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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3. 2024
대학병원
입원 생활의 시작, 꽃은 안 돼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내려왔다. 그때의 나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걸까? 상황 판단이 좀 느렸다. 그저 눈치로 뭔가 심각한 상황이구나 하고 짐작만 했다.
" 엄마, 언니. 울지 마요."
" 너 죽다 살아났어.
엄마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이제 김서방 전화 오면 무서워! "
엄마의 말에 과거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지만 눈물 흘리지는 않았다.
내 앞에서 울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애써 태연한 척했다.
" 바쁜데 다들 가봐. 이제 살아있는 거 확인했으니까."
" 아가씨, 몸조리 잘하고요. 제가 기도 많이 할게요."
" 네, 네. 이제 얼른들 가봐요."
엄마만 내 보호자로 남고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각자의 자리.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닌 나의 선택에 의해 주어진 것. 하지만 지금의 나는 불가항력의 힘에 의해 원하지 않는 자리에 누워있다.
3인실 병실. 내 침대는 화장실 바로 앞이다. 화장실엔 변기와 세면대 그리고 그 옆에 샤워기가 달려있었다. 환자도 싸고, 씻어야 하니까.
' 근데 내가 씻을 수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때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이마의 실밥을 뽑을 때까지 물이 닿으면 안 된단다.
별수 없이 꾀죄죄한 생활이 되겠군. 왠지 더 찜찜한 느낌이 밀려오는데 간호사가,
"환자분, 팔 들어보세요."
"네."
"이번에는 다리 들어보세요"
"네."
둘 다 잘 움직여주니 다행이다. 하지만 수술방에서도, 중환자실에서도, 일반병동에서도, 세 번씩이나 내 팔다리의 움직임을 확인하다니. 병원의 정해진 루틴이 있겠지만 말이다.
'저 팔다리 잘 움직인다고요. 이제 그만 좀 시키세요. '
목젖까지 차오르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아니 사실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손오공의 머리띠, 긴고아의 고통이 이러할까? 내 머리를 꽉꽉 죄어오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살아오며 이제껏 느껴본 두통 따위는 이단옆차기로 날려버리고, 뺨 싸다구를 수백 번 때릴 판이었다.
" 으윽... 저 머리가 너무 아파요."
"사고 충격으로 머리가 많이 아프실 거예요."
" 돌아 누울 땐 어지러워요."
" 어지럼증도 시간이 지나야 나아지실 거예요."
" 네..."
" 식사하시고 약 잘 챙겨 드시고요."
그렇게 의식을 되찾은 날의 하루가 지나가고, 그 뒤로는 반복된 병실 생활이 이어졌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계속됐다. 그 옆에서 나를 돌봐주시는 엄마. 걱정해 주는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더 힘을 냈다.
삼일차 되는 날 병실로 꽃이 배달됐다. 오랜만에 보는 꽃. 봄에는 역시 프리지어지! 노랑 꽃잎을 보니 두통도 조금 사라지는 듯했다. 고통과 슬픔이 공존하는 커든 안. 그 공간이 노란 색채로 인해 한껏 밝아졌다. 츤데레 남편의 서프라이즈였던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