛과 그것을 둘러싼 투명한 유리나 실리콘 같은 물질에 의해 색이 결정된다. 광원 자체의 색이 아니라 그 광원을 둘러싼 차폐 막에 의해 그 색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빛들은 흡수가 되고 원하는 색만이 유리를 통과해서 나온다. 붉은 유리를 통과하면 모든 다른 빛들은 붉은 유리에 흡수되고 붉은 색만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네온 불빛은 조금 다른데 유리관속에 들어있는 형광 물질들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고유한 빛을 내게 된다. 형광등도 네온 불빛과 그 원리가 같은데 그 색이 흰색에 가깝다.
빛 즉 광선은 파장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빛 즉 광자는 물질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 그 중 파동은 길이와 높이에 따라 물결치듯 흘러간다. 이런 광자의 파동의 차이가 빛의 색을 결정한다. 빛들은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그 빛이 가지고 있는 빛을 스펙트럼 형태로 보여주게 된다. 스펙트럼은 빛의 구성요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지개는 자연의 수증기가 태양빛을 산란시켜 그 스펙트럼을 공중에 그리는 것이다. 수증기의 층이 프리즘 역할을 하면서 또 빛이 인쇄되는 종이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무지개가 항상 둥근 이유는 아마도 둥근 지구에 가로막혀 태양의 빛이 둥글게 지구에 퍼져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상이 맺히면 그것이 둥근 것이다. 그리고 수증기의 층도 둥근 형태로 지구의 공기층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지구가 둥글고 수증기가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무게에 따라 배열되는 특성으로 그 무게가 큰 것은 아래에 작은 것은 위에 뜨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수증기 즉 물방울은 무게에 따라 여러 층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이 지구의 표면이 결국 둥글기 때문에 둥글게 분포하게 된다. 그 수증기의 층에 뿌려지는 빛도 또한 그 둥근 인쇄지(수증기층)에 둥글게 인쇄가 되는 것이다. 사실 수증기의 입자가 무게의 차이를 가지고 층을 형성하지 않으면 우리가 보는 무지개의 빛의 산란굴절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물방울은 둥글게 존재하는데 그 둥근 구체를 통과하면서 빛이 굴절산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수증기 입자의 크기에 따라 통과시키는 빛의 파장도 달라지게 된다. 이것이 수증기의 입자 층을 따라 층을 이루고 나타나면 예쁜 무지개의 띠가 되는 것이다. 구름과 같은 작고 빽빽한 수증기들은 모든 빛을 반사를 한다. 그래서 대부분 흰색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 짙어지면 넓게 되어 하늘 전체를 가리면 검게 된다. 빛 자체를 차단해서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다. 무지개가 나타나려면 구름보다는 훨씬 더 큰 물 방물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지개는 비가 온 후에 나타나거나 폭포처럼 수많은 물방울들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있어야 나타나게 된다. 프리즘을 통과하면 빛은 그 파장의 길이에 따라 순서대로 구성하는 색을 나열시키게 된다. 이는 빛이 파장이며 그 파장의 길이가 서로 다른 것이다. 가시광선은 붉은 계통이 그 파장이 가장 길다. 그리고 보라색 계통이 가장 짧은 파장을 가진다. 붉은 계통의 색보다 조금 더 파장이 긴 광선이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파장이다. 그것을 적외선이라고 부른다. 적외선은 일반적으로 열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온도를 높인다. 보라색보다 조금 더 짧은 파장을 가지는 광선은 자외선이라 부른다. 자외선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이 아니다. 파장이 짧아서 만나는 물질들을 파괴하는 에너지가 강하다. 그래서 자연적인 소독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보는 색이라는 것은 빛을 뿜는 발광체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물체들은 대부분의 빛을 흡수하고 특수한 파장의 빛은 흡수하지 않고 반사를 시킨다. 그 반사시키는 빛들의 종류에 따라 물체의 색이 결정된다. 사과가 빨간 것은 사과가 빨간 사과의 색 외의 태양빛을 모두 흡수하고 오직 빨간 사과의 색만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물감도 이런 원리로 만든다. 원하는 색 외의 모든 색의 빛을 흡수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을 섞으면 그 색이 점점 어두워지다가 결국은 검은 색이 되는 것도 여러 색 모두를 흡수하고 아무 색도 반사를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빛의 색은 섞이면 점점 밝아진다. 여러 가지 빛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물감의 색은 섞으면 섞을수록 여러 빛을 흡수하게 됨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물감을 섞을 때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빨강물감과 파랑물감을 섞으면 보라가 되는데 빨강의 반은 흡수하고 파랑의 반도 흡수하고 빨강과 파랑을 그 이전의 반만 반사하면 그 두 색이 섞여서 보라색이 되기 때문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빨강과 파랑을 정확하게 반을 섞는다는 조건을 전제로 두어야 다음 설명이 성립이 된다. 빨강을 반사하는 물감은 파랑은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빨강이라는 빛만을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기에 빨간색으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둘을 섞으면 파랑을 전부 반사하지 않고 절반은 흡수를 한다. 파랑을 반사하는 물감도 파랑은 반사하지만 빨강의 절반을 흡수한다. 그래서 새로 만들어진 물감은 각각의 파랑과 빨강 물감에 비해 파랑과 빨강의 절반의 색을 반사한다. 이는 절반의 색이 서로 다른 물감에 의해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파랑의 옅어진 색과 빨강의 옅어진 색 둘이 만나 섞여서 보라가 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이해하고 색을 섞으려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그래서 대부분은 화가들은 그냥 색의 합성의 결과를 외우고 그것을 토대로 조금씩 양을 조절하면서 색을 만들어간다. 조금 더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색의 분포도를 만들고 그 분포에 따라 색들의 양의 퍼센트를 조절하여 색을 만든다. 페인트의 조색을 페인트 업체에 의뢰하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색을 합성할 것 같다.
