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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Jun 24. 2024

701호와 헤어질 결심

공부가 어려워

어느 날 친구에게 안부차 전화가 왔다.

 "미쌍아, 몸은 좀 어때? 잘 쉬고 있어?"

 "어, 괜찮아지고 있는 중이야. 전화 줘서 고마워."

 "근데 병실이 씨끌벅쩍 하네. 뭐 하는 중이야?"

 "응. 나 지금 참외 깎고 있어. 할머니들 드려야 해. ㅎㅎ"

  "아니, 그걸 네가 왜? ㅋㅋㅋ"


 친구는 내 모습이 상상된다며 웃었고 나 역시 내 모습에 황당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화 통화를 마치며, 곱게 깎은 참외를 종이컵에 각 두 개씩 담아 병실 식구들에게 배달했다. 내가 제일 막내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항상 목소리만 큰 방장할머니는 고관절 수술을 앞둔 터라 한쪽 다리를 절룩이셨고, 조선족 할머니는 보조기에 의지하고 걸어 다니셨으니 말이다. 그 두 할머니의 다리역할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가 치료를 위해 부재중일 때는 60대 아주머니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다. 그냥 자발적으로 한 일들이었다. 좋아서라기보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까?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한 공간 안에서 몇 날 며칠을 보내야 하는데, 내 성격 상 그렇게 움직이는 게 당연했다. 애초에 처음 입원했을 때 커튼으로 결계를 단단히 쳤어야 했었다. 그랬다 하더라도 얼마 안 갔을 테지만.


 한번 열린 커튼은 닫힐 줄 몰랐고 방장 할머니가 운동이나 치료를 가시거나, 잠이 드셔야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만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할머니가 잠드셔도 할머니의 티브이는 절대 잠들지 않았다. 재방에 삼방까지 흘러나오는 미스터트롯.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 할머니의 미스터트롯을 꺼두어도 새벽녘에 어스름 빛과 함께 흘러나왔다. 아침잠 없으신 두 분의 할머니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시거나 각자 티브이 시간을 즐기셨다. 성능 좋다는 이어 플러그도 소용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가 왔다. 어지럼증이 완전히 나아진 것도 아니었고,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적절하게 쉬는 것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당시 내가 저질러놓은 일이 있어, 주 1회 저녁 7시에 ZOOM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이지만, 꾸역꾸역 수업을 이어가지 말고 다음 차수로 연기할 것을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그 수업을 왜 그토록 쥐고 있었는지, 아직도 그때의 판단에 후회가 된다.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그 수업을 들었다면 지금 결과물이 더 나았을까? 현재도 나아지지 않고 좋은 결과물이 없는 것을 보니, 그때의 상황을 자꾸만 핑계로 대고 싶어 진다. 결국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과제로 읽어야할 책


 병원 입원실에서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 과제를 제출하고, 주에 1회 2시간씩 수업을 듣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정감 가고 따뜻한 병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나는 예민해져 갔다.

 그리하여 나는 헤어질 결심을 했다.  701호와 헤어질 결심. 

처음엔 조용한 다른 병실로 옮기고자 했다. 하지만 병원 측에선 내부 공사로 입원실 몇 개를 못쓰는 상황이라 불가능하다 했다. 이런 이유들로 근처 한방 병원을 다시 물색하고,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조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추구한다는(해당 병원 원무과장님 피셜) 곳으로 옮겨가게 됐다.




 이 당시 듣던 수업은 퇴원 후에도 열심히 수강했고, 다행히 선생님과 글벗들이 상황을 배려해 주신 덕분에 6개월의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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