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한방 병원 중 서너 곳에 전화를 돌렸다. 그중 한 곳을 선택하기까지 병원 원무과장의 적극적인 유치가 크게 작용했다. 전화 통화에서 느껴지는 자부심. 와서 지내보고 씨끄러우면 당신이 책임지겠다고.
그렇게 옮겨 간 한방 병원은 아파트 단지와 근접해 있어 조용했다. 상가와 술집이 몰려있던 이전 병원과 주변 분위기부터 달랐다. 인근에 상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주택가를 끼고 있어 그런지 저녁시간엔 사뭇 고요하기까지했다.
701호에 갈 때보다 더 늘어난 짐을 303호에 풀었다. 이번에도 출입구와 떨어진 창가 자리. 뷰 맛집은 아니었지만 창이 주는 개방감을 놓치기 싫었다.
창가에 읽어야 할 책들을 주욱 쌓아 놓고 노트북을 연결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정적감이던가! 막혔던 글이 줄줄 써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열어놓은 한글 파일에선 공허함이 느껴졌다.
시끄러운 곳에 이미 적응돼서 그런 걸까? 상대적인 공허함인가? 처음엔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며칠을 그 고요함 속에 지내면서 한 가지 깨달은바가 있었다.
'아, 나는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입원실에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4인실 병실엔 한 자리만 빼고 다 들어차 있었으니까. 우선 출입구 쪽 침대에는 20대로 추정되는 아가씨가 휠체어를 이용해서 왔다 갔다 했다. 거동이 불편한 탓인지 거의 누워만 지냈고 일과 관련된 전화통화를 자주 했었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 빼고는 거의 커튼이 쳐져 있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내 바로 옆 침대는 정체를 추측할 만한 단서조차 없었다. 목소리도 얼굴도 못 봤으니 말이다. 환자가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시끄럽고 북적대던 701호가 싫다고 뛰쳐나왔으면서, 단 며칠 만에 방장 할머니 목소리가 그리워질 줄이야. 눈을 맞추고 웃고 떠들어대던 그 시간이 303호에는 없었다. 귀에 거슬리던 미스터트롯은 사라졌지만, 소통의 부재가 내 마음을 거슬리게 했다. 소통이 전혀 없는 병실에서 나는 그저 무의미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책을 보고 노트북에 뭔가를 끄적거리다가도 나는 자꾸만 병실을 이탈했다. 몸에 어지럼증은 여전했지만, 기어코 몸을 끌고 휴식 공간으로 갔다. 그곳에서 간호사들과 이야기하고 소파에 앉아 있어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그 공간에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정수기에 물을 담는다는 핑계로, 세탁기에 빨래 돌렸다는 이유로, 그날의 식단표를 보러 가는 척하며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하루는 식단표를 살펴보며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있는데, 남자 환자가 말을 걸었다. 정수기 사용이 서툴러 보였는지 방법을 알려 주시려는 거였다. 그런데 말이 어눌하고 발음이 영 이상하다. 사용법을 알려주고 돌아서 가는 뒷모습 역시 다리 한쪽을 질질 끌고 가는 게, 많이 아파 보였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휴식 공간으로 가는데 원무과장이 말을 건네왔다. 얼마나 반가운지!
" 미쌍이님, 조금 전에 본 그 남자 환자분, 미쌍이 님이랑 같은 걸로 입원하신 분이에요.
외상성 지주막하출혈. 저분은 신경이 다리랑 언어 쪽으로 건드려졌는지... 증상이 심하지요?
미쌍이 님은 그만하길 정말 다행인 거예요."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환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원무 과장을 만나 그 말을 듣지 못했다면 나는 평생 사고를 원망하고, 내 신세를 한탄하며 살지 않았겠는가! 그 환자로 인해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 것은 모두 소통에서 나온 결과였다.(그 분 역시 지금의 나처럼 쾌차하셨길 바란다.)
그동안 내가 자각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을 대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었지만 전적으로 월급형 E였을 뿐. 그 일이 나에게 적합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퇴사한 뒤로친분이 있는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만나지 않았던 터. 그렇게 병실에서 드러난 나의 모습은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나는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여전히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앞뒤 안 맞고 말도 안 되는 글을 끄적이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