보통은 빛을 섞는 것과 물감 색을 섞는 것의 결과가 같을 줄 아는데 그것이 달라지게 되는 원인이 빛은 섞으면 더 많은 종류의 빛을 내게 되고 물감은 섞으면 더 많은 종류의 빛을 흡수가게 되어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빛은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완전한 백색이 된다. 이 빛들이 혼합되고 그것들이 섞이는 양을 가감하여 조절하는 방식으로 현대의 인쇄물은 색을 만들어낸다. 이는 인쇄물이고 결과적으로 사진과 같이 반사되는 색을 만들어내지만 그 조색의 방식은 빛의 조색 방식을 따르게 된다. 빛의 섞임을 사용한 잉크의 인쇄라는 것은 양쪽 모두의 요소를 아주 잘 조화롭게 사용하여 만들어낸 예술적 테크닉이다. 이런 인쇄의 방식이나 스크린 조사의 방식을 모두 설명하기는 복잡하다.
위의 내용들은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다 이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 이해하려면 머리만 아플 것이다. 단지 글을 쓰는 내가 필요해서 찾아보고 정리한 것이라 보면 된다.
내가 지금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색 자체의 조색이나 빛의 조색이 아니다. 또 모든 색과 색의 혼합 공식을 모두 나열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지금 살펴보려는 것은 흰빛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위해 빛의 성질이나 조색의 성질을 살펴본 것이다. 흰빛이 만들어지려면 모든 빛들의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골고루 섞여야 흰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물질이 흰색을 가지려면 모든 빛을 흡수하지 않고 반사해야 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빛의 삼원색 RGB(red-green-blue)를 모두 반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치우치지 않고 정확하게 삼원색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흰빛은 자연에 있어 조화를 이룬 궁극의 색이다. 그래서 흰빛은 거룩을 상징하면서 정결을 상징한다. 거룩한 곳에는 점 하나만 있어도 거룩이 성립되지 않는다. 누구나 흰 스케치북을 보면 깨끗하다고 느낀다. 흰 침대보나 흰 수건을 보아도 다른 색의 것보다 더 깨끗하다고 느낀다. 그곳에 작은 티끌이라도 있으면 바로 눈에 보이게 된다. 거룩은 그 자체로 다른 것을 용납지 않는다. 흰 빛은 그렇게 만들어져 거룩으로 홀로 남아 영원의 색이 된다.
겨울눈이 내리면 온통 흰 세상이 된다. 사람이 사는 집이 있거나 인공 시설물이 있으면 그곳은 예외가 된다. 그래도 지붕이나 눈이 쌓일 수 있는 모든 곳은 하얀 눈 솜을 입게 된다. 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는 대부분 완전한 백색이 된다. 나무들도 눈꽃으로 덮이게 된다. 어릴 적 살았던 산골마을엔 봄 분홍 살구꽃이 피기 전까지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쌓이면 주변 산에는 봄이 되기 전까지 하얀 눈이 녹지 않았다. 눈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하얀 눈이 오면 강아지 마냥 눈을 만지며 뛰길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작은 시내에 모여서 얼음과 하얀 눈 위에서 겨울 내내 썰매를 탔다. 얇은 얼음 위에서 타다 얼음이 깨지면 발이 젖어 어는 듯 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얼음 위에 모닥불을 피우고 양말을 신은 채로 말리다, 양말이 타고 발을 데였지만 마냥 즐거운 어린 송아지 뜀박질은 계속되었다. 모닥불 위 양말에서 김이 나듯 아이들 속에는 열기가 있어 겨울 세상을 덥게 만드는 듯 했다. 이런 어림은 그 누구도 멈추거나 통제 못하는 에너지의 함축이다. 사계절을 이 어림은 멈추지 않는다. 그 호기심과 주체 못하는 에너지는 몸을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요동하게 만든다. 겨울도 그들을 얼릴 수는 없다. 놀다 열이 오르면 목이 말라 하얀 눈을 뭉쳐 먹곤 했다. 환경오염이 없던 시절 산골의 하얀 눈은 1급수에서 퍼 올린 물보다 더 깨끗했다. 그 하얀 눈이 녹으면 열기도 식어지고 목마름도 적셔주었다.
