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a good police officer"

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9.

by 소까니 경찰관

지구대 근무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야기다.


당시 오랫동안 경찰서 내근에 근무하면서 주 5일제 근무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다 둘째 딸이 어린이집을 가야 했고, 아내의 복직과 맞물려 육아를 하기 위해 지구대로 전출을 나왔다.


경찰 생활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상태였지만 지구대로 다시 돌아온 것도 거의 10년 만이었다. 그래서 완전 초임의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 잘 배워보자, 적극적으로 하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던 따끈한 상태였다.


나는 그날 밤도 열의에 가득 찬 상태였다.




저녁 근무를 위해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코드 0 신고가 떨어졌다. 어떠한 일이든 제쳐두고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하는 급박한 신고다. 지구대가 난리 났다. 모든 가용 순찰차는 전부 출동을 해야 한다.


신고 내용은 이렇다.


원룸 밀집지역인데, 키가 거의 2m 되는 백인 남성이 윗옷을 벗고 칼을 들고 동네를 다니고 있었고, 신고자가 영상을 찍으려고 하자 본인에게 칼을 들면서 위협을 했다는 것이다.(나중에 영상을 보니 위협하는 장면은 없었다.) 그리고는 한 원룸 쪽으로 들어갔는데 어디로 들어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오우. 심장이 엄청 뛴다. 드디어 테이저건이나 실탄을 쏴야 하는 상황인가. 과연 테이저건이 발사될까? 걱정도 된다.


아무튼. 누가 먼저 현장에 도착하나 시합하는 마음으로 온 순찰차가 사이렌을 굉장하게 울리며 출동을 했고, 경찰서에서는 강력팀도 급파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신고자만 있었고, 백인 남성은 없었다.


신고자의 자동차 블랙박스로 영상을 확인해 보니 정말 엄청 키 큰 백인이 칼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미국 영화(텍사스전기톱연쇄살인사건)에서 보는 그런 사이코패스 살인마 같이 덩치가 큰데, 칼까지 들고 있어서 흠칫 소름이 끼쳤다. 난 그 영화 1편을 정말 무섭게 보았기 때문에 너무 감정이입이 됐다.


어떡한담. 일단 당사자는 사라졌지만 칼을 들고 다니는 것이 수상쩍고 마약에 취해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일단 찾아야겠다. 그런데 블랙박스와 목격자 진술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건물로 들어갔는지 특정이 되지 않았다.


인근에는 모두 원룸건물만 즐비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경찰 한 명씩 한 건물을 맡아서 수상한 점을 살펴보기로 했다.


오래된 동네이다 보니 건물 내부에는 냄새도 나고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도대체 사람이 사는 곳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도 건물 밖으로 나가서 배관도 살펴보고 불이 켜져 있는 집 위주로 다시 한번 살펴봤다.


그러던 와중, 한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저짝으로 갔음."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제 작전을 짜서 진입 준비를 해야 한다.




원룸 건물도 특정이 됐고, 내부로 올라가 보니 2층 한 집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영어였다! 컨츄리 음악이었다.


진입순서를 정해야 한다. 우리가 8명 정도 왔으니 누가 제일 맨 앞에 설 것인가. 아무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분명 방패 들고 있는 사람이 좀 나가야 하는데, 방패 들고 있던 직원 두 명은 가만히 서 있다.


'습... 어쩌지...'


갈등하던 그때 내가 용기를 냈다.


"동생, 방패 줘봐. 내가 갈게"


동생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나에게 방패를 쥐어준다. 내가 맨 앞에 섰다. 호기롭게 맨 앞에 서고, 바로 뒤에서는 직원들이 한 명은 삼단봉, 한 명은 테이저건, 한 명은 3.8 권총 실탄 등 다양한 무기들을 들고 준비 중이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내가 발로 문을 차면서 소리쳤다.


"문 열어!! Open the door!!"

"문 열어!! Open the door!!"


몇 번을 반복했더니 안에서 대답을 했다.


"Who are u!!"


"Police! open the door! now!!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안에서 덜컹 문을 열려던 찰나, 나는 얼른 오른발을 안으로 집어넣고 문을 못 닫게 막았고, 혹시나 칼로 내 얼굴을 찌를까 봐 방패는 내 얼굴을 딱 가리고 섰다.


"한국말할 줄 알아요?"

"아돈 노. 몰라요."


'한국말할 줄 아는군... 영어 원어민 강사의 느낌이 들었다.'


안 쪽을 슬쩍 보니 칼은 보이지 않았고, 백인 혼자 현관에 서 있는 것이 확인됐다. 내가 이 사람 지금 무기 들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뒤에 있던 7명의 경찰들은 제각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문 열어!!!"

"당장 나와!!"

"칼 어딨어!!!"

"쏼라 쏼라 코알라"


난리도 난리도,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아무튼, 좀 진정이 되고 현관문을 활짝 열고 대화를 시도했다. 분명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한국말을 못 한다며 버티고 있고, 영장을 보여주라며 절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수상했다. 얼른 현관 옆 화장실이라도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밀치고 진입을 했는데, 마약으로 보이는 것도 없고 다른 사람도 전혀 없었다. 술병만 가득했다.


나는 백인에게 문제 될 것도 없는 데 왜 이렇게 저항하느냐고 물었더니 무서워서 그랬단다. 어찌 됐든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시도하는데 백인이 좀 취해 있었기 때문에 대화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외국에서 4년 동안 국제대학을 다녀서 영어를 아주 잘했다.


"여보, 여만저만 한데, 대화 좀 해봐. 일단 지구대로 가야 할 것 같으니까 신분증이랑 챙기라고. 칼 들고 다닌 건 맞으니까."


백인과 아내는 영어로 대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오케이, 경찰서 가. 나 일리걸 이미그런트(불법체류자) 아니야."

"알았으니까. 일단 갑시다."


그렇게 순찰차 뒷자리에 백인을 태워 지구대로 갔고, 직원들은 도움도 안 되는 영어로 자꾸 말을 걸어서 시간만 지체되고 있었다.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이 사람 불법체류자인지만 확인하고 그냥 돌려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혹시 술 먹었냐고 물어봐 주고, 오늘 안 좋은 일 있었냐고도 물어봐 줘."


백인은 나에게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열었나 보다.


내용은 이렇다. 본인은 외국어 강사 신분으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왔으며, 온 지는 7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혼 관계의 한국인 아내와 원룸에서 같이 살았는데, 최근에 본인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알코올중독인 듯 보였다.) 일도 제대로 안 하니까 아내가 본가로 가버렸다고 한다.


외로우니까 술을 더 먹게 되고, 더 실수하게 되고 있었다고 하며, 오늘 칼을 들고 다닌 이유는 저녁시간이니까 타코를 만들기 위해 편의점에 재료를 사러 갔었는데 술이 취한 나머지 칼을 들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이 모든 스토리를 듣고 나니 너무 짠했다. 그때 우리 주변에는 나와 백인 둘 뿐이고, 나머지 경찰들은 이제 흥미가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진심으로 그 백인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타지에 와서 사무치는 외로움에 술로 의지하고 있었을 그 마음을.


아무튼 ID카드 확인결과 불법체류자도 아니었기에 다시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집 앞에 도착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을 때 그 백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You’re a good police officer!"

"딴 놈들은 나빠. 너만 착해"


뭔가 흐뭇한 마음도 들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그 백인에 관련한 신고는 전혀 없었다. 다행이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덩치는 텍사스전기톱연쇄살인마 같은데, 눈빛만은 착했던 그 사람.


그에게 인사를 전해보고 싶다. "How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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