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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Jun 17. 2024

스쳐가는 사람들

701호 환자들

 커튼 속에서 목소리만 들렸던 20대 아가씨는 퇴원을 했고 뒤이어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

 방장 할머니 옆에는 무릎 관절 수술을 하고 오신 할머니가, 내 옆 침대로 60대 아주머니가  입원했다. 뿐이었휑한 병실에 환자가 꽉 들어차니 왜인지 따뜻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게다가, 꽉 찬 것은 침대뿐만이 아니었다. 병문안 온 방문객들이 사들고 온 과일과 음료수 빵 등으로 병실 냉장고도 꽉 찼다. 이야깃거리와 먹거리가 넘쳐나니 방장 할머니도 밖에 있는 시간보다 침대를 지키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나와 둘 뿐일 땐 옆 병실로 자주 마실을 갔는데,

 옆 침대 할머니와 수술에 대한 정보도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은 할머니는 조선족이라 했다. 어린 시절 중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아이들을 낳고 길렀단다. 지금은 딸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산다고. 작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귀여운 손주와 영상 통화 할 땐 수줍음은 사라지고 해맑음만 남아 있었다.

 60대 아주머니는 아들과 데이트하러 갔다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아들과 함께 동반 입원했다고 했다. 아들은 회사 일 때문에 하루 늦게 입원했는데, 집에서 챙겨 올 거나 필요한 건 없는지 전화로 세심하게 물었다. 면회 공간에서 아들과 아주머니의 모습은 다정하고 너무 보기 좋았다. 남편과 사별한 뒤로 사이가 각별해졌다고 했다. (그  사연은 뒤에 풀어보련다.) 엄마를 위해 간식거리를 사다 병실 문 앞에서 건네주고 가는 아들. 그 모자를 보고 있노라면 집에 있는 남편이 보고 싶고 아이들이 절로 생각날 정도로 훈훈했다. 그런 사연과 마음들이 채워져 병실이 따뜻했나 보다.


 하지만 방장 할머니는 그 따뜻함이 달갑지 않았나 보다. 병실이 북적거린 뒤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잘 나누다가 꼭 당신 아들 자랑으로 이어갔다.


 " 우리 아들이 참 효자야. 너무 바빠서 그렇지. 그래서 못 와보는 거지. 진짜 착하고 효자야."


 누가 묻지도 않은 아들 이야기를 술술 꺼내는 할머니였다.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나와 둘이 지내던 며칠과 다른 모습이었다. 훈훈한 병실 분위기에 상대적으로 외로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방장 할머니의 아들이 효자인지 아닌지 판가름할 기준은 없다. 나도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니까. 하지만 할머니가 아들 자랑을 하면 할수록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701호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방장 할머니의 아들은 전화 목소리로만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정말 손꼽힐 정도로 가끔이었다. 심지어, 수술과 관련해 중요한 검사를 하러 큰 병원에 가는 날도 조카라는  분이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늘 대장부 같았던 할머니가 보통의 할머니들처럼 짠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것은 외로움에 사무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아닐까? 아니, 그보다도 자식을 향한 사랑이었던 거 같다. 침대 맡에 이름 석자도 온전히 써있지 않은 낯선 이들에게 아들이 오해받을까 봐, 당신의 상황이 측은하게 여겨질까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아들이 얼굴 한번 안 비추는 것이 조금은 속상한, 그런 푸념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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