수증기가 얼면 하얀 눈이 되고 수증기가 응축된 물이 얼면 얼음이 된다. 흰 눈이 내려서 얼음 위에 쌓이면 단단해지고 그것도 한낮 햇빛을 만나면 녹으며 얼음에 달라붙어 얼음이 된다. 하얀 눈도 얼음도 확대해 보면 모두 얼음이다. 그 빛이 투명하다. 그런데 눈의 결정들이 모여서 쌓인 것은 흰색이다. 눈의 결정들이 빛을 산란시키며 반사하는데 그 색이 희다. 그 눈이 겨울 위에 쌓이면 모든 것은 하얗게 정화된다. 모든 다른 색들을 눈 솜이 하얗게 덮어버린다. 그 하얀 솜은 나뭇가지에 바람이 날리는 모양을 새기며 붙어 흰 눈꽃이 된다. 하얀 눈이 오는 날이면 온 산은 어김없이 흰 눈꽃을 피운다. 하얀 눈이 녹으며 달라붙어 얼어가며 흰 눈꽃은 완성이 된다. 단지 눈이 눈의 결정으로 날리기만 해서는 흰 눈꽃이 될 수 없다. 땅에 떨어져 쌓이는 것은 별 다른 도움 없이도 쌓일 수 있다. 그러나 흰 눈꽃은 눈의 일부가 녹아 물이 되고 그것이 다시 눈의 결정을 만나 차가워져 어는 것을 반복해야 피워진다. 매섭고 차운 바람이 불며 녹은 눈을 다시 얼리지 않으면 피워질 수가 없다. 흰 눈꽃은 눈이 흘린 눈물로 눈과 눈을 붙여 바람의 조각으로 만들어지는 예술품이다. 결코 눈물과 시련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모든 것이 죽어 얼어붙은 겨울의 한가운데에서만 피어내는 순결의 흰 눈물 결정이다. 하얀 눈의 결정은 하나하나가 투명한 얼음 꽃의 모양이다. 그 꽃의 모양도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 그 꽃들이 나무에 모여 피어 흰 꽃송이가 되고 흰 꽃다발이 된다. 흰 눈꽃은 맑고 찬 새하얀 하늘색을 배경으로 핀다. 땅을 자신의 색으로 덮어 모두 하얗다. 하늘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정결의 색 하얀 눈이 온 세상을 하늘나라로 만든다. 흰 눈꽃이 이리도 시리고 아프게 피는 것은 하늘의 사람과 그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고난과 핍박이 아니면 결코 피어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아리고도 서러운 타향인 땅에서 고향인 하늘을 그리며 눈물로 흰 꽃을 피워냈다. 겨울 한풍의 십자가를 지고 나무에 달려 저주를 당한 목수의 꽃이 흰 수묵화처럼 온 누리를 희게 채색하였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무에 달려 그 목수의 남은 고난을 당하였다. 그 고난의 흔적과 주검의 흔적이 흰 눈꽃이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의 결정으로 연결되어 한 몸이 되고 그 나무의 꼭대기 머리에는 그들이 사랑하는 목수의 꽃이 가장 춥고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사랑 아림으로 희게 피어났다.
흰 백합, 흰 장미, 스테파노티스, 흰 안개꽃, 흰 아네모네, 흰 무궁화, 흰 제랴늄, 흰 아카시아, 펄 다이아몬드 장미, 알스트로메리아, 화이트 리시안셔스, 데이지, 카틀레야 난초, 아키토 장미, 페퍼화이트, 흰 카라, 흰 라일락, 크리산태뮴, 게르베라 데이지, 스위트 피아, 리시안투스, 흰 튤립, 흰 프리지아, 가드니아, 페오니, 벤젤라 장미, 흰 수국, 흰 철죽, 흰 동백, 흰 오얏 꽃, 흰 배 꽃, 흰 사과 꽃, 흰 도라지 꽃, 흰 감자꽃, 흰 부추꽃, 흰 파 꽃, 흰 냉이꽃, 쑥갓 등 수많은 흰 색의 꽃들이 있다.
