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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Jun 03. 2024

한방 병원 701호

대학병원에서 한방병원으로

 환자 복 입고 커피 사러 다니고, 병원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작품도 보고. 왔다 갔다 사람 구경하면서 대학병원에서 며칠이 더 지났다. 이렇게만 보면 나이롱환자 소릴 듣기 딱 좋겠지만, 환자의 본분은 잊지 않았다. 나는 꾸준히 어지러웠고 몸 이곳저곳이 아팠으니까.

 이마의 봉합 부위를 하루에 몇 번씩 소독하고, 약을 먹고, 복시로 인해 안과 검사를 받았다. 피부과, 안과 게다가 주치의 선생님은 뇌 전문의. 3개의 분과가 나라는 환자로 인해 통합되었다. 하하...


 나의 주 진단명은 <외상성 지주막하출혈>이었다. 교통사고와 같은 외부 충격으로 인해 뇌를 둘러싼 경막 안쪽의 뇌혈관이 터지면서 뇌에 피가 고이는 질환이란다. 충격이 강했던 걸까? 사고의 기억은 단 하나도 없다.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뇌 스스로 기억을 삭제했나 보다.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의 기억과 지인들의 입을 통해 들은 사고의 순간이 생생하게 연결되어,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을 테니까.


  

"보시면 알겠지만 뇌 속은 깨끗합니다."

  '네. 제가 뇌순녀 이기는 하지요.'

 평소라면 농담을 건네고도 남았을 테지만, 뇌 사진을 앞에 두고 심각하게 말하는 의사 앞에서 까불 순 없었다.

  "복시 증상은 안과 담당 선생님이랑 진료 보시면서 계속 확인하시면 되고, 이마 흉터는 피부과 선생님께서 한 달 뒤부터 레이저 치료 하신다고 하네요. 통원치료받으시면 되겠고. 그러니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어요."

  "네? 벌써요?"

  "네. 이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끝났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꽉 채운 CT 사진이 뇌 속에 고여있던 피가 다 빠져나갔다고 말해줬나 보다. 봐도 잘 모르겠다만. 이건 내 뇌가 순수해서가 아니다. 나의 두상이 이쁘게 찍힌 흑백 사진이 불명확해서 그렇다. 그냥 그렇다고 치자.

 그렇게 퇴원이 결정되고 이틀 후에 퇴원을 했다. 대학 병원에 입원한 지 10일 만이었다.


 하지만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이었다. 근육통과 어지럼증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레이저 치료도 받아야 했다. 퇴원하는 나에게 3개의 분과는 3개의 예약 스케줄을 잡아주었다. 의사 선생님 진료 스케줄이 있는 날로 각각...  이런저런 이유로 집으로 곧장 가지 못했다. 집에 가봤자 몸 회복은 뒷전일 것이고, 두 아이 케어에 정신없을 게 뻔했다. 무겁고 어지러운 머리로 통원치료를 오가는 것도 무리일터.

 그런 이유로 대학병원 근처,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있는 한방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두 아이에 대한 걱정은 남편과 시어머님의 도움으로 덜어낼 수 있었다.

 

 10일 동안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 주무시며 고생하신 엄마. 몸도 약하시고 잠자리에 워낙 예민하신 분인데, 얼마나 애쓰셨는지 나도 안다.  큰 병원에 누워있는 딸에게 내내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시던 엄마.  남편과 한방병원으로 가는 나를 보며 마지막까지 그런 눈빛을 보내셨다.

  "엄마, 잠도 잘 못 주무시고.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얼른 집에 가서 푹 쉬어요."

  "이그, 아픈 네가 더 고생이지. 나는 괜찮아. 너 몸 회복이나 잘하고 나와. 알았지? 이렇게 그냥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보호자 없어도 된다고는 하지만...."

 걱정스러운 말과 다르게 뒤돌아 지하철 역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딸의 무사함이 주는 가벼운 마음이라 치자.  고향으로 내려가시는 엄마를 그렇게 배웅하고 한방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떼온 서류들과 검사 기록이 저장된 CD를 제출하고 간단한 수속을 마쳤다. 의사 선생님에게 현재 증상들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정했다. 그리고 올라간 입원실 701호. 4인실 에서의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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