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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hong Jul 11. 2020

이 이야기는 10개월간의 사랑 이야기-세 번째

나의 이야기와 소설의 경계선

 별안간 뜨거운 시선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쳐다 보지? 몇 초 안 되는 시간에 여러 상상의 나래에 몸을 담갔다가 이내 용기를 내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곁눈질로 느껴지는 실루엣으로 보았을 때 퀴빈일 줄 알았던 사나이는 퀴빈의 얼굴에 중후함이 가득 더해진 중년의 신사였다. 그는 한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나의 플랫화이트가 염려돼 나를 신경 쓰는 듯했다. 분명 눈초리는 아니고 호기심과 걱정 그 중간의 눈빛이었다. 눈치 빠른 한국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잘 안다. 나는 그에게 어색한 눈짓을 보내면서 단숨에 플랫화이트를 마셔버렸다. 그러더니 그쪽에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의도한 웃음은 아니었던 건지 이내 흡 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쳐다보지 않아도 그 신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 신사 아저씨가 내게 다가오시더니 커피 맛은 괜찮냐고 근데 굳이 빨리 안 마셔도 된다고 리피강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가라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그리곤 본인이 이곳의 오너라며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아일랜드에는 무슨 일로 온 건지, 온지는 얼마나 됐는지 비교적 따뜻하지만 청문회 같은 고루하고 재미없는 질문들만 물어보셨다. 아저씨는 북한에 대해 궁금해하셨고, 이 카페에 한국인은 별로 안온 다하시면서 자주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히셨다. 나는 내가 물렁물렁한 애라는 걸 한방에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쓴 플랫화이트를 단숨에 마시는 걸 봤는데 들통 안 났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아저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에서 말씀하셨다. 본인은 이탈리안인데 아내가 아이리쉬라서 이곳으로 이민을 오게 되셨다는 것, 이 가게는 2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곧바로 나에게 자신의 아들을 소개한다며 두터운 손으로 퀴빈이 있는 자리를 가리키셨다. 나는 그제서야 퀴빈이 왜 고귀하고 여유로워 보였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니 그런 거였구나. 부럽다. 아저씨의 큰 손짓을 더한 요란스러운 소개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가 있는 곳에 그 어떤 찰나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관심이 없던가 아니면 아저씨가 하도 자주 이러셔서 이제 귀찮은 거겠지. 나는 짧은 순간 나를 위한 위로의 혼잣말을 건넸다.


 “엠마”


 지윤은 나를 엠마라고 불렀다. 우리는 같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면식도 없었고 더블린에서 친해진지 한 달가량밖에 안된 풋풋한 친구 사이 인지라 지윤은 애초에 나를 영어 이름인 엠마로 부르는 게 편한 듯했다.


‘“지윤아”


지윤은 더블린에서도 지윤이라는 이름을 썼다. 웬 신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듯했다. 아저씨는 이내 지윤과 나에게 인사를 짧게 남기고 다시 하고 계시던 식기정리를 마무리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아니 오늘 사장이 나한테 뭐라 그랬는지 알아? 주급 날이라서 주급 달라니까 내 표정이 맘에 안 들어서 못주겠데. 변명을 만들려면 좀 성의 있게라도 만들던가. 표정이 맘에 안 들어서는 도대체 어디서 온 논리냐? 아, 그지 같은 또라이들. 하여튼 다 맘에 안 들어. 한국이나 여기나 또라이들은 득실거리고 심지어 여기는 아이스 라떼도 없잖아.’


내 언성이 너무 높아진 탓인지 지윤은 위로의 말 반 좀 침착하라는 뉘앙스의 말 반으로 나에게 여러 대안을 제안해주었다. 나는 그 대안중 하나가 썩 맘에 들어 고민하고 있던 찰나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주문하는 곳 앞에 서서 당당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이스 라떼가 없으니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그건 또 있었다. 나는 이 곳의 시스템이 도대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 건지 이해가 안 되기 시작했다.


 퀴빈의 아버지는 숙달된 속도로 지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곤 퀴빈과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와 퀴빈은 이탈리아어도 할 줄 아는구나, 그 모습도 참 멋지다.’ 나는 별로 알지도 못하는 푸른 눈의 사나이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게 분명했다. 이탈리아의 이자도 모르는 나에게 이상하게 코레아 코레아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앞담이라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뒤집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시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너 여기서 일해볼래?”


이상하고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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