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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Jun 10. 2024

할머니의 미스터 트롯

방장 할머니

 701호 문은 훤히 열려 있었다. 입원실에 들어서자 출입구 바로 오른쪽에 할머니 한 분이 티브이를 보며 누워계셨다. 그분의 침대 맞은편에 20대로 추정되는 아가씨 한 명 있었다. 내내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서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있는 동안 알게 된 바로는 그랬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개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두 개중 하나는 할머니의 옆자리인 데다 벽이랑 붙어 있었기에 아가씨 침대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10일 동안 생긴 짐이 이리도 많았던가? 침대 머리맡에 붙어 있는 개인 옷장 겸 수납장에 옷과 가방, 세면도구 등을 정리했다. 약봉투에 과자까지 자잘한 짐이 많았다. 그때 할머니가 한쪽  다리를 끌며 다가오셨다.

"새댁은 어쩌다가 왔어? 교통사고?"

"아, 예..."

"차 타고 가다가 접촉사고 났구나? 여기 그런 사람 태반이야."

"아뇨, 저는 길 건너는데 오토바이가 치고 가서요..."

"ㅅㅂ 썩을 놈들 뺑소니여? 고것들 깜빵에 쳐 넣어야지!"

"아... 뺑소니는 아닌데 무면허에 청소년이라... 좀 복잡해요. "

 짧은 시간 동안 엑기스만 뽑은 대화가 오갔다. 할머니는 고관절 수술을 앞두고 계시고, 옆 침대의 아가씨는 데이트하다가 차량 접촉 사고가 났는데 이틀 뒤면 퇴원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간 스쳐간 환자들이 많았는지 교통사고에 관해서 특히, 보험 관련해 해박한 지식을 뽐내셨다. 요즘 가벼운 접촉 사고는 길어야 일주일, 대부분은 그 안에 퇴원한단다. 아마 할머니는 나도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에 하나라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

"창가라 좋을 거야. 덜 답답하고. 어여 누워, 누워! 그래야 빨리 낫지."

"네. 감사합니다."

촤르르-

 짧지만 강렬했던 대화를 차단이라도 하듯 얼른 커튼을 쳤다. 네모난 사각 공간이 비로소 완성되자 편안함이 조금 느껴졌다. 병원 옮기느라 오전 내내 신경 쓰고 움직여서 몸이 긴장됐었나 보다. 몸을 눕히자마자 어지럼증이 심하게 몰려왔다. 당최 없어지기는 하려는지.


 창가 자리라 해도 전망이 좋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 상가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정도는 구경할 수 있었고 답답하게 벽으로 막힌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 창문 때문에, 나는 입원해 있는 동안 내내 환기 담당이 되었다. 세 번의 식사 후에 잠깐씩 창문을 열어 음식 냄새를 빼야 했고, 창문을 열었다가 담배 냄새라도 들어올라 치면 얼른 닫아야 했다. 다리가 불편하신 방장 할머니의 주문이었다. 그 병실에 제일 오래 계셨기에 방장이라 칭했지만, 실제로도 옆병실과 701호 바로 앞 식당을 오가며 동네 반장처럼 큰 목소리를 뽐내셨다.

 방장 할머니 덕분에 701호 신입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은 하루도 안 걸려 다른 병실로 퍼져나갔고, 운동삼아 복도를 오가는 할머니들도 식당 영양사님도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장 할머니가 옆방에서 얻어다 주신 간식


 방장 할머니는 주로 옆 병실 할머니와 운동을 다녀왔고, 침대를 지키고 있을 땐 미스터트롯을 주구장창 틀어놓았다. 한번 송출된 방송은 재방에 삼방을 넘어 몇 번까지 하는 건지... 이용식 씨와 예비 사위가 같이 부른 노래를 외울 지경이었다.

 어떤 날은 옆 방 할머니와 싸우셨는지 씩씩거리며 들어오셔서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그 할머니 뒷담화를 진득하게 하셨다. 그땐 할머니와 나 둘 뿐이었는데...

 또 다른 날은 옆방에 입원한 누군가에게 얻어온 취떡과 삶은 계란등을 가져다주시며 옆방 냉장고는 음식이 썩어 난다고 걱정하셨다.

 여하튼 아가씨는 있는 듯 없는 듯 목소리만 존재하다 퇴원을 했고, 그 뒤로 무릎 관절 수술을  할머니 한 분과 교통사고로 아들과 동반 입원한 60대 아주머니까지 이틀 차이로 들어오면서 4인실이 꽉 차게 되었다. 이들과 지냈던 701호에서의 3주는 방장 할머니로 인해 시끄러우면서 참으로 복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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