산속에는 흰 초롱꽃, 해변국화, 흰 제비꽃, 풀로초, 아스타, 민미구리낚시, 가는장구채, 서양등골나물, 소국, 쉽싸리, 백일홍, 미국까마중, 포천구절초, 털이슬, 한련초, 개쑥갓, 모시꽃, 민졸방제비꽃, 흰 도금향, 흰 아카시아, 흰 나리, 애기나리, 흰 붓꽃, 약모밀(어성초), 망초, 개망초, 미국자리공, 자리공, 흰 자리공, 눈개승마, 맥문동, 개맥문동, 조령으아리, 흰범꼬리, 흰꽃여귀, 계요동, 질경이, 갯까치수영, 사위질빵, 상아, 사상자, 뚝갈, 명아자여뀌, 참취, 이질풀, 도깨비가지, 노랑하늘타리, 참깨, 풀란, 흰여로 구릿대, 산궝의 다리, 흰 수련, 털별꽃아재비, 실루카, 톱풀, 바위떡풀, 설악초, 장대냉이, 기름나물, 가는오이풀, 전호, 탑꽃, 서양톱풀, 참반디, 쇠털이슬, 흰 연꽃. 광대수염, 미나리 냉이, 냉이, 둥굴레, 토끼풀, 튼두루미꽃, 산마늘, 울릉국화, 선갈튀, 헐떡이풀, 달래, 백선(봉선), 매화노루발, 큰까치수염, 당귀, 흰 패랭이, 외대의아리, 산구절초, 남산제비꽃, 덩굴꽃마리, 졸방제비꽃, 덩이괭이밥, 우산나물, 도깨비가지, 산꿩의다리, 흰조뱅이, 난쟁이 아욱, 실루카 갯무, 종지나물, 은대난초, 개갈퀴, 풀솜대, 장대나물, 바위취, 별꽃, 흰노루오줌, 큰별꽃, 선슴바귀, 은방울수선화, 쇠별꽃, 창질경이, 개질경이, 털질경이, 홀아비꽃대, 옥녀 꽃대, 개선갈퀴, 백작약, 알리섬, 파드득나물, 까치수염, 참마, 하늘타리, 흑삼릉, 접시꽃, 흰민들레, 유럽전호, 벼룩이자리, 황새냉이, 큰개미자리, 방풍, 장구채, 이끼용담, 불로화, 개미자리, 갯개미자리, 흰 수선화, 민졸방제비꽃, 애기나리, 광대수염, 머위, 말냉이, 남산제비꽃, 참꽃마리, 산자고, 솜나물, 잔털제비꽃, 흰젖제비꽃, 종지나물, 만주바람꽃, 봄맞이꽃, 보리수나무, 좁쌀냉이, 돌단풍, 홀아비꽃대, 옥녀꽃대, 옥스아이데이지, 황새냉이, 개별꽃, 흰민들레, 서양말냉이, 누운애기별꽃, 스파티필름, 큰개별꽃, 설난, 산괴불주머니, 단풍마, 접란, 까마중, 털별꽃아재비, 가우라, 설악초, 섬쑥부쟁이 등 수많은 흰 꽃들이 계절을 따라 피어난다. 산을 걷다 만나는 작은 앉은뱅이 꽃들을 보면 그 순간 다리의 아픔도 숨참도 잊어버린다. 많은 경우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인사를 해오면 앙증맞은 아이가 웃음 머금은 햇살을 비추는 것 같다. 아무 바람 없이 마냥 행복하고 그래서 쳐다보는 나도 그런 양 해맑게 맞아주는 웃음이다. 산의 작은 꽃들 큰 꽃들, 나무에 높이 핀 꽃들, 모두 그렇다. 순백의 꽃들은 순백의 미소를 머금는다. 나도 그들을 보며 순백의 미소를 머금는다. 보는 그대로 나도 변한다. 그를 보며 그를 보는 만큼 나도 그와 같을 것을 안다.
어떤 꽃들은 순백에 붉은 무늬를 가진 것들도 많다. 꽃 중 붉음은 피이며 흰 백색은 피 흘린 자가 입었던 세마포(린넨)다. 표백한 백색의 세마포다. 흰빛은 순백의 상처고름이며 그와 함께 피뿌림을 받은 세마포의 색이다. 흰 순백의 세마포에 떨어져 물든 피는 선홍색이며 굳어 검붉게 된다. 한번 물들면 지우기 힘들다. 흰 순결에 상처가 나 순결을 잃은듯하나 그것이 자신의 흠으로 뿌려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죄를 대신하여 뿌려진 것이라면 가장 선한 순백이다. 피에 표백한 세마포를 빤다면 반드시 붉어질 터 그러나 그것을 깨끗고 희다고 하는 것은 그 피가 무죄한 순백의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의 고결을 입고 그의 순백으로 씻은 피의 세마포, 붉으나 순백의 색인 그를 옷 입어 산다. 나의 모든 것은 이로 말미암으며 나의 모든 존재의 뿌리는 이곳에서 출발한다. 가자 열방으로 그 뿌리를 뻗어 열방의 피를 씻을 순백의 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