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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hong Jun 30. 2020

이 이야기는 10개월간의 사랑 이야기- 첫 만남

나의 이야기와 소설의 경계선

 이 이야기는 10개월간의 사랑 이야기. 허나 나의 생애를 관통할 이야기.   

  

 ‘내가 이토록 바지런한 적이 있었나, 역시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나 보다.’


더블린에서 처음 CV를 돌리며 든 생각이었다. 더블린은 굉장히 작은 도시였다. 리피강이라는 유명한 강이 있기는 했는데, 우리 집 근처 하천만 한 크기에 아일랜드의 대표 강이라고 불리는 게 신기할 정도로 아주 작고 별 볼일 없었다.


 ‘그래, 쟤도 더블린에 있으니까 저렇게 불리는 거겠지, 너 한국에 가서 한강 보면 놀랄걸?’

나는 말도 안 통하는 강을 향해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며 어떻게 하면 CV를 안 돌릴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었다.


 ‘저 가게는 분명 내 CV를 안 받을 거야, 나 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네주고 갔겠어. 탈락.’

 ‘아 저기는 마감을 하고 있네? 다음에 내야겠다, 청소하는데 방해되면 안 되니까.’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불안한 마음을 더블린 길거리에 뿌려놓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걸음은 또 엄청 빨랐다. 그래도 많이 걷고 많이 돌아봐야지 뭔가를 한 것 같으니까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다. 처음 뽑은 CV 10장에서 몇 장 못 돌린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STAFF WANTED 공고가 붙여져 있는 가게에는 꼭 돌려야지 하면서 현실과 나의 게으름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곤 했다. 하지만 리피강 근처를 처음 와본 나는 어디가 어디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분명 5분 전에 브릿지를 봤던 거 같은데, 여기도 또 브릿지가 있네.’  

 ‘다들 어떻게 길을 찾는 거야?’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이제 1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할 때면 항상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이렇게 아주 강렬하고 뜨거운 온도로 내 마음 어딘가에 늘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를 순간순간 곱씹게 되겠지.  


 퀴빈은 한마디로 이탈리아 왕자 같았다. 나는 이탈리아에 국왕 제도가 없는 것도 알고, 지금은 21세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는 진짜 그렇게 생겼어서 달리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길을 모르겠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얼굴과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아니면 트로이에 나오는 헥토르와 아킬레스를 섞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아폴로의 아들 같기도 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몇백 년을 살아온 것 같기도 한 그의 외모는 그가 일하는 이름 모를 카페의 유리창을 통해 전시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따라간 시선 아래에는 STAFF WANTED 공고가 떡하니 붙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내 손에 쥐고 있던 CV를 감춰버렸다. 이곳은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이 아니니까. 다음에 다시 간다면, 그건 이태리 왕자를 보러 가는 거겠지. 어렴풋이 5초 정도 되는 찰나에 그 카페 앞을 지나가면서 나는, 그의 특징들을 눈에 담고 기억에 담았다.


 하얀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일하고 있던 그의 태, 곱슬곱슬한 장발머리, 작은 얼굴,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선과 콧망울, 연한 카키색 니트와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그가 가진 사연들까지. 내가 조금 더 예쁘고 영어를 잘했더라면 바로 들어가서 말을 걸었을 텐데. 아일랜드에 온 지 10일밖에 안됐던 아시아 여자아이는 못내 아쉬운 마음의 향을 길거리에 퍼트리며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다시금 그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것을. 나는 곧 그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환상이자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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