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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r 15. 2024

내 안에 공주가 산다

With 별나라에서 온 공주

우리는 모두 공주였던 적이 있었다. 혹은 지금도 공주이기를 원하고 있을 수 있다. 공주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렸던 이유는 왕자와 만났을 때 비로소 자신이 공주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공주 이야기를 읽다가 자신은 어떤 공주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영화로 책으로 공주 이야기를 많이 보면서 자신은 어떤 공주일까 궁금했었던 모양이다. 이 질문에는 자신이 공주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아이의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아이의 성을 붙여 “넌 노랑공주야.”라고 말했었다. 아이는 자신이 노랑 공주라고 좋아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노랑공주’라 소개했었다. 아이는 자신이 공주인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황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고 아이를 잘 양육한 것이라는 안도감을 가졌다. 과연 나는 공주였던 적이 있었나. 지금도 공주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가. 질문해 본다. 

여기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아니고 백설공주도 아닌 이름 없는 공주가 있다. 그 공주는 바로 별나라에서 온 공주다. 어디에도 소개된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인기 있는 작가의 그림책은 아닌듯하다. 주인공 수빈이는 나처럼 언니와 여동생, 남동생이 있다. 밤마다 수빈이는 창가에서 하늘을 보며 자신이 살았던 별에 신호를 보낸다. 일상에서 받는 상처가 자신이 별나라에서 온 공주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면서 언젠가는 별나라에서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는다. 수빈이는 어느 날 별에서 온 신하를 만나겠다며 작은 배낭을 메고 가출을 감행한다. 결국 별나라에 가지 못하고 감기에 걸렸지만, 별나라 공주는 울지 않는다고 말하며 슬픔을 이겨낸다. 

이야기는 짧고 단순하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과 인정을 의심하는 아이의 슬픔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이 그림책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내 이야기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형제들과 내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안데르센의 미운 아기 오리를 보면서 ‘아, 바로 이거구나. 내 마음이 이거였어.’하며 위로 받았다. 그리고 백조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어린 마음의 상처를 견뎌냈다. 인간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은 가장 가혹한 고통이 아닐까 싶다. 수빈이가 가족에게 원한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상담에서 만난 6살 여자 아이, 수아는 거의 매 순간 징징거린다고 한다. 엄마는 첫 번째 결혼에서 자녀를 낳았고 두 번째 결혼에서 세 자매를 낳았다. 수아는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둘째 아이다. 다섯 명의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는 수아가 다른 형제들보다 심하게 자신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집착해서 피곤하다고 했다. 돌이 갓 지난 동생보다 더 아기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처음 만난 수아는 인형같이 예쁜 아이였다. 하지만 엄마는 성질이 못 된 아이, 고집이 센 아이라며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수아 아빠와 이혼소송 중이었던 엄마는 아이가 아빠의 게으르고 고집 센 부정적인 모습을 닮았다고 하면서 미워했다. 한눈에 보아도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너무나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연계된 상담 지원으로 상담비 부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상담을 지속하지 않았다. 이유는 상담실 방문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상담 종결에 대해 다른 이유를 말했지만 진실은 수아를 위해 애쓰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보였다. 

3년 후 다시 상담실을 방문한 수아는 초등학생이 되어있었다. 아이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한 엄마가 상담을 다시 신청한 것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아이는 이기적인 모습을 자주 보인다고 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를 제치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했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생과 경쟁했으며 학교에서도 친구의 돈을 갈취하는 등의 행동으로 문제가 되었다. 엄마와의 약속은 지키지 않았고 거짓말과 핑계로 위기를 모면했다. 수아는 죄책감을 갖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수아는 이야기를 하든, 놀이를 하든 모든 상황에서 주도권을 가지려고 했다. 상담자에게 지시하고 싶어 했고 상담자가 무조건 받아주기를 원했다. 작은 좌절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전형적인 자기애성 성격의 모습을 보였다. 마치 마법 속에 살기를 원하는 아이 같았다. 수아가 행복할 때는 자신이 공주가 되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때뿐이었다.     

  

우리 엄마는 4남매를 시부모에게 맡기고 공장에 다니셨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지만 박봉이었고 그마저도 엄마 몫이 아니었다. 엄마는 임신 중에도 출근했고 출산 후에도 출근했다. 퇴근 후에는 집안 일과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피곤하고 지친 엄마는 쉼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부모와 네 명의 자녀를 돌보느라 언제나 분주했다. 나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눈길을 언제나 그리워했던 것 같다. 유아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보냈을지 추측할 수 있다. 나는 공주인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내적 공허는 누군가 온전하게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나는 어떤 슬픔도, 괴로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와의 사랑에 빠져서 지냈으며 나를 안쓰럽게 여기고 나를 위해 사느라 분주했던 것이다. 별나라에서 온 공주가 되어야만 했던 수빈이처럼 사랑에 목마르고 인정에 갈급했으며 작은 좌절에서 심하게 상처 입었다. 결국 수동적인 사람, 이기적인 사람, 계산적인 사람으로 청년기를 보내면서 사랑받지 못함을 사랑하지 못함에 좌절했다.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있다. 우주 가운데 자신보다 더 존귀한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발달과정에도 이런 시기가 있다. 장난감 총에 픽픽 쓰러지고, 앙하고 울기만 하면 달려오는 부모를 보며,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줄 수 있다고 믿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유아기의 특징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를 다른 말로 바꾸자면 마법적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요술봉을 휘리릭 휘두를 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과 나만 특별하다고 믿는 현상 말이다. 인간은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다. 이러한 사고는 보통 7세 전후에 조망 수용 능력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런데 부모 중에는 자녀가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고집이 세질까 봐, 버릇없는 모습이 미워서 등의 이유로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것을 혼내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적이라는 이유로 수용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억압하거나 나무란다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은 혼자라는 부정적 사고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것을 더욱 강하게 지켜내고자 한다. 그리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빠져나와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이 고착될 수 있다. 즉 자기 자신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르키소스처럼 말이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무례해지는 순간이다. 

양육자가 무조건 허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때야말로 양보와 배려를 통해 사회성을 배우는 적절한 시기이기에 중요한 시기이다. 아이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 주는 동시에 양보와 배려, 그리고 적절한 좌절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에 앞서 가정에서 부모의 적절한 양육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모와의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기간이 짧으며, 양보와 배려를 금방 습득한다고 한다. 반면에 부모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는 아이의 경우 심리적으로 독립이 늦고, 양보와 배려를 배우는 과정도 더디다고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채워져야 사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보이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된다는 것을 잊지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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