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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2. 구원

by 에스겔

[01.3.2.1. 구원의 필요성], [01.3.2.2 구원의 성격], [01.3.2.3 구원의 계획]

[구원의 계획]을 설명하기에 앞서 [구원의 성격]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에 맞는 [구원의 계획]에 대한 설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성격]을 설명하려면 [구원이 무엇이며 구원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사실 인간 아이들을 구해내야 하는데 그들을 왜 구해야 하느냐 질문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러나 구하러 갔는데 그 아이들이 구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또는 우리를 거부하는 시간이 오래 지나 우리를 잊어버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자신들이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잊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류는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거부하고 떠나 있었던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살아있는 거의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은 우리를 거부했다. 우리를 거부하고 우리의 보살핌도 거부했다. 오직 뱀의 심보 즉 도둑놈의 심보를 가지고 이기적인 욕망을 향해 달렸다. 그 욕망으로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고 억압하며 그 결국에는 상대의 생명까지 빼앗아 착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들은 독사 새끼들이 되었다. 악마 새끼들이 된 것이다. 이들은 교화되지도 않고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도 그 자비를 조소하고 비웃는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도 죽었다. 그 후대에는 인간들이 우리의 존재를 잊기로 했는지 우리를 찾지 않았다. 단지 아담의 후손 중 셈과 그의 아들 에노스의 후예들 중에 우리를 찾는 자들이 있었다. 우리를 찾는 자들은 아주 극소수였다. 그 소수가 한 사람으로 좁혀졌고 그의 이름은 후에 언급하겠지만 노아였다. 그에게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의 시대에 찾아왔던 홍수를 통해 우리는 구원의 언약을 주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인해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인류를 이전과 같이 물로 심판하지 않고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었다. 그 길은 언어의 혼잡이었다. 어떻게 언어의 혼잡이 그들에게 구원이 되었는가는 뒤에 차차 설명하겠다.


다음화 [01.3.2.1. 구원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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