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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Jul 15. 2024

할머니의 은팔찌

드디어 혼자가 아니야

 이틀정도 혼자 지냈나 보다. 텅 빈 병실이 유난히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매주 듣는  글쓰기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훑어보다가, 심심할 때 읽으려 창가에 쌓아둔 책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701호에서 그토록 바랬던 조용한 병실인데 집중이 안 됐다. 애꿎은 책만 연신 펄럭거리다 휴대전화를 잡았다. 그 마저도 잠잠했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에 가있는 오전에는 그 쓸쓸함이 더했다.

 "엄마, 밥은 먹었어요?"

 "엄마, 숙제 다 했어요."

 "할머니랑 문구점 가서 준비물 사 오고, 시장에서 맛있는 것도 사 왔어요."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전해주던 휴대전화가 조용했으니 말이다. 이어폰을 꽂고 보는 티브이도 재미가 없었다. 혼자라서 그랬을까? 집에서는 늘 혼자이고 싶다고,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는데...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영 심심하고 답답했다.


 오전 물리치료를 다녀온 뒤 하릴없이 병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데, 간호사 하나가 침구 세트를 들고 왔다.

 "오, 누가 새로 들어오시나 봐요?"

 "네에, 새로 오시는 건 아니고, 복도 끝 병실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옮기시는 거예요."

 "아 ... 근데 왜요? 무슨 문제 있대요?"

 "아뇨. 그게 아주머니 네 분이 같이 입원하셨거든요. 관광 가시다가 사고가 나셨대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네 분 같은 병실 쓰라고 양보해 주시는 거예요. 호호."


 그렇게 303호로 오신 할머니는 여든이 훌쩍 넘으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셨다. 작은 체구에 하얗게 쇈 파마머리는 호호할머니를 연상케 했다. 거기에 귀여운 목소리까지.

 "아이고, 내 침대 정리한다고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침구를 정리해 준 간호사 손을 꼭 잡고 인사를 건넨 할머니. 곧이어 내게 눈인사를 하고는 이미 간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저짝 방에 한꺼번에 넷이 들어와서. 내가 이리로 이사 왔어요."

 "네, 어서 오세요. 잘 오셨어요."

 "반겨줘서 감사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에도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할머니.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눈 것도 아니었는데, 며칠간 쌓인 답답함이 한순간에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의 식판을 옮겨드렸다.

 "이이고, 감사합니다. 매번 식판 옮겨주느라고 감사합니다."

 "별것도 아닌데요 뭘."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할머니의 자식들 이야기로 옮겨가고 어느새 할머니의 과거를 지나고 있었다. 마도로스였던 남편은 배를 떠나 노름판을 전전했고, 남편을 대신해 할머니는 종로에서 호떡 장사를 시작하셨단다. 장사가 잘 될 때도 있었지만 비 오는 날과 겨울 추위는 아주 힘드셨단다.  거칠고 갈라진 손끝에 그 시간이 배어있었다. 비가 억수로 오던 날, 아들이 결혼하겠다 데려온 색시감도 그 호떡 가판대에서 맞으셨다고 했다. 노점 근처 약국에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며느리 인사를 받으셨던 . 그 날이 이때껏 잊히지 않는다 했다. 그렇게 살아오던 어느 날, 서울시에서 길거리 노점 정리를 하면서 퇴거 요청에 장사를 접게됐다고.


 "내가 사업하다가 은팔찌까지 찬 여자여!"


 처음 나는 은팔찌가 은유하는 말을 바로 알아 채지 못했다. 사업이 아주 잘 되셔서 은팔찌, 금팔찌 다 사셨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뒤이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멋모르고 장사하다가 감빵도 갔다왔잖아."


 장사를 접고 두 아이를 키우며 살길이 막막하셨던 할머니. 그녀는 백방으로 알아보다 주차장 바지사장 자리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주차장 관리인 겸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쳐서 다짜고짜 구치소에 끌려가셨다고. 직원이 주차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암암리에 유사 휘발유를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작고 여린 분에게 은팔찌가 웬 말이던가!  그 뒤로도 안 해본 것 없이 사셨다고 했다.

 엄마의 고생을 알았는지 자식들 모두 공부도 잘하고 자수성가하셨단다.

 기구한 인생이라고 탓해도 모자랄 텐데, 자식들 엇나가지 않고 잘 큰 것이 제일 감사하다고 하셨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이제 늘그막에 내 몸 아픈 것 말고는 걱정할 것이 없다시며 편안한 얼굴로 감사를 건네셨다.


 "늙은이 얘기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수줍게 웃으시며 내민 손에는 막심 커피믹스 봉지 다섯 개가 들려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한 잔 타다 드릴까요?"

 "그럼 또 감사합니다. 호호호!"

 그렇게 우리는 병실의 온기를 함께 채워갔다.




 제가 퇴원하던 날 아쉬움에 눈물을 훔치시던 은팔찌 할머니. 퇴원하고 잘 계신지 궁금하네요. 할머니의 감사한 마음 저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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